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와 금감원 조직 개편 등이 백지화됐지만 두 기관 수장은 여전한 쇄신 의지를 드러냈다. 사진은 최근 만난 이찬진(왼쪽) 금감원장과 이억원 금융위원장. /사진=금융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폭주 등 국내외 경제 현안이 산더미인 가운데 금융당국의 어색한 동행이 이어지고 있다. 이억원 금융위원회 위원장과 이찬진 금융감독원 원장이 고위직의 사직서까지 받으며 추진했던 조직개편이 20여일 만에 백지화된 데다 국회 국정감사가 시작되며 후임자 인선 없이 이들이 기존 업무를 그대로 수행하고 있다. 반면 두 기관 수장은 소비자 보호 강화 등을 내세우며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여전히 조직·기능·인력·업무 전반의 개편 의지를 보인다.

13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이 위원장은 지난달 15일 취임 뒤 나흘 만에 금융위 1급 고위직 공무원 4명의 사직서 제출을 요구했다. 대상은 금융위 상임위원 2명,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 1명, 금융정보분석원(FIU) 원장 등 4명이다. 이찬진 금감원장도 비슷한 시기에 부원장보 이상 11명 전원의 사직서를 받았다.


금융당국 수장의 이 같은 행보는 속도가 붙은 이재명 정부의 정부 조직 개편과 맞물려 있지만 당·정의 의견 대립과 내부 반발 등에 부딪혀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은 채 조직 개편도 추진 20여일 만에 백지화됐다. 사직서를 제출한 이들은 고위 정책 실무를 담당하고 있지만 후속 인사 조처가 없는 상황에서 두 기관 수장의 국회 국감 준비까지 동행하게 됐다.

업계에선 정부 조직 개편을 이유로 사실상 퇴출을 통보해 놓고 중요 업무는 지속시키는 기행적 행태라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의 관세 리스크 등 국내외 경제 현안이 가득 찬 상황에서 이재명 정부의 경제 관련 정책의 밑그림을 그려야 할 고위 실무진들이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이면서 리스크도 불가피해졌다는 것.

두 기관의 조직 개편이 추진 20여일 만에 뒤집히자 내부에선 안도 속 뒷말이 무성하다. 새 정부 출범 뒤 조직개편을 통한 고위 실무진 교체는 어느 정도 받아들이는 수순이지만 후속 대처도 없이 판을 뒤집는 행태는 전례를 찾기 힘들다며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고위직엔 사직서를 받고 일반 직원은 조직개편 반대 집회를 여는 등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럼에도 두 금융당국 수장은 뒤숭숭한 내부 분위기 수습보단 '자성과 쇄신'을 거론하며 반성에 초점을 맞췄다. 전면 백지화된 조직개편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이억원 금융위원장과 이찬진 금감원장은 지난달 29일 긴급 회동을 갖고 "금융 소비자 보호 기능의 공공성·투명성의 강화를 위해 뼈를 깎는 자성의 각오로 금융행정과 감독 전반을 쇄신하겠다"고 했다.

두 기관 수장의 조직 쇄신 의지가 강하지만 여당인 민주당에서 관련 개편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해도 국회 본회의 상정까지는 최소 6개월이 소요돼 내년 4월 이후에나 추진이 가능할 전망이다. 당면한 핵심 경제 현안이 가득한 점도 금융위와 금감원 개편이 늦어질 수밖에 없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한정애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최근 열린 긴급 고위 당·정·대 회의 이후 브리핑을 통해 "당과 정부, 대통령실은 미국과 관세 협상, 민생 경제 회복 등 핵심 경제 현안 해결에 국력을 모아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며 관련 정부 조직 개편 철회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이 금융위원장과 이 금감원장은 소비자 보호 강화를 위해 조직·기능·인력·업무 전반의 개편을 추진키로 했다. '원팀'(One-team) 협력을 강화하며 해킹 사고, 불완전판매 등 소비자 피해 사안은 엄정히 감독하고 소비자 보호 관련 국정과제도 적극 추진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