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 예능만큼 트렌드에 민감한 분야가 있을까. 한때 스튜디오에서 연예인들이 모여 게임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면, 지금은 아예 게임 속으로 들어간 듯한 체감형 게임, 추리 예능이 나오는 시대다. 게다가 이제는 스포츠 같은 궁극의 실제 상황들을 담는 리얼리티 예능도 등장했다. 그런데 이 모든 예능의 트렌드를 하나하나 선구적으로 시도하고 도전함으로써 그 영역을 만들어온 예능 PD가 있다. 바로 SBS 출신 조효진 PD다. 우리에게는 '런닝맨'으로 가장 많이 알려졌지만, 그는 'X맨', '패밀리가 떴다'를 거쳐 '런닝맨'으로 글로벌 예능의 길을 열었다. 또한 글로벌 OTT를 통해 '범인은 바로 너' 같은 블록버스터 추리 예능이나 '더 존:버텨야 산다' 같은 서바이벌 예능을 선보였다. 그는 이제 리얼리티 시대를 맞아 스포츠 예능 '슈팅스타' 시즌1을 성공적으로 이끈 데 이어 시즌2도 공개하고 있다. 시대를 관통한 이 예능 PD의 저력 때문일까. 그를 보면 한국 예능의 흐름이 손에 잡힌다.

◇ '슈팅스타', 예능과 진짜 축구 사이
조 PD의 사무실은 입구부터 어딘가 현장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현장, 특히 경기장에서 썼을 각종 방송 기자재가 여기저기 쌓여 있어 마치 창고 같은 느낌마저 든다. 쿠팡플레이 '슈팅스타'라는 스포츠 예능을 하면서 생겨난 사무실 풍경이다. K리그의 저변을 넓힌다는 좋은 취지로 시작한 스포츠 예능 '슈팅스타'에 대한 진심이 그 사무실 풍경에도 묻어난다. 조 PD는 '런닝맨'이나 '범인은 바로 너'처럼 게임이나 미션 구조를 가진 예능 프로그램을 주로 해왔다. 하지만 진짜 축구 경기를 담아내는 '슈팅스타'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일단 녹화장에서 제일 많이 다른 것 같아요. 물론 예전에 해왔던 프로그램들도 출연자들은 모르는 상황에 들어가 알아서 리얼하게 그걸 소화해 내는 거지만 어쨌든 저는 이거를 짰기 때문에 그 상황을 알잖아요. 이 상황 다음에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좋겠다, 근데 이걸 안 하고 딴 걸 하면 더 좋다, 이런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보는데요. '슈팅스타'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혀 알 수 없어요. 녹화장에 들어가면 그냥 저도 순수한 팬이 되는 거예요. 그저 팬처럼 바라보고 있는 거죠."
'슈팅스타'는 예능일까 진짜 축구일까. 레전드 선수들이 다시 모여 만들어진 슈팅스타 팀의 단장 박지성은 흥미로운 답변을 내놓은 바 있다. 예능이지만 그라운드에 들어가면 리얼이라고.
"섭외할 때 예능을 한다고 하면 다들 어려워했을 거예요. 박지성 단장을 섭외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죠. 고민도 굉장히 많이 했고 절대로 쉽게 결정하시는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그래도 과거 '런닝맨' 때 친분이 있어(그때가 박지성의 첫 예능 출연이었단다) 런던까지 찾아갔죠. 처음에는 거절의 눈빛이 분명했어요. 또 섭외가 쉽지 않을 것 같았죠. 이번에는 단장으로 와주십사 한 거니까. 그래서 망설이다 이렇게 얘기했어요. '우리는 이거 진짜 축구할 겁니다'라고. 또 최용수 감독님한테도 똑같이 얘기했어요. 그래서 처음에 약속한 게 뭐냐 하면 경기 시작하기 1시간 반 전부터는 '노터치'. 그러니까 뭘 해달라는 얘기 하기 없기, 그냥 카메라만 이렇게 계속 따라다니는 거죠. 왜냐하면 축구 선수들은 루틴이 있거든요. 거기 끼어들면 경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죠."
최 감독이 예능은 안 하겠다고 했다지만 '슈팅스타'를 보다 보면 타고난 예능감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또 의외로 예능 욕심도 강해 보인다. 물론 경기에 임할 때는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하지만, 어떤 멘트들은 예능인 뺨치는 재치가 엿보인다.
"최 감독님은 원래도 재밌어요. 술도 좋아하시고. 근데 처음에는 약간 의심을 하셨죠. '내가 조 PD를 조사를 해보고 왔다'면서 '이거 예능인데, 예능 할 거 맞는데' 이러시더라고요. 근데 전 진지하게 축구할 거라고 했어요. 프로 레전드 선수들을 불러놓고 축구를 진지하게 안 하면 의미가 없지 않겠냐고 했죠."
하지만 '슈팅스타' 시즌2에서 스페셜 매치로 치러진 슈팅스타팀과 K4올스타팀의 대결을 보면 이들이 축구에도 진심이지만, 예능에도 진심이라는 게 느껴진다. 박 단장이 슈팅스타의 수석코치인 설기현을 K4올스타팀의 감독으로 세워 놓으면서, 최 감독과 설 감독의 웃기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감독 신경전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본래 설 코치는 늘 감독만 했던 사람이라 감독 욕심이 굉장히 많아요. 그래서 시즌1에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감독하고 싶다', '내가 하면 더 잘할 수 있다' 그러곤 했죠. 그래서 스페셜 매치이고 연습 경기니까 이렇게 한번 붙여보면 재밌겠다고 생각했죠. 골을 먹을 때마다 최 감독의 리액션이 너무 재밌었어요. 워낙 재밌는 분들이라 '예능은 감독님 믿고 저희는 축구합시다' 이제 이렇게 됐죠."

◇ '축알못'도 이해할 수 있는 축구 예능이 가능했던 이유
사실 스포츠 예능은 진입장벽이 있다. 축구는 그래도 저변이 넓은 편이지만, 그럼에도 룰조차 낯선 시청자들도 적지 않다. 그 장벽을 '슈팅스타'는 어떻게 넘으려 했을까.
"제가 '슬램덩크' 세대잖아요. 근데 공동 연출하는 홍진희 PD는 '하이큐'를 좋아했어요. 저는 축구도 너무 좋아하는데 홍 PD는 축구를 전혀 몰랐어요. 이런 차이가 프로그램에는 좋게 작용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홍 PD가 연출을 하면 분명히 축구를 모르는 사람들도 좀 더 쉽게 축구에 접근할 수 있겠다 싶었죠. 그러면서 홍 PD랑 연출 방향을 논의했는데 좀 '청춘만화'처럼 만들면 좋겠다는 방향이 나왔죠. 은퇴한 선수들이지만 여전히 성장기로 그리면 재밌으니까요. 제일 좋았던 댓글 중 하나는 '축구 하나도 모르는 가정주부인데도 이거 너무 가슴이 끓어오른다'는 댓글이었죠. 그걸 보면서 의도가 맞았다고 생각했어요."
청춘만화 같은 방향성이 있다지만 스포츠는 각본이 있을 수 없다. 스토리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보다 생생한 선수들의 경기 내용과 더불어 경기 중 나누는 대화, 하다못해 힘들게 내뱉는 숨소리 같은 디테일한 자료들이 필요했을 터다.
"최대한 카메라를 밀접하게 배치하는 걸 고민했어요. 선수들에게 체스트 캠을 달았는데 연기자들도 아니고 축구 선수들이라 축구에 영향을 주면 안 되기 때문에 아예 체스트 캠을 분해해서 따로 만들었죠. 자기들끼리 얘기하는 내용이나 심판한테 어필하는 것까지 담기게 됐죠. 경기장 안에서의 보다 디테일한 이야기들을 통해 '청춘만화'의 스토리텔링이 가능할 수 있었어요. 성공도 있지만 실패도 있고 때론 싸우기도 하고…물론 방송에 싸우는 게 나오는 게 쉽지는 않잖아요. 근데 여기서는 이기고 싶어서 서로 의견 다툼을 하는 거니까 괜찮더라고요. 스포츠 정신이 들어가기 때문에 자연스러우면서도 강한 서사가 되는 거죠."
'자세히 봐야 예쁘다'는 시도 있지만 스포츠 역시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봐야 제대로 볼 수 있다는걸 '슈팅스타'는 증명했다. 멀리서 보면 '왜 저렇게밖에 못 뛰지' 했던 게 가까이서 보면 하고 싶어도 몸이 안 따라주는 안타까운 장면으로 다가온다.
"가까이서 보면 숨소리만 들어도, 머리로는 가는데 몸이 못 따라가는 게 느껴지죠. 특히 은퇴한 레전드들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잘했던 시절을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픈 거죠. 그런데 처음에는 힘들어하던 선수들이 뒤로 갈수록 잘 뛰어요. 이근호 선수나 구자철 선수도 처음에는 좀 쉽게 본 거예요. 실제로 이근호 선수 같은 경우에는 3, 4회까지는 거의 반성의 아이콘이죠. 계속 대국민 사과를 하고 '더 잘해보겠다'고 다짐하는데, 처음에는 웃어도 뒤로 갈수록 인터뷰의 웃음기가 사라지더라고요. 구자철 선수도 처음에는 몸이 너무 불어서 '이거 구자철의 다이어트 프로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는데요. 경기를 뛰기 시작하면서 두 달 정도 만에 약 7㎏을 감량했어요. 축구 선수들은 몸이 불으면 못 뛰는 정도가 아니라 부상이 오거든요."
조 PD는 스포츠의 결과만큼 과정의 아름다움을 더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건 체스트 카메라 같은 새로운 장비들을 투여해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이게 만들고 들리지 않던 것들을 들으면서 가능해진 결과였다. 또한 '슈팅스타'의 경기 중계가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드론 카메라를 통해 역동적인 장면들을 잡아낸다는 점이다. 마치 게임 하면서 봤던 그 관점을 축구 중계를 통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요즘처럼 팬들이 중요해진 입장이라면, 스포츠 중계에도 이런 카메라들의 투입은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특수장비로 스파이더 캠이 있잖아요. 보통 월드컵 같은 큰 경기에 레일 줄을 달아서 쓰는 카메라인데, 축구 실제 경기에는 거기까지만 쓸 수 있거든요. 사실 저희가 쓰는 레이싱 드론은 좀 더 작아서 몸에 부딪히더라도 안전한 것이지만, 그래도 혹여나 부상 위험이나 경기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기 때문에 실제 축구 경기에서는 쓰지 않죠. 이 지점에서 '슈팅스타'는 방송인 거죠. 그럴 일은 거의 없지만 혹여나 드론 때문에 경기에 문제가 생겨도 우린 잠시 끊었다 갈 수 있죠. 선수들 입장에서는 이런 새로운 촬영을 너무나 좋아해요. 역동적인 장면이 나오니까요."

◇ 스포츠 중계 그 이상을 담는 스토리텔링의 미학
드론 카메라가 2대, 중계 카메라가 12대 이상 들어가고 또 선수들을 잡는 카메라가 따로 붙는다. 여기에 선수에게 붙여진 체스트 카메라와 공과 상관없이 인물들을 팔로우하는 카메라, 레일에 얹어지는 카메라…. 한 마디로 스포츠 예능에는 경기에만도 100대에 육박하는 카메라들이 투입된다. 중요한 건 이 많은 카메라가 잡아내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편집하는 과정이다. 과거 '런닝맨' 시절도 사실 크게 다르지는 않을 테지만, 스포츠의 경우 이를 하나의 스토리로 묶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을 듯싶었다.
"'패밀리가 떴다'나 '런닝맨'을 할 때도 촬영 데이터들은 많았는데, 그래도 그 경우에는 대충의 어떤 스토리 라인으로 흘러가거든요. 그런데 이건 스포츠이기 때문에 방향을 종잡을 수가 없어요.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스토리 자체가 완전히 달라지죠. 그냥 중계라면 경기에서 지면, 그 지는 것만 보여줄 뿐이죠. 하지만 이건 방송이잖아요. 왜 졌는지를 저희 나름대로 열심히 분석을 해요. 이런저런 이유를 찾아내고 축구 전문가들에게 물어보기도 하면서 스토리를 잡아내요. 스포츠 중계와는 다른 포인트가 생기죠."
'슈팅스타2'의 스페셜 매치에서 슈팅스타팀이 아깝게 2:3으로 졌지만, 방송은 K4 올스타팀의 스토리를 잡아줌으로써 이 경기 자체가 얼마나 의미 있었는가를 이야기해 줬다. K4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에게 이 경기가 하나의 희망을 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승패만 보던 관객의 입장에서 진짜 스포츠의 묘미가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청춘만화 얘기를 했었잖아요. 예를 들어 '슬램덩크'를 보면 주인공 팀 못지않게 상대 팀의 서사를 굉장히 많이 할애해요. 그 이름까지 다 기억할 정도죠. 마찬가지로 슈팅스타팀이 상대하는 K4리그 선수들, 이번 K3리그 선수들의 축구에 대한 진심 또한 담아내려 합니다. 아르바이트하면서 축구를 하고 밤에는 훈련을 하는 선수들이거든요. 이들의 청춘만화 같은 서사들이 쌓이니까 승부도 좋지만 이 사람들이 준비하는 과정이나 축구를 생각하는 마음 같은 것들도 되게 예쁜 이야기라는 걸 알게 돼요."

◇ 게임 예능의 진화, 그 중심에 섰던 조효진 PD
'슈팅스타'가 경기 자체는 완벽한 리얼이지만 이를 전체적으로 스토리텔링 해 풀어내는 과정은 조 PD가 가진 예능 연출의 노하우들이 집적된 결과다. 실로 조 PD의 필모를 보면 한국의 예능사, 특히 게임 예능의 흐름이 꿰어질 정도로 그 진화의 과정에 서 있었다는 실감이 든다.
"'X맨' 이전에 조연출로 2년 동안 한 10개 정도를 했죠. 'X맨'은 처음에 조연출로 들어가 끝날 때까지 했습니다. 당시에는 게임을 개발하는 일이 관건이었죠. 그 후에 '패밀리가 떴다'로 야외에서의 리얼 버라이어티를 경험했고 그다음 '런닝맨'을 하면서 본격 게임 예능을 하게 됐죠."
조 PD가 이끌었던 초창기 '런닝맨'은 말 그대로 다양한 게임 서사의 실험장에 가까웠다. 당시 나는 '런닝맨'의 그런 시도가 '게임 예능의 무한도전'처럼 보였는데 그만큼 그간 시도되지 않았던 다양한 실험들이 등장했다. 예를 들어 스파이 콘셉트나 이름표 떼기 같은 요소들이 흥미로웠고, '초능력자'나 '셜록 홈스' 콘셉트의 스토리가 들어간 게임도 등장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건 게임 예능이지만 서사 전개에 있어서는 마치 영화 같은 고급진 연출들이 들어갔다는 점이었다.
"처음에 이름표 떼기를 했을 때는 약간 유치하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거든요. 다 큰 어른들 나와 가지고 애들 놀이 같은 걸 하는 것처럼 보인 거죠. 그래서 다소 유치한 게임을 한다고 해도 포장은 최대한 고급지고 세련되게 해보자고 생각했죠. 연출도 공을 들였지만 스토리에 특히 신경을 썼어요. 이름표를 떼면 진짜 사람이 죽는 것처럼 설정을 넣고, 셜록 홈스 추리 같은 것도 과감하게 시도하고…다행히 훌륭한 출연자들이 몰입을 잘해줘서 스토리가 완성될 수 있었죠."
그렇게 조 PD는 스토리를 기반으로 하는 게임 예능의 세계를 열었다. 그리고 OTT의 시대가 열리자 이를 좀 더 글로벌판으로 확장한 블록버스터 게임 예능을 선구적으로 꺼내 놨다. '범인은 바로 너'였다. '범인은 바로 너'가 흥미로웠던 건 이제 스토리가 하나의 세계관으로 확장되었다는 점이었다.
"딱히 제가 블록버스터를 막 좋아해서 판을 크게 벌인 건 아닌데, 이게 스토리나 세계관을 나름 만들려다 보니까 조금 판이 커진 건 사실인 것 같아요. 그건 규모보다 좀 더 거대한 스토리를 만들려다 보니 그렇게 된 거죠. 좀 더 세계관을 리얼하게 출연자들이 느끼게 하기 위해서 세트에도 공을 들였는데, 당시에는 비용이 많이 들어 예능에서 거의 쓰지 않았던 더미(사체를 구현하기 위해 사용한)도 활용했죠."
지금은 추리 예능에서 더미 활용 같은 게 조금은 일반화된 경향이 있다. 그만큼 실제 사건 현장에 들어가서 조사를 해야 하는 과정이 담기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범인은 바로 너' 같은 프로그램이 이러한 추리 예능에 선구적인 역할을 한 지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조 PD는 여기서 머물지 않고 '더 존:버텨야 산다' 같은 서바이벌 예능에도 뛰어들었다. 코로나 시국에 맞춰 '생존'이라는 키워드가 전 지구적으로 관심을 갖는 상황이었다.
"사실 '더 존'은 코로나 시국보다 조금 더 먼저 시작하긴 했었어요. 그러다 코로나 시국이 되면서 조금 더 이런 메시지를 담을 수 있겠다 해서 이를 강화시킨 거죠. 예를 들면 격리하는 콘셉트 같은 게 그랬죠. 지구 온난화에 대한 얘기를 담아보기도 했죠."

◇ 재미의 차원도 다양하게 진화했다
'더 존' 같은 서바이벌 예능은 코로나 시국에 나와서인지 주제 의식이 좀 더 강하게 담겨 있었다. 그러한 메시지성도 중요한 재미 포인트가 됐다는 것이다. 이것은 예능에서의 재미라는 차원도 다양하게 진화했다는 걸 보여준다. 그저 웃음의 재미만이 아니라, 이제는 생각하는 재미까지 확장된 것이다.
"예능에서 재미가 최우선이라는 저도 똑같아요. 근데 그 재미라는 게 요즘은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X맨' 시대만 해도 재미는 웃음이 설렘 같은 것에서 만들어졌죠. 하지만 요즘은 재미의 차원이 굉장한 다양해졌어요. 예전에 미처 생각지도 못한 독한 것들이 재미 요소가 되기도 하고, 또 궁금증이나 감동 같은 것들도 재미 요소가 됐죠. 주제 의식, 메시지도 재미의 하나가 됐는데 중요한 건 너무 드러내 놓고 하면 안 된다는 거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것 같아요. '슈팅스타' 같은 경우도 이들이 열심히 한다는 걸 대놓고 강조하기보다는 과정 속에서 조금씩 느껴지게 해주는 게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그런 적정선을 지키는 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스포츠의 재미도 다르지 않다. 많은 이들이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이겼으면 하고 바라지만 그건 어쩌면 스포츠를 반만 즐기는 것과 같다.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면서 같이 울고 웃고 하는 것들을 함께 경험하는 것이 다 스포츠의 진짜 재미가 아닐까.
"'슈팅스타'의 경우 그래서 축구를 안 좋아하는 분들이 좀 더 많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큽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축구를 좀 더 좋아하게 되고 이해하게 됐으면 하는 바람이죠. 최근에 정재형 씨가 운영하는 '요정재형'에 우리 선수들이 나갔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전화를 한 정재형 씨가 프로그램이 너무 재밌다고 하더라고요. 3일 만에 이걸 다 몰아봤다는 거예요. 별로 축구를 좋아하지 않던 정재형 씨에게 어떻게 축구에 관심이 생겼냐고 물어봤더니 여전히 중계는 잘 보지 않는데 이 프로그램은 다른 면에서 본다고 하더군요. 선수들의 애환이나 이런 서사들이 너무 좋다는 거예요. 그래서 선수들을 초대해서 그 채널에 출연하게 됐던 거죠."
예능의 재미는 이제 웃음의 차원을 넘어서 다양해졌다. 지금은 그 다양한 스토리 안에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감동도 받고 뭔가 짜릿함도 느꼈다가 굉장히 뭔가 답답함도 같이 느끼는 이 일련의 모든 과정을 재미로 느끼는 시대에 들어온 것이다.
"'X맨' 시절에는 사실 녹화를 다 해놓고 나서 마지막에 엑스맨을 뽑는 과정이 있었어요. 그게 지금으로 따지면 추리죠. 사람들이 모여서 토론하고 누가 엑스맨인지를 정하는 거죠. 제 기억으로는 한 10분 정도 분량이 나갔어요. 근데 첫 회 반응이 별로 안 좋았어요. 당시에는 이를 재미로 느끼지 못한 거죠. 제목이 엑스맨인데 결국 3분, 4분 정도로 짧게 줄일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런닝맨' 시절의 스파이 개념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포인트가 됐죠. 재미에 대한 감수성도 계속 이렇게 변하는 것 같아요."
조 PD와 그가 지금껏 만들어왔던 예능 프로그램들을 이야기하다 보니 우리네 게임 예능의 역사를 훑어보는 시간이 됐다. 그만큼 조 PD가 진화를 거듭해 온 우리네 게임 예능이라는 한 분야에서 분명한 지분을 갖고 있다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다. 실제로 '런닝맨'은 한국 예능이 해외에서도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는 걸 선제적으로 보여준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다. 그가 걸어온 게임 예능의 길은 결국 그 궁극의 지점이라고 할 수 있는 '각본 없는 드라마' 스포츠 영역으로까지 확장됐다. '슈팅스타' 같은 프로그램은 예능의 차원을 넘어서 스포츠 중계의 진화를 위해서도 실험적인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다. 그의 도전과 실험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가 쏠 예능의 골이 어떤 또 다른 재미의 골문을 향해 날아갈지 앞으로도 계속 지켜볼 일이다. 그 행보가 또 다른 예능사의 한 챕터를 열 수도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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