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후 두번째로 2026년도 정부 예산안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 본회의장 연단에 올랐다. 사진은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국회사진기자단

4일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후 두번째로 2026년도 정부 예산안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 본회의장 연단에 올랐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 6월 추가경정예산안 제출을 위한 시정연설에 나선 바 있다. 본회의장에 입장한 이 대통령을 향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좌우로 도열해 기립박수와 환호로 맞이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본회의 개의에 앞서 의원총회를 열고 시정연설 보이콧을 선언했다. 의원들은 검은 정장 차림에 넥타이와 마스크를 착용한 채 로텐더홀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다. 전날 내란특검이 추경호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한 데 따른 반발이었다. 국민의힘은 이를 "야당 탄압"으로 규정했다.


국민의힘의 보이콧으로 반쪽짜리 시정연설이 된 가운데 이 대통령은 연설 말미에서 "비록 여야 간 입장 차이는 존재하고 이렇게 안타까운 현실도 드러나지만, 국민과 나라를 위하는 진심은 다르지 않다고 믿는다"며 야당 불참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AI는 선택 아닌 필수… "AI 시대 고속도로 구축해 성장 미래 열어야"

내년도 예산안은 올해보다 8.1% 늘어난 728조원 규모의 '슈퍼 예산안'으로 국회를 설득할 대통령의 메시지에 관심이 집중됐다.사진은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국회사진기자단

내년도 예산안은 올해보다 8.1% 늘어난 728조원 규모의 '슈퍼 예산안'으로 국회를 설득할 대통령의 메시지에 관심이 집중됐다. A4 용지 12장 분량, 약 22분 동안 진행된 시정연설에서 이 대통령은 대부분의 시간을 급변하는 국제 무역 질서 속에서 국가 생존 전략으로서 인공지능(AI) 투자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데 할애했다.

이날 연설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 역시 'AI'로 총 28차례에 달했다. 이어 '국민'(21회), '투자'(11회), '성장'(11회), '미래'(9회), '협력'(8회), '경제'(6회), '국회'(6회), 'K(이니셔티브)'(5회) 등이 뒤를 이었다.

이 대통령은 취임 5개월이 지난 현 상황을 위급 상황은 벗어난 상태라고 진단하면서도 "위기 상황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안주하거나 만족하기엔 우리가 처한 상황이 결코 녹록지 않다"며 "겪어보지 못한 국제 무역·통상 질서의 재편과 AI 대전환의 파도 앞에서 국가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AI로의 전환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농경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 산업 사회에서 정보 사회로 전환해 왔던 것처럼 AI 사회로의 전환은 필연"이라며 "지난 정부는 연구개발(R&D) 예산까지 대폭 삭감하며 과거로 퇴행했는데 출발이 늦은 만큼 지금부터라도 속도를 높여 선발주자들을 따라잡아야 우리에게도 기회가 생긴다"고 강조했다.

이어 "박정희 대통령이 산업화의 고속도로를 깔고 김대중 대통령이 정보화의 고속도로를 낸 것처럼 이제는 AI 시대의 고속도로를 구축해
도약과 성장의 미래를 열어야 한다"며 "정부가 마련한 2026년 예산안은 AI 시대를 여는 대한민국의 첫번째 예산"이라고 당부했다.

이 대통령은 "AI 시대, 미래 성장과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함께 고려한 전략적 투자인 만큼 국회의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드린다"며 발 빠른 대응과 국가적 결단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취약계층 보호 강화 의지 피력… 방산 4대 강국 도약 선언

사진은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2026년도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마친 뒤 의원들과 인사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국회사진기자단

취약계층 보호 강화 등을 통해 '기본이 튼튼한 사회'를 만들겠다고도 약속했다.

이 대통령은 "새로운 기술 발전은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지만 한편으로는 격차가 커지는 그늘을 드리우기도 한다"며 "시대 변화의 충격을 가장 빨리 가장 크게 받는 사회적 약자와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 책무"라고 말했다.

이어 "저소득층의 안정적 소득 기반 마련을 위해 기준중위소득을 역대 최대인 6.51% 인상해 생계급여를 4인 가구 기준 매월 200만원 이상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발달장애인 주간활동 서비스 지원 인원 확대, 장애인 일자리 대폭 확충 등을 통해 자립과 사회참여 기반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방산 역량을 적극 육성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정부는 내년도 국방 예산을 올해보다 8.2% 늘린 66조3000억원 규모로 편성했다. 이 대통령은 "재래식 무기체계를 AI 시대에 걸맞은 최첨단 무기체계로 재편하고 우리 군을 최정예 스마트 강군으로 신속히 전환하겠다"며 "국방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고 자주국방 실현을 앞당기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한민국은 북한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1.4배에 달하는 국방비를 사용하며 세계 5위의 군사력으로 평가받고 있다"며 "그런 대한민국이 국방을 외부에 의존한다는 것은 국민적 자존심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한미 관세협상, 영혼 갈아 넣으며 총력"… APEC 정상회의 성과 강조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2026년도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국회사진기자단)

지난달 29일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타결한 한미 관세 협상과 관련해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선의 결과를 만들기 위해 영혼까지 갈아 넣으며 총력을 다했다"고 자평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경북 경주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관세 협상 세부안에 최종 합의했다. 최대 쟁점이던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펀드는 ▲2000억달러를 현금 투자하고 ▲나머지 1500억달러는 조선업 협력펀드에 투입하는 방식으로 최종 정리됐다. 한국산 자동차·부품에 부과되던 25% 관세는 15%로 인하됐으며 반도체 분야에서도 경쟁국인 대만과 유사한 수준의 관세가 적용됐다.

한중 정상회담과 관련해선 "한중 관계를 전면 회복하고 양국이 전략적 협력 동반자로서 실용과 상생의 길로 다시 함께 나아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 '민생이 가장 중요하다'는 공감대 속에 양국 중앙은행의 70조원 규모의 통화스와프 계약과 초국가 스캠 범죄 대응을 비롯한 6건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도 정부는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를 통해 대한민국의 국력을 키우고 위상을 한층 높여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민생 위한 여야 협치 당부… "신속한 예산안 확정 기대"

신속한 예산안 처리를 위한 초당적 협력을 거듭 당부하기도 했다. 사진은 재명 대통령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6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는 가운데 국민의힘 의원석이 비어있는 모습. /사진=뉴스1

신속한 예산안 처리를 위한 초당적 협력을 거듭 당부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정부는 열린 자세로 국회의 제안을 경청하고 좋은 대안은 언제든 수용하겠다"며 "비록 여야의 입장의 차이는 존재하고 이렇게 안타까운 현실도 드러나지만 국민과 나라를 위하는 진심은 다르지 않다고 믿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연설 중 "안타까운 현실"이라는 표현은 시정연설문 초안에는 없던 내용으로 제1야당인 국민의힘의 시정연설 보이콧으로 '반쪽 연설'이 된 상황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연설을 시작하며 빈 국민의힘 의석을 바라본 뒤 "좀 허전하군요"라고 말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어 의원들을 향해 당장의 당리당략이 아닌 국가의 미래를 보고 이번 예산안에 대승적으로 협조해 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이 대통령은" 예산안이 법정기한 내에 통과돼 대한민국이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초당적인 협력을 부탁드린다"며 "2026년 예산안이 치밀한 심사를 거쳐 신속히 확정되길 기대한다"고 말한 뒤 고개를 숙이며 연설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