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오는 14일부터 외국산 자동차운반선에 입항 수수료를 부과하기로 하면서 현대차그룹의 수출 부담이 확대될 전망이다. 현대차·기아는 관세 인하 전까지 미국 시장에서 가격 인상을 미루고 판매 확대에 주력할 방침이다. /사진=뉴스1

미국이 외국산 자동차운반선에 입항 수수료를 부과하기로 하면서 현대자동차와 기아의 수출 부담이 커질 전망이다. 해상 물류를 전담하는 현대글로비스의 운항 비용이 증가하면 현대차·기아의 물류비도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현대차·기아는 당분간 관세 부담을 자체적으로 흡수, 미국 시장에서 가격 인상 대신 판매 확대에 주력할 방침이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11일(현지시각) 외국에서 건조된 자동차운반선의 미국 내 입항 수수료를 순톤수(화물 적재 공간 기준)당 46달러(약 6만6000원)로 확정했다. 지난 6월 발표한 톤당 14달러보다 3배 이상 인상된 수준으로 오는 14일부터 시행된다.


자동차운반선 96척을 운영하는 현대글로비스의 타격은 불가피해 보인다. 순톤수 1만9322톤 규모의 7000CEU(1CUE는 차 1대 운반 단위)급 선박 기준, 입항 수수료는 1회 약 12억7000만원으로 추산된다. 선박당 부과 횟수가 연 5회로 제한된 것은 긍정적이지만, 이 경우에도 64억 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입항 수수료는 오는 12월10일까지 납부 유예 기간을 거쳐 부과되기에 현대글로비스가 연말까지 상황을 지켜볼 것으로 관측된다. 이번 USTR 조치 배경에 중국 견제 목적이 있는 만큼, 향후 미·중 관계 개선에 따라 입항 수수료도 완화될 가능성이 있다.

미·중 갈등이 장기화할 경우 현대글로비스는 물론 현대차와 기아의 수익성에도 타격은 불가피하다. 현대글로비스의 운항비 상승분을 화주인 현대차와 기아가 나눠 내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글로비스 관계자는 "운임 인상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며 "우선 자동차운반선의 적재 효율성을 최대한 높이고, 정부와 타 선사, 화주 등 모든 이해관계자와 협의해 대응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관세로 수익성 악화는 현실이 됐다. 현대차·기아는 올해 2분기 실적 발표에서 관세로 인한 영업이익 감소액을 1조6000억원으로 추산했다. 3분기 부담액은 2조5000억원을 웃돌 전망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현대차의 3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사 전망치 평균)는 2조6775억원, 기아는 2조4036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5.2%, 16.6% 감소한 수치다. 경쟁국인 일본과 유럽이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관세율을 15%까지 낮추는 데 성공하면서, 현지 가격 경쟁력도 흔들릴 위기에 처했다.

현대차그룹은 15% 관세가 적용되기 전까지 '버티기 전략'을 유지할 방침이다. 수익성 하락을 감수하더라도 가격 인상을 미루고, 판매량을 늘려 시장 점유율을 높이겠다는 의도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은 지난달 '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단지 관세 때문에 판매가격을 인상할 수는 없다"며 "가격은 수요, 공급과 연관돼있기 때문에 수요와 공급 균형을 최적화하는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올해 3분기 현대차(제네시스 포함)와 기아의 미국 판매량은 48만175대로 전년 동기 대비 12% 늘었다. 현대차는 12.7% 증가한 26만538대, 기아는 11.1% 늘어난 21만9637대를 기록하며 분기 기준 역대 최대 판매 실적을 달성했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최근 현대차·기아의 미국 판매 증가는 가격 동결 효과와 '조만간 가격이 오를 수 있다'는 소비자 인식이 반영된 결과"라며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이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보겠지만, 6개월 이상 지속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시장 점유율 확대와 수익성 방어의 균형을 적절히 잡아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