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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이 발 빠르게 가상자산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면서 국내에서도 달러 중심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장에 대응해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위한 제도 마련에 나서고 있다. '디지털 결제 주권' 확보를 위한 정부와 민간의 대응이 빠르게 구체화되고 있지만, 전 세계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95% 이상을 달러가 장악한 상황에서 원화의 후발주자 경쟁력 확보가 관건이다.
16일 투자업계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민병덕 의원이 지난 6월 발의한 '디지털자산기본법'이 국회 정무위원회에 회부되며,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제도화가 본격화됐다. 해당 법안은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고자 하는 자는 금융위의 인가를 받아야 하며 그 자본금은 5억원 이상으로 해야 한다고 발행사의 자격 요건을 명문화했다. 대통령 직속 디지털자산위원회 설치, 업권별 인가제 등도 포함됐다.
정부가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서두르는 핵심 이유는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을 차단하고 디지털 결제 주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딜로이트는 '2025 지급결제용 스테이블코인의 제도화 전환점' 보고서를 통해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은 국내 통화 주권 및 외환 관리 체계에 구조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한국형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정책적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분석했다.
블록체인 인프라 활성화 기대 …국내 은행·핀테크 기업도 가세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은 자본시장과 금융 인프라에 다양한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스테이블코인 담보자산으로 국채·외화 수요가 증가하고, 블록체인 결제 인프라 활성화로 관련 산업 생태계 발전이 기대된다.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은 'CBDC 도입관련 글로벌 동향과 보안이슈 점검(2023)' 보고서를 통해 "CBDC와 스테이블코인 도입으로 각국의 통화주권 확보를 위한 대안적 국경 간 결제 시스템 도입이 가속화되고 있다"며 "이는 국가채권 수요 증가와 블록체인 기반 금융 인프라 구축을 통한 금융시스템 혁신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블록체인 기반 결제 시스템의 24시간 실시간 정산, 수수료 절감, 투명성 확보 등의 장점이 기존 금융 인프라의 효율성을 크게 개선할 것으로도 기대된다.
차세대 금융결제 시스템인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두고 민간에서도 선점 경쟁이 치열하다. KB국민·신한·우리·농협·기업·수협·케이뱅크·iM뱅크 등 8개 은행이 오픈블록체인·DID협회 및 금융결제원과 협력해 '원화 연동형 스테이블 코인' 발행을 위한 합작법인 설립을 준비 중이다.
핀테크 기업들도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카카오페이는 지난 6월 17일 'KRW' 관련 상표권 18건을 특허청에 출원했고, 카카오뱅크도 관련 상표권 12건을 출원했다.
달러 독점 시장서 후발주자 한계…정부 기관 입장차도 풀어야할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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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직면한 가장 큰 과제는 달러의 압도적 지배력을 피해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다. 현재 전 세계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95% 이상이 달러 기반(USDT·USDC)이며,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경우 후발주자로서의 경쟁력은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대해 홍진현 삼성증권 연구원은 "한국형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기축통화인 달러보다 수요와 용도가 낮고 고도화된 한국형 핀테크 인프라가 있어 원화 스테이블코인 사용과 파급력은 제한적일 것"이라며 "개방성과 신뢰를 전제로 활용도와 이자율 등 보상이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글로벌 확장과 해외거래소 상장은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은행과 정부와 입장 차이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화폐의 대체재라 비은행 기관이 마음대로 발행하면 통화정책 유효성을 상당히 저해할 수 있다"며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반면 현 정부는 비은행권의 스테이블코인 발행도 허용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이 총재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발행될 경우 달러 스테이블코인 사용이 줄어드는 게 아니고 교환이 쉽게 돼 달러 수요가 늘어나 외환 관리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신보성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민간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자의 등장은 은행 말고도 통화 창출권을 가진 민간업자가 추가로 생겨남을 의미한다"며 "은행과 코인업자 간의 시뇨리지(화폐주조차익) 창출 경쟁이 격화되면서 통화량은 큰 폭으로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러한 정부 기관별 입장 차이로 인해 제도 도입이 생각보다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풍부한 기술 인프라로 타국가 대비 자생력 갖춰…틈새시장 공략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압도적 지배력에도 국내 전문가들은 한국의 고유한 강점을 바탕으로 한 차별화 전략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국내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인프라와 간편결제 문화, 암호화폐 거래량 상위권 국가라는 점에서 기술적 수용성이 높아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국내 가상자산거래소의 높은 거래량과 유동성은 엔화나 유로화 스테이블코인 대비 유리한 측면이 있다.
특히 아시아 내 한류 기반 콘텐츠 결제, 동남아 국경 간 송금 수요, 게임·웹툰 등 Web3 응용 분야에서는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초기에는 국내 결제 인프라와 연계된 B2B 정산·콘텐츠 결제 중심으로 확산된 후, 점진적으로 개인 간 송금, 해외 송금, 디지털 자산 거래 등으로 사용처가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성공적으로 정착될 경우 기존 은행 중심의 결제 체계에서 블록체인 기반의 탈중앙화 결제 시스템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예컨대 ▲24시간 실시간 결제 ▲낮은 수수료 정책 ▲국경 간 송금 간소화 등 소비자에게 실질적 혜택을 제공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통해 국내 핀테크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