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간산업인 항공산업의 경영권을 지분 논리로만 부여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사지은 인천국제공항에서 이륙하는 대한항공 여객기. /사진=뉴시스

"지분만 사들이면 무조건 최대주주가 될 수 있는 구조는 문제가 있어요. 자금력도 중요하지만 경영 능력이 가장 중요합니다."
호반그룹이 대형 국적 항공사인 대한항공 경영권을 넘보는 것 아니냐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항공업계의 우려가 깊다. 항공업은 국가 기간 산업으로 축적된 경영 노하우와 해외 네트워크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지분만 많으면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코로나19 극복한 반세기 항공업 노하우

2020년 1월부터 4년여 동안 지속된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세계적 대유행)은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감염병으로 지구촌의 자유로운 이동을 차단했다. 각 나라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하늘길 이동을 제한했고 비행기를 띄우지 못한 항공산업과 관련 종사자들은 인고의 시간을 견뎌야 했다.

조원태 대한항공 회장도 위기 극복을 위한 경영 구상에 몰두했다. 줄어든 여객기 운항을 화물 수송을 늘리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경영 위기를 극복했고 글로벌 항공업계의 호평을 받았다.


조 회장은 이 같은 전략을 실적으로 증명했다. 대한항공은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2년 매출 13조4127억원, 영업이익 2조8836억원이라는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글로벌 항공사들이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생존 자체만 고심하는 상황과 대비된다.

이로 인해 대한항공은 오스트레일리아 항공·여행 전문 매체 '에어라인레이팅'(AirlineRatings)이 선정하는 '2023 에어라인 엑설런스 어워즈'(Airline Excellence Awards)에서 '올해의 최고 화물 항공사', '북 아시아 베스트 항공사' 상을 수상했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해상 운송 적체 상황에서 여객기를 화물 전용 항공기로 개조해 세계 항공 업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위기 극복 사례를 직접 보여줬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코로나19 상황을 극복하는 동시에 팬데믹 종료 이후도 대비했다. 보잉 737-8, A321-neo와 같은 신형기를 적극 도입하고 2023년 6월부터는 국제선 노선에서 기내 와이파이 서비스를 시작하는 등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방안 마련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글로벌 항공업계에서는 대한항공이 반세기 넘게 축적한 여객·화물 운송 부문의 탁월한 경영 노하우가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전대미문의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게 한 원동력이라고 극찬했다.

항공사가 아파트 지어도 시장은 조용할까

국가기간산업인 항공산업의 경영권은 전문성과 특수성 등을 감안해 부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진은 지난 3월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에서 열린 신규 CI 공개 기자간담회에 나섰던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사진=뉴시스(공항사진기자단

대한항공은 코로나19 팬데믹 위기를 넘기고 4년 넘게 이어진 아시아나항공과의 기업결합도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었다. 차세대 기단 도입 등 미래 도약을 위한 글로벌 공급망 협력도 강화하며 통합 항공사 출범을 앞두고 경영 전략을 다듬고 있다. 전략에 변수로 떠오른 건 호반그룹의 대한항공 최대주주인 한진칼 지분 확대다.

항공업계는 건설사가 국가기간산업인 항공사를 경영할 능력이 있는지 의아해 하며 대한항공이 아파트 건설업에 뛰어들면 이해할 수 있냐고 반문한다. 각각의 전문 사업 영역이 명확해 신사업 진출이나 미래 먹거리 확대 등으로 포장하는 것도 무리수다.

이러한 상황을 계기로 국가기간산업인 항공업에도 금융회사와 통신회사 처럼 '대주주 적격성 심사'가 도입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해당 분야 전문성은 갖추지 못했지만 자본력만으로 지분을 늘려 대주주 지위를 확보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코로나 팬더믹 당시 대한항공에게 아시아나항공을 떠넘길 수밖에 없었던 것도 경영 전문성을 갖춘 유일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 하는 대표 사례로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 따른 금융 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가 꼽힌다. 해당법 제31조 제1항 따르면 금융회사가 발행한 주식을 취득·양수해 대주주(최대주주의 경우 최대주주의 특수관계인인 주주를 포함, 최대주주가 법인인 경우 그 법인의 중요한 경영사항에 대해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자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자를 포함)가 되고자 하는 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요건을 갖춘 뒤 금융위원회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

금융위는 최대주주 자격 심사 결과 적격성 심사대상이 적격성 유지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판단되면 해당 적격성 심사대상에 대해 6개월 이내의 기간을 정해 해당 금융사의 경영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소정의 조치 이행도 명할 수 있다.

이동통신업계에도 '사업권 허가 적격성 심사'를 통과해야 사업자 지위를 얻는다. 이동통신 사업권 허가 적격심사는 사업권을 신청한 사업자가 법에 명시된 신규 이동통신사업자의 조건을 갖췄는지 확인하는 절차다. ▲이동통신사 경영에 필요한 재정적 능력 ▲이동통신사업의 기술적 능력 등에서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한항공이 반세기 넘게 축적한 항공업 경영 노하우는 단순히 지분 매입을 통한 대주주 지위 확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승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전문영역이기 때문에 자본 논리로만 경영권을 부여하면 질서가 흐트러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성이 강한 항공업의 특수성과 중요성을 감안해 진입 장벽을 높이는 정부 차원의 경영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