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강지호 기자

혁신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현장의 빈틈에서 출발했다. 자동차 디스플레이 커버 소재, 문서 업무를 처리하는 AI(인공지능), 멀티클라우드 인프라, 폐배터리 재활용 설비까지.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한 번 구조가 바뀌면 시장의 규칙이 함께 달라지는 영역이다.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와 KB국민은행이 함께 운영하는 'KB유니콘클럽'의 우수 졸업기업으로 선정된 4곳이 바로 그런 회사들이다. 자동차 디스플레이용 강화플라스틱 소재를 개발·생산하는 청명첨단소재(1기), 문서를 '구조와 의미'로 이해하는 문서 AI 기업 한국딥러닝(2기), 멀티클라우드 통합 운영 관리 플랫폼 '오딘(Odin)'을 만드는 아타드(3기), 폐배터리 재활용 설비 기업 디와이이엔지(4기)는 현장에서 반복되던 구조적 한계를 문제 삼았고 그 지점을 기술로 다시 썼다.

시작은 모두 '현장 문제'에서

청명첨단소재의 출발점은 자동차 산업 현장이다. 김민기 대표는 전기차 확산과 함께 대화면·곡면 디스플레이 수요가 늘어나면서 기존 소재의 한계를 체감했다.


그는 "자동차 시장에서 사용되는 플라스틱 소재는 대부분 일본에서 수입되고 있어 국산화가 절실했다"며 자동차·스마트폰 디스플레이 커버용 강화유리를 대체할 초경량 강화플라스틱 소재로 이 문제를 정면 돌파하고 있다.

한국딥러닝은 사무실 책상 위에 쌓인 문서더미에서 문제를 발견했다. 김지현 대표는 "OCR(광학문자인식), RPA(로보틱 프로세스 자동화) 같은 기술은 있었지만 실제 기업과 공공기관에서는 여전히 사람이 문서를 읽고 입력하는 수작업이 남아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문서를 AI가 사람처럼 이해하게 만들 수 있다면 업무 구조 자체를 바꿀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며 텍스트가 아니라 표·조항·문단·주석·이미지·필기까지 섞인 구조 전체를 이해하는 문서 AI가 한국딥러닝의 방향이 됐다.


아타드는 AI 시대의 비용 구조에 주목했다. 박영선 대표는 "기업들이 AI/LLM(대형언어모델) 기반의 혁신적인 서비스를 제공함에도 불구하고, 모델 개발 및 운영 비용이 고객당 발생하는 수익보다 높아 재무적 리스크에 직면하는 상황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비효율의 핵심 원인 중 하나가 바로 클라우드 자원의 비효율적인 운영과 그로 인한 막대한 비용 발생 때문"이라고 짚었다. 여러 클라우드를 하나의 플랫폼에서 통합 관리하며 비용을 최적화하는 멀티클라우드 통합 운영 관리 플랫폼 '오딘'은 이같은 문제의식에서 나왔다.

디와이이엔지는 전기차 시장 성장의 이면을 봤다. 신동엽 대표는 "유가금속 가격 변동성과 지역적 리스크, 환경 문제를 고려할 때 폐배터리 재활용 시스템은 필수적으로 병행돼야 할 기술이자 사업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배터리 원재료의 가격·공급·환경 리스크를 동시에 다루는 폐배터리 재활용 설비가 디와이이엔지의 해법이다.

"성장 궤도를 바꿔줬다"… KB유니콘클럽의 역할

사업 방향성은 명확했지만 현실의 벽은 만만치 않았다. 자금 문제, 시장의 신뢰 확보 등 스타트업이 홀로 감당하기엔 버거운 과제들이 끊임없이 뒤따랐다.

이들에게 KB유니콘클럽은 기술을 사업으로 키운 '디딤돌'이 됐다. 자금·네트워크·신뢰 등 세 갈래에서의 지원이 스케일업의 분기점이 됐다는 설명이다.

김민기 청명첨단소재 대표는 "KB유니콘클럽을 통해 초기 운영자금을 투자 받았을 뿐만 아니라 2023년 시리즈A 투자에 성공했다"고 전했다. 이때 확보한 자금은 현재 진행 중인 생산공장 건축의 든든한 밑거름이 됐다.

한국딥러닝은 '회사에 대한 시선'이 달라지는 효과를 체감했다. 김지현 대표는 "KB유니콘클럽은 성장 과정에서 회사를 한 단계 위에서 바라보게 해준 계기였다"며 "단순한 지원을 넘어, 한국딥러닝을 '기술 실험 단계의 스타트업'이 아닌 '성장 가능한 기술 기업'으로 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조언과 기회를 제공했다"고 설명했다. 네트워크 구축과 후속 성장에 대한 시야를 넓히는 데 큰 도움이 됐다는 평가다.

박영선 아타드 대표는 "KB유니콘클럽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고객사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실제적인 비용 절감 사례를 만들어냈고 이를 통해 신뢰를 쌓아나갔다"고 전했다. 플랫폼 '오딘'의 기술성과 시장 잠재력을 대외적으로 인정받아 초기 고객 확보에 힘이 됐다는 설명이다.

신동엽 디와이이엔지 대표 역시 "기술연구와 사업운영에 필요한 정보, 투자유치, 기업홍보 등이 지금의 디와이이엔지로 성장하는데 실질적인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KB 지원 업고 성장… 전세계로 향하는 K-스타트업

이제 이들의 시선은 조금 더 먼 곳을 향한다. 소재·AI·클라우드·재활용이라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 출발했지만 현장의 문제를 기술로 해결하고 그 해법을 국내를 넘어 글로벌 수준의 사업으로 키우겠다는 포부다.

김민기 청명첨단소재 대표는 "향후 3년간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자동차 전장 제조사로 시장 진입을 확대해 2029년에는 자동차 디스플레이 커버 윈도우 시장의 40%를 점유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마트폰, 가전 시장에도 진입한 뒤 글로벌 소재 공급회사로 성장해 2029년 상반기 IPO(기업공개)를 목표로 두고 있다.

김지현 한국딥러닝 대표는 한국딥러닝이 국내 문서 AI 분야의 기준점이 되길 희망한다. 김 대표는 "공공·금융·제조처럼 문서가 가장 복잡한 영역에서 '이 문제는 한국딥러닝으로 푼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먼 미래에는 문서 업무를 처리하는 방식 자체를 바꾼 혁신 기업으로 기억되는 게 목표다.

박영선 아타드 대표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멀티클라우드 통합 관리·비용 최적화 솔루션의 선도 기업이 되길 바란다"며 "'오딘'이 국내를 넘어 아시아 여러 국가의 기업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클라우드 관리 솔루션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자신했다.

신동엽 디와이이엔지 대표는 "이차전지 소재·재활용 설비 부문에서 독보적인 기술력과 경험을 가진 회사로 인정받는 기업이 되겠다"며 "향후 기업 성장을 기반으로 상장·사업 영역 확대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회사의 성장이 곧 직원들의 행복이 되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