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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사모펀드(PEF)인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 인수 당시부터 부동산 매각과 투자 축소를 병행하는 '현금 회수형 구조'를 설계한 정황이 드러나 논란이다. 핵심 점포 매각 후 재임대하는 방식으로 확보한 현금의 절반을 강제로 배당하고 2019년부터 2021년까지 홈플러스의 연간 자본적 지출(CAPEX)을 2500억원 이하로 제한해 투자 여력은 절반으로 축소했다. 유통 본연의 경쟁력 강화보다 단기 현금 회수에 초점을 맞춘 투자라는 비난이 거세다.
17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승원 의원(더불어민주당·경기 수원시갑)을 통해 입수한 2015년 작성된 홈플러스 인수금융 투자설명서(IM)에 따르면 MBK파트너스와 인수금융 주선 금융기관들은 홈플러스의 23개 점포(약 1조5000억원 규모)를 세일즈앤리스백(SLB) 방식으로 매각해 이 과정에서 유입되는 순현금의 50%를 강제 배당 활용할 계획을 제시했다. SLB는 기업이 자산(특히 부동산)을 팔고 다시 임차해서 사용하는 거래 구조를 말한다.
투자설명서에는 이 강제 배당을 통해 트렌치(Tranche) A 의무 분할상환액 1조1000억원 외에 추가 6995억원의 조기 상환이 가능하도록 설계했다는 내용도 담겼다. 당시 인수금융은 세개의 트렌치로 나뉘었는데 2조4000억원 규모의 트렌치 A는 홈플러스테스코(HPT)가 홈플러스 지분을 인수하기 위해 조달한 주력 대출로 지분 전량을 담보로 설정했다.
투자설명서에는 SLB 매각 대상 점포가 대부분 연매출 5000억원 이상을 기록하는 우량 점포로 구성되고 임대료 산정에는 자본환원율(Cap Rate) 5.4%가 적용된다는 계획이 담겨있다. 이는 매각가의 5.4%를 매년 임대료로 지급해야 한다는 뜻으로 예컨대 1조5000억원 규모의 자산을 매각할 경우 연간 약 800억원의 임차료 부담이 새로 발생한다는 의미다. 단기적으로는 현금 확보에는 도움이 되지만 장기적으로는 막대한 임차료 부담과 핵심 자산 상실이라는 위험을 떠안게 되는 셈이다.
시장에서는 PEF인 MBK가 홈플러스 인수 초기부터 부동산 자산을 매각해 현금을 확보하는데 초점을 맞춘 투자 구조를 설계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SLB를 통한 현금 유입이 기업의 재투자보다는 PEF의 투자금 회수(엑시트)를 염두에 둔 설계였다는 분석이다. 투자설명서에는 홈플러스의 연간 자본적 지출을 2019년부터 2021년까지 2500억원 이하로 제한하도록 명시돼 있다. 이는 인수 초기 약 5000억원 수준이던 투자 여력을 절반으로 줄인 것이다.
사업 성장보다는 부동산 자산 매각으로 자금을 회수하는데 목적을 둔 투자 구조였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실제로 MBK는 2015년 홈플러스 인수 이후 3년 동안 부동산 유동화를 통해 인수 대출금 4조5000억원 중 절반에 가까운 2조원가량(47%)을 상환했다. 구체적으로는 점포·물류센터 부지 등 유휴자산 매각으로 4850억원, SLB로 1조2260억원을 마련했다.
늘어난 '임대료 부담'… 수익성 하락 고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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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플러스의 부동산 매각은 단기적으로 현금을 확보하는 데 집중했으나 이는 점포 리뉴얼, 온라인 전환, 물류 시스템 개선 등 핵심 사업 투자에 대한 제약을 초래했다. 단기적 재무개선을 우선시한 구조가 중장기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토대를 만든 셈이다.
MBK의 2018년 사원총회 보고서에서도 이러한 부작용이 적시됐다. PEF 구조 안에서의 사원총회는 법적으로 펀드 내 최고 의사결정 기구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홈플러스의 평상시 영업 현금흐름(Normalized EBITDA)은 SLB 등에 따라 증가한 임차료를 제외하고도 전년 대비 5.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익성 악화는 지속됐다. MBK의 2019년 사원총회 보고서에는 2019년 상반기(1월~6월) EBITDA가 전년 동기 대비 28.4% 감소했다고 적혀있다. 보고서는 주요 원인으로 '매각 후 재리스 등에 따른 임대료 증가'를 지목했다. 핵심 점포 매각으로 발생한 고정 임차료는 홈플러스의 영업이익률을 잠식했고 결과적으로 장기 수익성 악화의 악순환이 고착된 것이다.
MBK는 그동안 홈플러스 인수를 통해 부동산 개발에 초점을 맞춰온 것 아니냐는 의혹을 부인해왔다. 하지만 MBK측은 관련한 추가 질의에 구체적인 해명도, 자료도 내놓지 않았다. 김승원 의원은 "공공기관에 MBK 유한책임투자자(LP)들에게 받은 자료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며 "그런데 MBK는 공공기관에게 의원실에 자료를 제출할 경우 법적 분쟁을 제기하겠다고 했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의원은 "인수금융 구조 자료를 통해 부동산을 노린 적 없다는 MBK의 거짓말이 또 다시 세상에 드러났다"며 "홈플러스가 장기적인 경영 악화를 겪게 된 데에 MBK가 전적으로 책임이 있는 만큼 3호와 3-2호 펀드에서 수취한 보수 1조2000억원을 전액 홈플러스에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MBK 측은 이 같은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MBK 관계자는 "해당 인수금융 투자설명서는 홈플러스 대주단이 대출채권의 셀다운을 위해서 작성한 것으로 MBK 파트너스가 작성한 것이 아니다"라며 "대출채권에 대한 투자자를 모집하는 과정에서 대주단은 홈플러스가 2015년 당시 상각전영업이익이 8000억원이나 나오는 우량한 투자처이나, 혹시 경영 상황이 악화될 경우에는 홈플러스가 6조7000억원으로 평가 받는 부동산 자산도 있으니 리스크 헤징 차원에서 제한적인 SLB를 활용해 대출채권 투자자들에게 돌려줄 수 있다는 내용"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MBK 파트너스는 우량한 기업을 인수해 더 좋게 만들고 이를 차후에 매각해서 그 매각 수익을 국내외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들(LP)에게 돌려주는 사모투자운용사(GP)로 인수 기업의 자산부터 매각하는 벌처펀드가 아니다"라며 "인수 후 홈플러스가 진행한 SLB는 14개 지점에 대한 것 뿐 20곳이 넘는 점포를 매각하려고 계획 했거나 하지 않았고, 해당 14개 점포의 SLB로 확보한 자금은 홈플러스 운영자금으로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홈플러스 관련 펀드로 지난 10년 간 받은 운영보수는 모두 합쳐도 150억원이 넘지 않는다"며 "운영보수는 MBK가 수익으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펀드 운영을 위한 인건비, 자문료 등으로 거의 모두 소진된다"고 부연했다.
이에 대해 김승원 의원실 관계자는 "IM 문서의 작성 주체가 대주단이든 MBK든 상관없이, 투자설명서에는 MBK가 주도한 자금 회수 구조가 명확히 반영돼 있다"며 "MBK는 '벌처펀드가 아니다'라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인수 직후부터 핵심 자산을 매각하며 현금을 회수한 행태는 벌처펀드와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운영보수가 150억원뿐'이라는 주장 역시 신뢰하기 어렵다"며 "10년 동안 1조2000억원 규모의 인건비·운영비가 빠져나간 구조에서, 단순히 명목상 운영보수만 언급하며 실질적 자금 흐름을 감추는 것은 책임 회피에 불과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