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정치권의 60세 정년 법제화(고령자고용촉진법 개정) 추진 당시 첨예하게 맞선 것은 임금 삭감 없는 정년 연장(노동계)과 임금체계 개편(경영계)이었다. '더 늙고 덜 낳는' 인구 구조의 한복판에서, 정년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더 커졌고 갈등 양상도 변했다.
이제 정년 연장 논란의 밑바탕에는 '세대 간 분배 문제'가 놓여 있다. 정년 연장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를 두고 청년세대와 기성세대가 부딪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2017년 정년을 65세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청년 실업 우려로 무산된 것도, 2022년 윤석열 정부가 같은 방안을 논의했을 당시 "정년 연장은 386세대(1960년대에 태어난 1980년대 학번)의 장기집권을 위한 조치"라는 비판이 제기되며 세대 갈등의 골이 깊어졌던 탓도 여기에 있다.
베이비부머가 청년 밥그릇 뺏었나
정년 연장 논의에 다시 불이 붙었다. 청년 회원이 많은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정년 연장을 두고 "2차 베이비부머(1964~1974년생) 세대가 청년세대의 밥그릇을 빼앗는다"는 따가운 시선을 쏟아낸다. 954만명에 달하는 2차 베이비부머 세대가 막대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젊은 세대의 취업 기회를 희생시킨다는 주장이다.
청년 세대는 정년 연장이 청년 실업을 심화시킨다고 인식한다. 일자리는 한정돼 있는데 정년이 늘면 기성세대 자리는 보전되지만 청년세대 취업 기회는 줄 것이란 판단이다. 한국의 연공서열식 임금체계도 우려를 키운다. 기업은 고연차·고임금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할 인건비 부담이 커지고 이를 상쇄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대응책이 신규 채용 축소인 만큼 청년층이 기대하는 괜찮은 정규직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설명이다.
일자리를 둘러싼 세대 갈등의 담론은 오늘날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2019년 자신의 저서 '불평등의 시대'에서 "산업화 세대가 첫 삽을 뜨고 386세대가 완성한 한국형 위계 구조의 희생자는 바로 청년 세대"라며 "각 기업 조직이 386세대의 부상으로 노령화됨에 따라 연공제를 고수하는 한국 기업들은 총 노동비용의 상승 압력에 직면해 젊은 세대에 대한 신규 채용을 줄여왔다"고 진단했다.
정년 연장이 청년 고용에 실제로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적지 않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발표한 '60세 정년 의무화의 영향: 청년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보고서는 "민간기업의 정년 연장으로 1명의 고령 고용이 증가할 때 청년 고용은 평균적으로 0.2명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한국은행이 올해 발표한 '초고령사회와 고령층 계속근로 방안' 보고서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제시됐다. 정년 60세 의무화가 시행된 2016년 이후 고령층 근로자가 1명 늘어날 때 청년층 근로자는 0.4~1.5명 줄어든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49세에 일자리 끊기고, 연금은 65세
정년이 머지않은 50대 후반이라면 정년 연장 '찬성'에 마음이 기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베이비부머(1955~1974년생) 세대는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녀에게 부양받지 못하는 '첫 세대'로 이른바 '마처세대'라 불린다. 산업화 세대보다 빈곤율은 낮지만 내부 격차는 크고 부모 부양과 자녀 지원을 동시에 떠안는 돌봄 부담의 정점에 있다
2차 베이비부머 세대의 첫 주자인 1964년생은 지난해 정년을 맞았다. 1964년생이 지난해 정년을 맞은 데 이어 1965년생 이후도 향후 약 10년 동안 순차적으로 노동시장 밖으로 밀려난다. 올해 60세 법정 정년에 도달한 1965년생은 국민연금을 받기까지 4~5년의 소득 공백을 견뎌야 한다.
게다가 현실의 퇴직 시계는 법적 정년보다 빠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가장 오래 근무한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한 평균 연령은 49.4세로 50세에도 미치지 못했다. 정년을 채우고 퇴직한 사람은 48만2000명이었지만 권고사직·명예퇴직·정리해고 등으로 조기퇴직한 사람은 60만5000명에 달한다.
연금만으로는 기본적인 노후생활조차 유지하기 어렵다는 점도 기성세대의 정년 연장 욕구를 키운다. 올해 국민연금 전체 수급자의 월평균 1인 수령액은 67만원에 불과하다. 부부가 각각 평균 수령액을 받는다고 가정해도 월 111만원 안팎에 그친다. 2024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노후에 실제로 필요한 생활비는 은퇴 부부 기준 적정 생활비 336만원, 최소 생활비 240만원으로 차이가 크다.
기성세대는 정년 연장이 단순히 '더 오래 일하고 싶은가'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연금 지급 시점은 늦어지고 실제 은퇴 시기는 앞당겨지는 가운데 지출과 소득 규모가 안 맞는 구조에서 50~60대에게 정년 연장은 사실상 노후를 감당하기 위한 '생존 전략'일 수 있다.
하지만 정년 연장이 청년 일자리와 '제로섬 관계'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선 해법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정년 연장 논의와 함께 임금·근무체계 개편이 병행돼야 한다고 본다. 고령 근로자가 하루 8시간 전일제로 일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근무시간을 2~3시간 줄이거나 임금피크제로 절감한 인건비를 청년 채용에 사용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임금피크제로 절감된 재원을 청년 고용에 활용하고 퇴직 예정자의 수요(TO)를 미리 확보해 청년을 선제적으로 채용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며 "합리적인 임금체계 개편을 통해 근로자의 업무 의욕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