로버트 F. 케네디. (출처: Kennedy for President Committee, 1968,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68년 6월 5일,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승리를 확정 지은 로버트 F. 케네디 상원의원이 연설 직후 피격 당했다. 그는 다음 날 42세의 나이로 사망했고, 이로써 미국의 희망은 산산조각이 났다.

로버트 F. 케네디는 형인 존 F. 케네디 대통령 재임 시절 법무장관을 역임하며 인권 운동과 조직범죄 척결에 앞장섰다. 형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에도 그는 좌절하지 않고 뉴욕주 상원의원에 당선되어 정치 활동을 이어갔다.


1968년, 그는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하며 분열된 미국 사회를 통합하고 빈곤과 인종 차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특히 흑인과 소수 민족, 빈곤층으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희망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로버트 F. 케네디는 1968년 6월 4일 캘리포니아주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승리했다. 5일 새벽 0시 15분경, 로스앤젤레스 앰배서더 호텔에서 지지자들에게 승리 연설을 마친 그는 주방 복도를 통해 다음 일정으로 이동하려 했다. 바로 그 순간, 복도에 숨어 있던 팔레스타인 난민 시르한 시르한이 22구경 리볼버 권총을 난사했다.

케네디는 머리에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그는 즉시 병원으로 옮겨져 긴급 수술을 받았으나, 결국 다음 날인 6일 새벽 1시 44분경 사망했다. 체포된 시르한 시르한은 로버트 F. 케네디가 친이스라엘 정책을 지지했기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그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현재까지 복역 중이다.


이 사건은 '케네디 가문의 비극'으로 불리며, 동시에 미국 사회에 깊은 충격과 상실감을 안겨줬다. 그의 죽음은 존 F. 케네디 암살,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 암살 등 1960년대 미국이 겪었던 일련의 비극적인 사건들과 더불어 시대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