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는 19일 오후 정례회의에서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의 IMA(종합투자계좌) 인가를 최종 결정한다. 초대형IB(투자은행) 제도가 시행된 지 8년 만에 나오는 첫 인가다. 새 자금 조달수단인 IMA를 누가 확보하느냐에 초대형IB 시장의 판도도 달라질 수 있어 관심이 뜨겁다. 초대형IB 제도는 골드만삭스 같은 글로벌IB 모델을 염두에 두고 설계됐다. 자기자본 4조원 이상 증권사에는 발행어음, 8조원 이상에는 IMA를 허용해 취약한 자본력을 끌어올리고 IB 본연의 기업금융 기능을 키우겠다는 취지다.
IMA는 사실상 은행 예금 기능을 갖춘 계좌다. 따라서 초대형IB가 안정적으로 대규모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그 만큼 책임이 따른다. 2028년까지 발행어음과 IMA 조달액의 25%를 모험자본에 공급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생산적 금융 실체가 모험자본 공급인데 초대형IB가 최전방에서 그 역할을 수행하는 셈이다. "한국도 진짜 글로벌IB를 만들 기회를 잡았다"는 기대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외국계IB들은 국내 금융사와 굵직한 기업 등 M&A(인수합병) 매물을 싹쓸이하며 토종IB 육성론에 불을 붙였다. 하지만 3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도 풍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외국계가 올해 매각을 진행 중인 이지스자산운용과 어프로티움, 크린토피아, 코엔텍 등 굵직한 딜의 주관사와 자문사로 선정된 게 대표적이다. 하반기 매각된 더존비즈온, DIG에어가스, GS이니마 등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토종사들이 법·제도나 문화, 현지인력 등에서 강점을 가지는 안방 조차 외국계에 내주고 있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이유는 명확하다. 단순히 글로벌 IB의 이름값 때문이 아니다. 한국의 금융규제가 IB와 구조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은행 증권 보험 업권별 칸막이는 여전히 높고 증권사는 위험자산이 조금만 늘어도 NCR(순자본비율)이 떨어져 레버리지·파생·신용공여(대출) 같은 핵심 IB업무가 곧바로 제약된다. 모험자본을 확대하라는 정책 방향과 위험자산을 억제하는 건전성 규제가 동시에 존재하는 구조다. 시장 자율과 전문가 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좁아 IB의 체력은 약해지고 경쟁력은 제자리걸음을 할 수밖에 없다.
규제만 탓하고 끝낼 일도 아니다. 국내 증권사 내부 문제 또한 적지 않다. 대부분의 증권사는 수십 년간 주식거래를 중개하는 브로커리지 즉 위탁매매와 신용융자 수익에 지나치게 의존해 왔다. 올 들어 국내외 주식시장 호조에 실적 훈풍이 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글로벌IB는 100년이 넘는 기간 기업대출은 물론 구조화금융·인수금융·대체투자 등 고위험·고부가가치 IB시장에서 한우물을 파며 트랙레코드(성과)를 쌓았다.
그런 사이 증권사들의 자본력과 자금조달 능력, 리스크 관리, 글로벌 투자자 네트워크 역량은 뒷걸음질 쳤다. 기업 리스크를 분석하고 산업을 해석하며 조 단위 딜의 구조 설계할 전문인력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단기성과에 매몰돼 경쟁사 우수 인력 빼가기 경쟁도 여전하다. IB 전문인력은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업무 특성상 단기 교육으로 채울 수 없다. 시간·경험·데이터가 쌓여야 하고 무엇보다 실패를 감내할 수 있는 조직 문화가 필요하다.
리스크를 감수하는 자본과 설계하는 전문성, 시장을 움직이는 네트워크는 결국 사람이 만든다. 초대형IB가 진정한 기업금융 역량을 갖추려면 이제는 구호가 아니라 인재 양성과 조직의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최근 IMA 인가와 관련 "사업계획서를 보면 증권사들이 모험자본 공급에 매우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고 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지난 30년처럼 공허한 구호로 끝낼 것인지 한국형 골드만삭스의 첫 발을 내딛을 것인지 초대형IB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