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회의 균형이 흔들리고 있다. 저소득자와 고소득자 간 소득·자산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하는 가운데 '경제적 허리계층' 역할을 하는 중산층까지 좌불안석이다.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지는 'K자형 양극화'가 고착화된 상황에서 계층 이동의 사다리마저 무너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진다.
이동 사다리가 끊긴 사회에서 불평등은 곧 분노와 체제 불신,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대한민국 사회의 진영화·대립화를 막으려면 부의 양극화해소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더 벌어진 소득·자산 격차… 중산층도 위태
국가데이터처는 최근 '2025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를 통해 2024년 기준 소득상위 20%에 해당하는 5분위 가구의 평균소득은 1억7338만원으로 전년대비 4.4% 늘어난 반면 하위 20%인 1분위는 3.1% 증가에 그쳤다고 분석했다. 상·하위 20% 소득 격차를 보여주는 소득 5분위 배율도 5.72배에서 5.78배로 높아지며 3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지난 5년 간의 흐름을 보면 상·하위 계층간 K자형 양극화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최기상 의원(더불어민주당·서울 금천)에 따르면 소득 상위 20%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2020년 911만원에서 2025년 1074만원으로 163만원 증가한 반면 하위 20%는 같은 기간 103만원에서 119만원으로 16만원 증가하는 데에 그쳤다. 이 기간 일상생활에 필요한 소비지출을 뺀 흑자액은 5분위가 월 평균 330만원 흑자를 기록한 데 비해 1분위는 평균 약 30만원의 적자를 냈다.
자산 불평등 문제도 커지고 있다. 상위 20% 가구가 보유한 자산은 전체의 47.2%를 차지하는 반면 하위 20% 가구는 5.6%를 점유하는 데 그친다. 가구 자산의 75%를 차지하는 부동산 격차에서도 확인된다. 정부의 주택소유통계에서 상위 10% 가구의 평균 주택 자산은 13억4000만원인 반면 하위 10%는 3000만원으로 44.7배 차이가 난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로 여겨졌던 중산층마저 위태로워졌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서 살펴본 2024년 중산층에 해당하는 소득 3분위 가구의 연평균 소득은 5805만원으로 전년대비 1.8% 늘어나는데 그쳤다. 관련 통계가 시작된 2017년 이후 가장 낮은 증가율이다.
중산층 소득 부진은 근로소득 증가세 둔화와 사업소득 감소가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소득의 약 60%를 차지하는 근로소득은 3483만원으로 1.5% 증가해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인 2020년(1.3%) 이후 가장 낮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자영업 부진 등으로 사업소득은 1172만원으로 0.1% 줄며 2020년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반면 이들 가구의 평균 부채는 8059만원으로 9.9% 급증했다.
부의 양극화가 부른 사회적 불평등… 대책 마련 시급
자산과 소득 모두에서 상·하위 간 격차가 명확해진 점은 K자형 양극화 심화다. 부의 양극화는 교육, 건강 등 다양한 사회적 불평등으로도 이어진다.국회입법조사처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복지패널을 이용해 소득·자산·교육·건강 측면을 모두 고려한 다차원 불평등 지수(H-MDI)를 산출한 결과 2011년 0.176에서 2023년 0.190으로 상승해 전반적 불평등이 심화된 것으로 분석됐다.
교육 측면에서는 소득 상위 20% 가구의 자녀가 QS세계대학순위 기준 상위 50개 대학에 진학할 확률이 높아졌다. 건강 측면에선 저소득일수록, 읍면지역에 거주할수록, 1인 가구일수록 건강 상태가 나빠지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관후 국회입법조사처장은 "소득재분배를 넘어 부동산·세제·금융·복지 등 정부 정책 전 분야에서 불평등 문제를 주요한 정책 목표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영욱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다음 세대가 중산층으로 진입할 수 있다는 기대가 낮아지고 있어 당장의 소득분배 개선보다 유동적인 계층이동 가능성 제고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중산층 강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좋은 일자리 창출과 가구 내 추가 취업자 증가가 필수"라고 조언했다. 또 "공교육의 내실화를 통해 중산층의 사교육비 부담을 경감하는 한편 본질적으로 교육이 '계층 대물림의 통로'가 아닌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되기 위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