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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9월15일 국내 첫 인스턴트 라면인 '삼양라면'이 출시됐다. 전쟁의 상처가 채 가시지 않은 시절, 먹을 것이 부족했던 국민에게 간편하게 배를 채울 수 있는 새로운 음식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삼양식품 창업자 전중윤 회장은 일본에서 라면 제조 기술을 들여와 국산화에 나섰다. 당시만 해도 '면발을 튀겨 오래 보관한다'는 개념조차 낯설었지만 밀가루 원조가 넘쳐나던 시대적 배경 속 그는 새로운 가능성을 읽었다. 그 결과 '국산 1호 라면' 삼양라면이 세상에 나오게 됐다.
"10원짜리 라면… 한국인의 밥상을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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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양라면의 출시 가격은 10원이었다. 당시 서민 한 끼와 비교하면 절대 가볍지 않은 금액이었다. 또 초창기에는 일본식 라멘에 가까워 다소 느끼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때 박정희 대통령이 "한국인은 짜고 매운 맛을 좋아한다"는 조언을 했고 전 회장은 스프 맛을 크게 조절했다.
얼큰하면서도 짭조름한 국물로 거듭난 삼양라면은 국민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이후 소비자 사이에서는 "국물 맛이 진하고 간편하다"는 호평이 이어졌고 학생과 노동자들 사이에서 빠르게 입소문을 탔다.
성장 배경에는 정부 정책도 있었다. 당시 박정희 정권이 추진한 '혼·분식 장려 정책'은 쌀 대신 밀가루 소비를 권장했고 학교와 군대, 직장 구내식당까지 라면을 도입했다. 국민들은 점차 쌀밥 대신 라면에 익숙해졌고 삼양라면은 그 중심에서 시대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삼양라면은 이후 반세기 넘게 꾸준히 사랑받으며 한국 라면 역사의 첫 장을 지켜왔다. 1980년대 이후 농심, 오뚜기 등 경쟁사 제품들이 잇따라 등장했지만 원조 브랜드 삼양라면은 고유의 담백한 맛과 상징성으로 자리를 지켰다.
최근에는 레트로 감성 열풍 속 '원조라면'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출시 60년이 넘은 지금도 변함없이 국민 라면으로 자리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