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12월31일 국내 최초 실내체육관인 장충체육관이 개관했다.
장충체육관은 근현대사를 관통한 건축물로 현재까지 실내 체육의 메카로 불린다. 서울시는 1959년 육군체육관을 인수한 후 약 2년간의 공사를 통해 1962년 장충체육관을 개관했고 1963년 2월 준공 및 본격 사용을 시작했다.
지하 2층, 지상 3층 규모로 지어졌던 장충체육관은 1979년 잠실체육관이 들어설 때까지 국내를 대표하는 경기장이자 공연장 역할을 했다. 서울의 중심부에 위치해 입지가 좋았고 당시에는 볼 수 없던 초호화 체육시설이었다. 당대 사람들은 부피가 큰 물체를 비교하는 기준으로 '장충체육관의 몇 배'를 관용구로 사용했다. 그만큼 랜드마크로서의 존재감을 확실히 했다.
과거에는 필리핀 기술 및 자금 지원으로 지어졌다는 낭설도 존재했다. 하지만 엄연한 국내 기술로 지어진 건축물이다. 건축가 김정수와 최종완이 설계했고 삼부토건이 시공한 한국 최초의 돔 경기장이었다.
찬란했던 장충체육관 1기… 실내 스포츠 스타들의 탄생
권투, 프로레슬링, 씨름 등 다양한 실내 체육 종목들도 장충체육관에서 전성기를 누렸다. 한국 최초의 복싱 세계 챔피언 김기수, 한국 프로레슬링의 간판스타 박치기왕 김일, 원조 천하장사 이만기 등도 장충체육관에서 스타덤에 올랐이다.
2000년대에 들어선 스타크래프트의 인기로 e스포츠 경기장으로도 활용됐다. 이후에는 V-리그 초창기 중립 경기 구장으로 활용되며 국내 배구의 메카로 자리매김했다. 현재는 남자부 우리카드와 여자부 GS칼텍스가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스포츠 외에 정치 행사장으로도 두루 사용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2년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로 권력을 연장했다. 군부를 동원해 권력을 잡은 전두환 전 대통령도 1980년 일명 '체육관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잡기도 했다.
리모델링 통해 살아남은 장충체육관… 역사에 뒤안길로 사라진 동대문운동장
장충체육관은 동대문운동장과 종종 비교된다. 두 곳 모두 한국 스포츠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역사적인 건축물이다. 하지만 장충체육관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동대문운동장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2012년 개장 50주년을 맞은 장충체육관은 건축물 안전 등급 D등급을 받을 정도로 심각한 노후화를 겪었다. 하지만 서울시는 철거 대신 리모델링을 통한 보존을 결정했다. 3년에 걸친 긴 공사 끝에 더 넓고 쾌적해진 장충체육관은 현재도 그 위상을 유지 중이다.
반면 동대문운동장은 애물단지로 전락하며 사라졌다. '아마추어 야구의 메카'로 자리매김하며 그 명맥을 이어갔지만 수익을 내지 못하는 시설이었다. 결국 적자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시는 장충체육관이 리모델링될 때쯤 철거를 결정했다. 동대문운동장이 철거된 자리에는 현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