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중심에 섰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향년 88세로 별세했다. 사진은 2015년 11월2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고 김 전 대통령 빈소에 놓인 고인의 영정사진 모습. /사진=머니투데이(사진공동취재단)

2015년 11월22일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을 지낸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향년 88세로 별세했다.

'삼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 시대의 한 축을 담당했던 그는 군사정권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고 이후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군사정권 시절의 권위주의 구조를 해체하고 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 단행, 지방자치 전면 실시, OECD 가입 등 국가 개혁 과제를 강력히 추진했다. 또한 6·10 민주항쟁의 성취를 제도화하고 민주화 세력 통합을 이끌어 평화적 정권교체의 길을 연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민주화 상징에서 문민정부 대통령으로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중심에 섰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향년 88세로 별세했다. 사진은 1980년대 군사독재시기 김 전 대통령이 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하다 경찰 버스에 강제 연행되는 모습. /사진=뉴시스(독자제공)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54년 만 26세의 나이로 최연소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정치에 입문했다. 군사독재 시기 권력에 맞선 그는 야당 활동을 멈추지 않고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의 중심에 섰다. 특히 1983년 전두환 정권에 맞선 23일 단식투쟁은 국내외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이를 계기로 그는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김 전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군사정권 종식의 기반을 마련하며 민주주의 전환의 핵심 역할을 수행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93년 최초의 민간인 대통령으로 문민정부를 출범시켰다. 그는 금융실명제 시행과 부정부패 척결, 군부 정치 개입 차단 등 강력한 개혁을 추진하며 대한민국 정치·사회 구조를 바꿨다. 그가 단행한 금융실명제는 오랜 음성적 자금(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비공식적으로 조성·운용되는 자금)을 줄이고 경제 투명성을 높여 오늘날까지 대한민국 금융 제도의 기초를 다진 중요한 성과로 평가받는다.

비록 정부 말기인 1997년 발생한 IMF 외환위기로 인해 경제 운용 능력에 대한 비판을 받았지만 학자들은 문민정부가 민주주의 제도화를 본격적으로 이끈 역사적 의미가 크다고 평가한다. 이로 인해 김 전 대통령은 반독재 정치인에서 민주화 상징으로 나아가 제도적 개혁을 실현한 문민정부 대통령으로 한국 현대사에 깊은 족적을 남겼다.

YS 정계 은퇴와 마지막 길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중심에 섰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향년 88세로 별세했다. 사진은 2015년11월26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 병원에 마련된 빈소에서 고 김 전 대통령의 발인이 엄수되는 모습. /사진=머니투데이

김 전 대통령은 정계 은퇴 후 비교적 조용하고 차분한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나 긴 정치 여정과 사회 개혁을 위한 헌신의 세월이 그의 몸에 큰 부담으로 다가왔던지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점차 건강이 악화됐고 2015년 11월22일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패혈증성 쇼크로 별세했다. 당시 김 전 대통령 별세는 대한민국 사회에 큰 슬픔을 안겼고 정부는 그의 민주화 기여와 정치적 공헌을 기리며 국가장을 거행했다.

김 전 대통령은 국회의원으로 정치권에 발을 디딘 이후 군사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국민 통합과 사회 개혁을 위해 헌신한 지도자로 기억되고 있다. 생전 그가 남긴 "민주주의는 결코 양보할 수 없다"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고 국가 권력은 국민의 행복을 위해 존재한다"는 신념은 여전히 정치·사회적 지침으로 회자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