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평화를 끝낸 전쟁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마거릿 맥밀런이 제1차 세계대전을 결과보다 원인에 초점을 맞춰 재해석한 '평화를 끝낸 전쟁'(원제: The War That Ended Peace)으로 돌아왔다. 그는 전작 '파리 1919'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역사학자다.

맥밀런은 '평화를 끝낸 전쟁'에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까지의 과정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그는 전쟁 발발 원인을 단순히 암살이나 군비 경쟁 같은 단편적 요소로 보지 않는다.


그는 당시 유럽 각국 지도자들의 성격과 선택,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국제 질서와 사회 분위기까지 면밀히 분석하며 "왜 전쟁은 피할 수 없었는가"라고 묻는다.

책은 세 부분으로 나뉜다. 전반부는 유럽 외교 질서의 재편 과정을 다룬다.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프랑스, 러시아 등 유럽 열강이 직면한 정치적·사회적 불안, 지도자들의 오만과 보수주의적 반동이 어우러진 복잡한 배경을 묘사한다.

중반부에서는 발칸 전쟁, 민족주의 대두, 군비 경쟁 등을 거쳐 점점 '전쟁은 불가피하다'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과정을 그린다. 후반부는 1905년 이후 일련의 위기와 1914년 사라예보 사건으로 치닫는 과정을 추적하며, 결정적 순간에 내려진 선택들을 재구성한다.


맥밀런은 당시 강대국 지도자들이 보여준 판단 미스와 심리적 압박, 그리고 체계화된 군사 계획이 평화적 선택지를 어떻게 무너뜨렸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독일은 러시아와의 충돌을 두려워했고, 러시아는 세르비아를 지원하지 않으면 민족주의를 포기해야 했다. 프랑스는 동맹 의무에 따라 움직였고, 영국은 전쟁을 방지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쳤다.

책에는 지도자들의 오만뿐 아니라 평화를 지키려 했던 노력들도 담긴다. 앤드루 카네기, 알프레드 노벨 등은 국제중재재판소 설립과 세계 평화에 기여하고자 했고, 사회주의 세력은 제2인터내셔널을 통해 전쟁에 반대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복잡한 국제 관계 속에서 이들 노력은 결국 무산됐다.

책 후반부에선 1914년 각국의 군사 계획이 오히려 전쟁을 유도한 아이러니한 구조를 고발한다. 당시 지도자들은 지연된 결정을 두려워했고, 군사 전략은 방어보다 공격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외교적 협상은 제한됐고, 전쟁은 기정사실화됐다.

저자 마거릿 맥밀런은 캐나다 출신의 역사학자로, 옥스퍼드 대학교 학장을 역임했다. '파리 1919'로 국제적 명성을 얻은 그는 이번 책에서도 특유의 정밀하고 직관적인 분석을 통해 전쟁의 복잡한 기원을 명료하게 풀어냈다. 특히 군사와 외교를 넘나드는 서술, 지도자 개개인의 선택에 대한 심리적 묘사가 탁월하다.

'평화를 끝낸 전쟁'은 단순한 전쟁사 해설을 넘어, 오늘날의 국제 정세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유럽이 오랜 평화 뒤에 전면전으로 치달았듯, 오늘날 국제 질서 역시 위기에 놓여 있다. 저자는 경고한다. "전쟁은 피할 수없는 것이 아니라, 피하려는 노력이 없을 때 일어난다."

△ 평화를 끝낸 전쟁/ 마거릿 맥밀런 지음/ 허승철 옮김/ 책과함께/ 5만 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