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정년연장과 임금체계 개편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주제로 열린 국회미래연구원 제3회 인구포럼에서 김기식 국회미래연구원장과 정혜경 진보당 의원,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 등 참석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고승민 기자 /사진=고승민

지난해 주된 일자리에서 정년퇴직을 한 비율은 17.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80%가 넘는 노동자들은 평균 52.9세의 나이에 권고사직, 사업부진, 직장 휴·폐업 등 비자발적인 사유로 노동시장에서 밀려나는 상황이다.

정혜윤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은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정년연장과 임금체계 개편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주제로 열린 '국회미래연구원 제3회 인구포럼'에서 발제를 통해 "정년 연장 찬반 논의는 모두 정년에 도달할 수 있는 소수를 전제한 논의"라며 이 같은 문제점을 지적했다.


지난 5월 통계청이 공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부가조사에 따르면 주된 일자리 퇴직자 가운데 정년퇴직 비율은 17.3%에 그친다. 그나마 남성은 27.4%였고 여성은 8.0%에 불과했다. 사실상 노동자 대다수가 정년에 도달하지 못하고 노동시장 밖으로 밀려난 셈이다.

기업 규모에 따라서도 정년퇴직에 차이가 있었다. 국회미래연구원이 지난달 50~79세 주된 일자리 퇴직자 146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정년퇴직자의 33.6%는 1000인 이상 대기업 출신이며 50인 이상 사업체가 74.6%를 차지했다.

정 부연구위원은 "이는 정년퇴직이라는 경로가 사실상 중·대기업에서만 현실적으로 가능했음을 보여주는 근거"라며 "정년퇴직은 노동시장 전체의 평균 경험이 아니라 규모 있는 기업에 속한 일부 노동자의 경로"라고 짚었다.


17.3%의 정년퇴직자를 제외한 80% 이상의 노동자들은 비자발적으로 노동시장을 떠나고 있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퇴직자들이 주된일자리를 그만둘 당시의 평균 연령은 52.9세로 법적 정년인 60세와 큰 차이가 있었다. 퇴직 이유는 권고사직·명예퇴직·정리해고(13.3%), 사업부진·일감부족·조업중단(10.9%), 직장의 휴·폐업(7.8%) 등 비자발적 퇴사가 32.0%에 달했다.

이렇게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한 노동자들은 대부분 비정규직·일용직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특히 연령이 높아질수록 학력이나 경력과는 무관하게 탈숙련 단순노무직, 생계형 자영업 등으로 몰리는 상황이다.

문제는 국민연금의 수령시기가 65세로 늦춰졌다는 점이다. 사실상 노동자 대부분이 조기퇴직 이후 비정규·일용직 등으로 생계를 꾸려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정 부연구위원은 '양질의 비정규직'을 제도화해 유연안정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고령층의 다수가 비정규, 시간제, 특수고용 형태로 일을 하면서 유연성은 보장된 상황이나 낮은 임금, 경력 인정 부재, 사회보험 사각 지대 등의 문제로 안전성은 크게 떨어져 있다.

정 부연구위원은 "유연성과 안정성을 살리는 '양질의 비정규직'을 제도화하는 것이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며 "업무 수요에 맞는 합리적인 임금을 보장하고, 사회안전망을 확대하고, 재취업과 역량 개발을 연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비정규직을 늘리자는 게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비정규직을 '좋은 일자리'로 다시 설계하자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연공서열 중심의 임금체제를 직무급으로 전환해야 한다고도 제언했다. 지난해 6월 고용노동부의 사업체노동력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대기업·정규직(300인 이상)의 58.0%가 호봉급을 유지하고 있으며 직무급은 32.4%에 그쳤다. 1~4인 사업장은 77.4%, 5~9인은 43.5%가 무체계였다.

연공급 중심의 임금 구조는 근속년수와 연령이 오를 수록 자동으로 상승하는 구조여서 총액 부담을 키우는 요인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정년연장을 추진하는 것은 기업에 부담을 지우는 것에 불과하다는 게 정 부연구위원의 지적이다.

무체계 기업의 경우 임금 기준 부재가 저임금을 고착화하고 결국 사회적으로 임금체계의 이중구조 문제를 심화시킨다.

따라서 직무가치 기반 임금 체계를 도입해 연공형 부담을 줄여 고령자 고용 여력을 확보하고 명확한 임금 기준을 형성해 무체계 기업과 다양한 고용형태에도 '동일노동 동일임금' 기반을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나이와 근속이 아닌 직무와 역량을 기준으로 임금을 책정할 경우 정년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고령자 고용의 지속 가능성도 확보할 수 있다.

정 부연구위원은 "정년 문제는 고용만의 문제가 아니라 연공형 임금과 무체계가 동시에 작동하는 임금 체계 이중구조의 문제"라며 "직무급은 이 두문제를 함께 풀 수 있는 임금질서"라고 강조했다.

직무급이 성과주의를 부추겨 저성과자의 임금을 깎거나 퇴출하는 제도라는 반발도 있다. 이에 대해 정 부연구위원은 "노동 시장 전체에서 통용되는 공통 기준을 만들고 직무와 역할에 따라서 공정한 기준과 동일임금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며 "중소·비정규·고령노동자까지 포함해 세대간 고용 보존과 지속 가능한 임금 구조의 요구를 사회적 합의로 만들어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