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기업공개(IPO) 시장은 '대형딜 따낸 곳이 살아남는다'는 공식이 명확히 드러난 한 해였다. KB증권은 2년 연속 정상을 차지하며 IPO 강자로 자리매김했지만 10년 넘게 상위권을 지켰던 한국투자증권은 중위권으로 밀려났고, NH투자증권은 잇따른 악재로 신뢰도에 타격을 입었다.
KB, 대형 프로젝트 집중 공략…미래에셋은 다수 딜로 맞불
3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KB증권의 올해 인수 실적은 8495억원에 달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1위를 차지하며 2년 연속 정상 자리를 지켰다. 상반기 LG씨엔에스를 시작으로 하반기 대한조선(2250억원), 명인제약(1972억원) 등 코스피 상장 대어를 잇달아 성사시킨 결과다. 아이티켐, 이노테크, 그래피 등 7개 중소형 건까지 합치며 양적·질적 우위를 동시에 확보했다.2위는 6796억원을 달성한 미래에셋증권이 차지했다. 코스피 상장 티엠씨의 인수 규모는 567억원에 그쳤으나 스팩 합병을 제외한 일반 상장만 16건을 진행하며 건수 측면에서 압도적이었다. 바이오·헬스케어 분야 IPO를 집중 공략한 전략이 주효했다. 특히 프리 IPO 단계부터 투자한 기업들이 상장 이후 주가가 크게 오르며 발행사와 투자자 모두를 만족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직 차원의 성과도 있었다. IPO본부 소속 임직원들이 대거 승진하며 사내에서 가장 우수한 부서로 인정받았다.
4, 5위는 각각 삼성증권(3927억원)과 신한투자증권(3551억원)이 차지했다.
한투, 조직개편 부작용 직격탄…NH는 불거진 불신 감수해야
올해 가장 큰 충격은 한국투자증권의 순위 하락이었다. 1976억원 실적으로 8위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2위에서 6계단 떨어진 것. 지난 10년간 늘 3위 안에 들었던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다.올 초 김성환 대표가 단행한 IB1부문 인력 감축이 결정타였다. IPO 담당 인원을 50여명에서 37명으로 줄이며 조직 슬림화를 추진했는데 이것이 실적 부진으로 이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주관을 맡았던 SK엔무브, 롯데글로벌로지스 등이 상장 계획을 접으며 기대했던 대형 실적도 물거품이 됐다. 다만 최근 무신사 주관사 선정 등으로 반등 신호는 포착되고 있다.
한투증권 관계자는 "예정되었던 대형 딜들이 연기되면서 올해 순위가 급락한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NH투자증권은 대한조선을 포함해 9건을 마무리하며 3위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시장 평판 회복은 요원해 보인다. 파두 상장 주관 논란이 검찰 무혐의로 일단락됐지만 올 가을 IB 핵심 임원이 정보 유용 의혹으로 업무에서 손을 떼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는 업계 최대 관심사였던 무신사 주관 경쟁에서 최종 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여파로 이어졌다. 주관하던 MDS코리아는 미래에셋증권으로 갈아타는 초유의 사태도 발생했다. IPO는 수주에서 상장까지 장기 프로젝트인 만큼, 현재의 수주난이 2~3년 후 실적 공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6위 이하로는 격차가 더 벌어졌다. 대신증권(2920억원), 신영증권(1547억원), 키움증권(1028억원) 등 올해 1000~2000억원대 성적을 거뒀으나, 10위인 DB증권의 인수금액 실적은 168억원에 그쳤다.
2026년은 대어의 해…주관사 경쟁 재점화 예고
올해 초에만 해도 조 단위 대형 상장이 여럿 예고됐지만, 기업이 원하는 가격과 시장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 간 간극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대부분 무산됐다. 업계에서는 내년엔 미국 금리 인하 효과가 본격화되고 글로벌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면서 IPO 시장도 다시 활기를 띨 것으로 보고 있다.실제로 무신사, 케이뱅크 등 대규모 상장 후보들이 내년 상장을 목표로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대형 프로젝트일수록 발행사들이 검증된 실적을 보유한 주관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한 만큼, 올해 실적 부진을 겪은 증권사들이 만회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