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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그룹이 글로벌 전기차(EV) 시장에서 뛰어난 기술력과 상품성으로 존재감을 강화하고 있다.
2022년 현대차 아이오닉 5를 시작으로 2023년 아이오닉 6, 지난해 기아 EV9에 이어 올해 EV3까지 4년 연속 '세계 올해의 자동차'를 석권했다. 이러한 성과의 배경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연구개발 거점, 남양기술연구소가 있다.
1996년 설립된 남양연구소는 신차 및 신기술 개발을 비롯해 디자인, 설계, 시험, 평가 등 차량 개발의 모든 과정을 총괄한다. 승용차부터 상용차까지 전 차종을 개발, 현대차그룹의 미래 모빌리티 전략을 실현하는 핵심 기지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23일 남양연구소를 방문해 4시간가량 ▲공력시험동 ▲환경시험동 ▲R&H성능개발동 ▲NVH동 등을 둘러봤다. 엄격한 보안이 요구되는 만큼 휴대전화 앞뒤 카메라에 보안 스티커를 붙이고 입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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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다양한 기후 조건에서 차량의 성능을 검증하는 환경시험동을 방문했다.
이곳의 핵심 시설인 '환경 풍동 챔버'는 온도, 습도, 풍속, 밝기 등을 세밀하게 설정해 전 세계 여러 기후와 주행 조건을 정밀하게 재현한다. 사막의 50℃ 고온부터 극지방의 혹한과 같은 극단적인 환경도 조성할 수 있다.
고온 환경 풍동에서는 고성능 전동화 모델인 아이오닉 6 N의 차량 평가 검증이 한창이었다. 49℃로 설정된 실험실에 들어서자 찜통 같은 열기와 건조한 공기가 피부를 덮쳤다. 마치 한여름 사막 한가운데에 들어선 듯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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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설·강우 환경 풍동에서는 눈과 비를 인공적으로 만들어 차량의 성능을 시험한다. 전기차는 충전구와 프렁크(앞 트렁크)로 눈이 유입되는 여부가 중요해 연구원들은 인위적으로 눈보라를 일으켜 실링 구조의 밀폐 상태를 점검한다.
영하 30℃로 설정된 실험실 내부에는 아이오닉 9이 서 있었다. 테스트가 시작되자 거친 눈보라가 일었고 순식간에 차량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쏟아지는 '화이트아웃' 현상이 연출됐다.
두꺼운 방한복을 입은 연구원들은 혹한 조건에 노출된 차량 상태를 자세히 살피면서 난방 성능과 저온 제어 시스템 관련 데이터를 꼼꼼히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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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전기차의 공력 성능을 개발하는 공력시험동을 찾았다. 공력시험동에서는 '공력 성능 평가'와 '후류 최적화 평가'가 진행된다.
공력 성능 평가에서는 차량 주행 방향과 반대로 작용하는 '항력'과 차체를 부상시키는 '양력'을 중점적으로 측정한다. 항력은 전비와 가속 성능에 영향을 주고, 양력은 주행 안정성과 밀접하게 연관되는 전기차 공력 성능의 핵심이다.
후류 최적화 평가에서는 주행 시 차량 후면에 생기는 공기 흐름인 후류를 분석한다. 두 평가 모두 대형 송풍기를 통해 최대 3400마력의 출력으로 바람을 일으켜, 차량 주행 속도 기준 시속 200㎞까지의 공기 흐름을 진단한다.
이날 공력시험동에서는 세계 최저 공기저항계수(Cd) 0.144를 기록한 '에어로 챌린지 카'도 살펴볼 수 있었다. 박상현 공력개발팀 팀장은 "에어로 챌린지 카 프로젝트는 공기저항을 어디까지 낮출 수 있을지를 실험하는 과제"라며 "바람의 흐름이 눈에 보이는 가시화 평가를 통해서도 매우 낮은 공기저항 성능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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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시대에 접어들면서 주행 중 느끼는 정숙성과 편안함은 탑승자의 만족도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가 됐다. 현대차·기아 역시 정숙성을 차량 경쟁력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다.
로드노이즈 시험실에서는 차량이 주행할 때 발생하는 노면 소음을 정밀하게 분석한다. 벽면은 두꺼운 흡음재로 둘러싸여 있었고 내부에 설치된 차량 바퀴에는 실제 도로를 본뜬 패치가 부착되어 있었다.
테스트가 시작되자 타이어가 롤 위를 굴러가면서 발생하는 소음의 정도가 모니터 그래프에 실시간으로 표시됐다. 박상범 소음진동기술팀 파트장은 "아스팔트, 콘크리트, 험로 등 도로 노면 질감을 구현한 패치로 실제 주행환경과 유사한 상황을 만들었다"며 "운전석과 뒷좌석에 마이크를 부착해 소음 정도를 측정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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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찾은 R&H성능개발동에서는 차량 완성도의 핵심인 주행 성능을 평가한다.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차량의 핸들링 특성을 연구하는 '핸들링 주행시험기'였다. 거대한 기계 장치 위에 현대차 '코나 일렉트릭'이 고정돼 있었고, 차량 앞에는 120인치 디스플레이를 통해 가상의 주행 환경이 실시간으로 구현됐다. 운전자 대신 주행 로봇이 설치돼 스티어링 휠과 페달 조작을 수행했다.
김성훈 주행성능기술팀 연구원은 "실제 그라운드에서 주행하지 않아도 이 시험기를 통해 다양한 노면 조건과 한계 상황을 반복적으로 시험할 수 있다"며 "스티어링 응답이나 차량의 거동을 정밀하게 측정하고 분석하는 데 큰 강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핸들링 주행시험기는 전 세계에 단 두 대 뿐으로 하나는 이곳 남양연구소에, 다른 하나는 독일 자동차 연구기관에 설치돼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며 "현대차·기아는 남양연구소를 기반으로 품질과 성능, 사용자 경험 등 제품 전반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실증 기반의 개발 역량 강화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