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근 전문성 없이 자본력만을 앞세운 기업 경영권 침탈 우려 사례가 속출하면서 독일 기업 메르세데스-벤츠가 구축한 독특한 기업 지배구조가 주목 받고 있다. 외부 투자자와 기업 경영권을 철저히 분리해 지분율만으로 기업을 통째로 삼키려는 행위를 사전에 차단한다.
재계는 이 같은 사례를 참고해 국내 기업의 안정적인 경영권이 뒷받침될 수 있도록 투자자의 지나친 경영 간섭을 차단하고 기존 경영권을 존중하는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본다.
중국 지분율 20% 육박해도 경영 간섭 불가
벤츠 지주사인 메르세데스-벤츠 그룹 AG의 소유권별 주식(2025년 3월31일 기준) 분포는 ▲기관 43.15% ▲개인 31.61% ▲베이징자동차그룹 9.98% ▲지리자동차 창업자 리슈푸의 테나시오3 프로스펙트 인베스트먼트 9.69% ▲쿠웨이트 투자청 5.57%다.기타·개인을 제외하면 중국 자본 지분율은 20%에 육박하는 19.67%를 기록해 2대 주주다. 벤츠의 지분 구조를 일반적인 국내 기업의 지배구조에 대입하면 적극적인 주주 목소리를 내는 것은 물론 경영권까지 노릴 수 있다. 벤츠의 상황은 다르다.
벤츠를 구성하는 중국 지분율이 높아 일각에선 '벤츠=중국차'라는 인식도 강하지만 벤츠는 경영과 감독 기능을 따로 분리해 투자자의 경영 간섭과 이에 따른 경영권 침탈 우려를 차단한다.
벤츠 그룹 AG는 회사 경영을 담당하는 경영이사회와 이를 관리·감독하는 감독이사회로 구성된다.
경영이사회는 총 9명이며 이 가운데 독일인은 8명(스웨덴 태생 포함), 스위스인은 1명이다. 모두 벤츠 내부 직원 출신이고 중국 자본이 추천한 이사회 인사는 없다.
20%에 육박하는 벤츠 지분을 가진 중국계가 이사회에 1명도 진입할 수 없는 이유는 경영위원회와 함께 구성된 20명 규모의 감독위원회가 있기 때문이다.
독일 공동결정법에 따르면 메르세데스-벤츠 그룹 AG의 감독위원회는 위원 20명으로 구성됐다. 10명은 주주들이 선출하고 10명은 직원들이 뽑는다.
감독위원회의 핵심 기능에는 경영진의 통제 및 모니터링, 경영진 임명, 운영 계획 승인 및 중요한 기업 결정이 포함되는데 이 같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자리에 앉히는 과정은 지분율만으로 감독위원회 자리를 나눠먹거나 장악할 수 없는 구조다.
![]() |
한국 기업은 틈만 보이면 지분율 다툼
국내 사정은 다르다. 오너일가의 지분율이 낮으며 끊임없이 경영권 간섭을 넘어 침탈 시도가 자행되고 지분을 많이 가진 자가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벤츠처럼 투자자는 투자에만 집중하고 경영은 전문경영인이 아우르는 구조가 아니라 자본력에 의해 최대주주가 언제든 뒤바뀔 수 있는 구조다.
최근 호반건설 등 핵심 계열사를 동원해 사모펀드 KCGI로부터 한진칼 지분을 사들인 호반그룹에 대한항공의 경영권을 노리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건설업을 영위하는 호반그룹이 항공업에 진출하는 수순이라는 의혹이 일자 호반그룹은 '단순 투자'라고 일축했지만 국내 기업, 특히 오너일가의 지분율 확보를 단순한 투자로 보는 시각은 드물다.
문제는 전문성이 없더라도 지분만 늘리면 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아파트 건설을 주 업으로 삼고 있는 호반그룹이 국가기간산업인 항공업에 대한 전문성이 없어도 지분만 늘리면 대한항공을 주무를 수 있다.
항공업은 축적된 전문 경영 노하우와 해외 네트워크가 무엇보다 중요한 국가기간산업이지만 전문성 없이 단순히 지분만 늘려 경영권을 행사한다면 승객의 안전이 불안해질 수 있다. 대한항공이 아파트 사업에 진출하겠다며 호반그룹 지분을 사들여도 이 같은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 될 건 뻔 하다.
투자자로서 의견을 개진할 수 있지만 관련 산업의 전문성이 결여된 채 지분만을 앞세워 지나친 경영 간섭과 침탈 시도로 회사를 좌지우지 하는 사례를 막으려면 국내 기업에도 벤츠가 구축한 경영이사회와 감독이사회 같은 이원화 구조를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주주는 회사 경영의 밑바탕이 되는 실탄을 공급하기 때문에 그들의 목소리는 당연한 권리이지만 지분율이 높다고 무턱대고 경영권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면 전문성 없이 자본력만 남는다"고 짚었다. 이어 "주주는 투자 규모만큼 이익을 환원받고 회사는 높은 지분율을 앞세운 외풍에 경영권까지 흔들리지 않도록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