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논의가 급물살을 타며 한국은행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다. /사진=챗GPT 생성 이미지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가운데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은 신중한 관점을 유지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을 단순한 디지털 금융서비스가 아닌 '사실상 통화'로 보며 발행인가와 감독 권한 역시 중앙은행이 담당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1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정기획위원회와 금융위원회 등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위한 방안을 두고 내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주요 쟁점은 스테이블코인을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해 컨소시엄 형태의 실증사업을 통한 시장 검증을 먼저 할지, 입법을 통해 제도화된 틀에서 출발할지다.


국가의 전반적인 통화 시스템을 책임지는 한국은행은 스테이블코인을 단순한 디지털 금융서비스가 아닌 통화정책과 금융 안정성, 외환시장 질서 전반에 영향을 주는 '사실상의 통화'로 간주한다. 이에 발행 인가 및 감독 권한도 중앙은행이 가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은행, 스테이블코인 주도권 잡을까… 장단점은?

사진은 지난 10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사진=뉴스1(사진공동취재단)

한국은행이 스테이블코인의 발행과 감독 권한을 직접 갖게 될 경우 가장 큰 장점은 통화정책 일관성과 안정성 확보다. 스테이블코인은 법정통화인 원화와 1:1로 연동돼 사실상 화폐와 유사한 기능을 수행한다.

이러한 스테이블코인이 민간 주도로 대규모 발행될 경우 시중에 유통되는 광의통화(M2) 규모가 중앙은행의 통제 범위를 벗어날 수 있다. 이는 기준금리 조정이나 유동성 관리 등 중앙은행의 전통적 통화정책 수단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을 약화고 정책 신뢰성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이 한은의 우려다.

만약 한국은행이 주도권을 잡고 초기부터 인가와 감독을 통해 발행 규모와 유통 범위 등을 설계하면 통화 공급량을 더욱 안정적으로 조절할 수 있고, 경제 전체의 통화관리 체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외환시장 측면에서도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중앙은행의 개입 필요성은 크다.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글로벌 거래소에 상장돼 해외에서 자유롭게 거래될 경우 사실상 자본 유출입 통로로 작동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기존 외환거래 규제를 우회한 자금 이동을 유발하며 환율 급등락이나 외환보유액 감소 등 외환시장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국은행이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운영에 직접 개입한다면 외환 거래를 직접 관리할 수 있어 문제를 사전에 차단하거나 최소화 할 수 있는 관리 감독 체계를 마련할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 확산으로 인한 금융시장의 새로운 리스크도 중앙은행의 감독이 필요한 이유다. 만약 스테이블코인이 민간에서 발행될 경우 담보 자산 부족, 기술적 결함, 불완전한 신탁 구조 등으로 문제로 안정성과 신뢰가 훼손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문제상황 발생 시 투자자들이 대거 인출에 나서는 '코인런'(Coin Run) 사태가 발생하면 해당 코인을 보유한 금융기관이나 결제 서비스 제공업체의 유동성 위기로 전이되고, 이는 금융권 전체에 충격을 줄 수 있다. 중앙은행이 감독권을 통해 발행 구조의 건전성, 유동성 보완, 위기 시 긴급 대응 체계를 마련하면 이러한 시스템 리스크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반면 한은이 주도권을 쥘 경우 민간의 디지털금융 혁신 속도가 저하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중앙은행 특성상 보수적 규제 설계를 지향하는 만큼 핀테크·빅테크 기업의 기술 실험과 시장 확산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다.

과도한 인가 요건과 규제 장벽은 산업 진입을 어렵게 하고 제도화 속도 자체를 늦출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또 금융위원회와의 역할 중첩으로 인해 감독 책임이 모호해지거나 정책 조율이 지연되는 등의 혼선도 배제할 수 없다.

국내 규제 마련 시급… 글로벌 흐름은?

글로벌 주요 법안들은 중앙은행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챗GPT 생성 이미지

다만 미국의 지니어스법(GENIUS Act)와 유럽연합(EU)의 미카법(MiCA) 등 해외의 주요 스테이블코인 규제안들은 중앙은행의 견제·감시 기능을 제도적으로 명문화하고 있다. 이에 한국도 이러한 흐름을 따라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지니어스법은 스테이블코인이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승인 및 감독 하에 발행이 이뤄져야 한다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중앙은행에 발행 인가권을 직접 주지는 않지만 사전 검토와 리스크 보고 체계 역할을 의무화한 것이 핵심이다.

미카법 역시 유럽중앙은행(ECB)이 필요시 중앙은행이 스테이블코인 발행 제한 및 거래 중단 조치를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이는 스테이블코인을 단순 금융상품이 아닌 통화 정책에 연계된 시스템 요소로 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한국 역시 국내의 상황을 고려함과 동시에 미국과 EU처럼 중앙은행의 견제와 협의 기능을 제도화하는 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신상희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위원은 "지니어스법은 법화 준거형 스테이블코인을 규제 대상으로 하며 적격 발행기관, 감독 체계, 인허가, 준비자산 요건, 감독·검사·제재 등에 대한 포괄적 규제를 제시하고 있다"며 "미카법은 스테이블코인을 '자산준거토큰'으로 정의하고 체계적인 이용자보호와 금융안정 규제등을 제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내 스테이블코인 규제는 국내외적 상황을 고려해 조속하고 체계적인 입법이 필요하다"며 "스테이블코인 거래가 확대될 경우 금융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금융안정, 통화정책, 자본유출 등 부문에서 부작용을 방지할 수 있는 규제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민현하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위원은 "스테이블코인은 디파이(DeFi)에서 코인을 예치하고 대출받는 전통 금융의 여·수신 업무와 유사한 형태를 재현할 수 있다"며 "자금 유통 경로로서 제도권 금융시장과 중첩되는 영역이 발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내는 통화주권 보호 차원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제도화하는 것이 유력하며 중앙화된 금융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은행이 발행 주체가 되면 새로운 수익원 및 관계사 간 시너지를 통해 경쟁력 확보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