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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기 어린 그릇에 뽀얀 콩물이 가득 차오르고, 차갑게 삶은 면발이 담겨 있는 한 그릇. 여름이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계절 별미 콩국수다. 무더운 여름날 입맛이 없을 때 속을 부드럽게 달래 주며 한끼를 든든하게 채워주는 이 음식은 양질의 단백질, 식이섬유 등이 포함돼 지친 몸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여름철 보양식이다. 조미료에 기대지 않고도 오직 콩 자체의 고소함과 담백함으로 승부한다.
우리 식문화 속 콩국수는 1800년대 쓰인 요리책인 '시의전서'에 만드는 법이 기록되어 있을 만큼 역사가 깊다. "콩을 물에 불려 살짝 데쳐서 가는 체에 밭쳐 소금으로 간을 맞춘 다음 밀국수를 말고, 웃기는 밀국수와 같이 한다"라고 조리법이 기록돼 있는데 이는 지금의 콩국수와 매우 유사한 조리법이다. 근간에는 백반이나 칼국수집에서 여름철 손님을 붙잡기 위해 한시적으로 콩국수를 내놓는 것이 일반적이며 계절성 때문에 사시사철 다루는 곳은 드물다. 변질되기도 쉽고 콩 자체의 비린 맛과 텁텁함을 잡아야 하기에 취급하기 까다로워 '잘하는 집'이 극명히 갈리는 음식이기도 하다. 해마다 더위가 기승을 부릴 즈음이면 다시 떠오르는 콩국수. 고소한 한 그릇을 맛보기 위한 발걸음으로 한창 분주한 콩국수 맛집을 소개한다.
진주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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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국수는 전국 어디서나 즐겨 먹는 보편적인 음식인 만큼 지역에 따라 특색과 차이점이 있다. 콩이 많이 나는 충남 당진은 면에 쑥을 넣어 은은한 맛을 낸다. 전북 전주의 오랜 노포는 흑임자 콩물에 메밀면을 사용한 콩국수로 이름을 알리며 전국 각지로 진출했다. 강원 지역에서는 콩물에 잣이나 들깨를 넣어 견과류의 고소한 향을 극대화하기도 한다. 경기도 파주 장단콩, 제주 푸른콩 등 토종 콩이 재배되는 지역의 콩국수도 각각 특색을 지니고 있다.
간을 할 때도 호남 지역은 설탕을 넣어 달콤하게 즐기는 비율이 높고 그 외 지역은 소금을 넣는 것이 일반적이다. 취향 차이가 극명하다 보니 대중식당에서는 대부분 설탕과 소금을 모두 테이블에 올려놓고 손님이 원하는 대로 간을 하도록 한다. 서울은 깔끔하고 시원한 맛을 중시하는 곳과 묵직한 콩 자체의 맛을 강조하는 곳이 공존하는데 유명한 콩국수 집들은 주로 크림처럼 걸쭉한 콩물이 특징이다. 특히 서울 시청 인근에 자리한 '진주회관'은 콩국수 하나만으로 전국의 콩국수 마니아들을 사로잡은 대표적인 공간이다.
이곳은 경남 진주에서 콩국수집을 운영하던 창업주가 상경해 1962년 서소문에 개업한 곳이다.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3대째 이어오고 있으며 서울시 '서울미래유산'과 중소벤처기업부 '백년가게'로도 지정된 역사의 공간이기도 하다. 불고기, 섞어찌개 등 다양한 메뉴가 있지만 이곳의 대표 메뉴는 뭐니 뭐니 해도 콩국수다. 매장 내에 붙어있는 역대 대통령과 서울 시장, 재벌 총수들의 방문 사진은 이곳의 역사를 가늠케 한다. 고(故) 이건희 회장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이곳 콩국수 심부름을 시켰던 일화는 유명하다.
워낙 콩국수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하절기 점심시간에는 오직 콩국수 단일 메뉴만 판매한다. 진주회관과 함께 서울의 콩국수 양대산맥으로 불리는 여의도 '진주집'도 형제가 운영하는 곳으로 같은 뿌리를 갖고 있어 잦은 비교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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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회관의 콩국수는 강원도 일대에서 생산되는 국산 토종 황태콩 18개 농가와 계약하여 만드는 콩 국물에 비법이 있다. 햇콩만을 사용해 마치 크림처럼 걸쭉하게 내는 콩 국물은 변질을 우려해 하루에 여러 번 제조하여 한결같은 맛을 유지하고 있다. 재료도 중요하지만 조리 과정도 퍽 까다롭다. 덜 삶으면 콩의 비린 맛이 강해지고 푹 삶으면 메주 맛이 나기 때문.
진주회관의 콩물은 정확한 밸런스를 통해 부드럽고 고소한 맛을 극대화해 콩국수 초심자나 비린 맛에 예민한 사람들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정성 가득한 콩물에 땅콩 가루를 섞어 반죽해 고소한 맛과 탱글한 식감을 자랑하는 면을 더해 심플하게 내어주는 콩국수에는 어떤 고명도 오르지 않는다. 고소한 콩국 자체의 맛을 온전히 즐기도록 하기 위함이다.
국수와 함께 나오는 찬은 김치가 유일하다. 김치 역시 100% 국내산 배추와 고춧가루를 사용하여 직접 담근다. 살짝 달큼한 양념 맛이 매력으로 콩국수의 인기에 톡톡히 제 역할을 했다. 사실상 콩국수 집이나 진배없지만 진주회관의 섞어찌개, 김치볶음밥 등의 메뉴도 마니아 층이 있다. 특히 김치볶음밥은 볶아 나오는 스타일이 아니라 불판에 국내산 소고기를 비롯해 신선한 재료들과 함께 볶아 먹도록 제공돼 특색 있다.
달뜬콩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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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영암군 '달뜬영농조합'에서 운영하는 국산콩 두부 및 콩국수 전문점. 모든 식재료를 조합농가에서 직접 공급해 안전하고 신선하다. 5~10월 사이 판매하는 콩국수가 특색 있는데 마치 아이스크림처럼 되직한 콩물 베이스에 물을 부어가며 기호에 맞게 점도를 조절해 먹을 수 있도록 제공된다. 그 밖에도 국산콩을 전통방식으로 가공해 만든 순두부는 전통 두부 특유의 고소함과 부드러움을 간직하고 있다.
보승칼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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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수원시 매탄동에 위치한 칼국수 전문점. 여름철 한정 메뉴인 콩국수가 인기로 흑미로 만든 두꺼운 면과 수제비가 섞인 찰콩국수가 대표 메뉴. 일반 콩국수도 함께 선보여 면 취향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가족이 직접 농사지은 국내산 콩으로 만드는 콩물은 진하고 걸쭉하다. 조용한 동네 맛집이었으나 유튜브 '침착맨' 채널에 소개되며 멀리서도 찾아오는 콩국수 맛집으로 자리 잡았으며 평일은 점심에만 영업한다.
이연규유달전통맷돌면옥(하당큰집 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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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목포 상동에 자리한 콩국수 전문점. 국내산 콩을 맥반석 맷돌로 갈아 만든 부드러운 콩물과 직접 개발한 자색 고구마 쌀면을 넣은 콩국수로 알려졌다. 오디즙을 넣어 먹는 보랏빛 오디 콩국수도 인기. 이곳의 콩은 전남 무안에서 전량을 공수하며 인진쑥, 오디, 자색고구마 등 국내의 우수한 농산물을 활용한 건강한 콩국수를 맛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