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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송라이터 '고양이용사'(본명 박정미)는 대중에게 생소한 가수지만 누구보다 꿈이 크다. 대학교 때 법학을 전공했던 그가 고시공부를 포기한 채 기타를 메고 노래를 부르겠다고 하니 주변의 만류도 심했다. 스스로도 미래가 막막해 조바심이 컸지만 지금은 내 노래로 많은 이들에게 행복을 선사하겠다는 즐거운 꿈에 푹 빠졌다.
"막연했던 내 꿈 찾아 뒤늦은 도전"
몇 달 전 한 행사장에서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고양이용사'라는 생소하고 독특한 이름에 주변 사람들 모두 신기해했다.유명가수가 아니라는 생각에 행사장에 모인 이들은 관심을 끄고 각자의 대화에 바빴는데 기타를 치며 열창하는 그의 목소리에 하나둘 무대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박수로 호응했다.
그가 다시 한 번 자신을 가수 '고양이용사'라고 소개하자 다들 휴대전화를 들고 사진 촬영을 하고 유튜브 영상을 검색하며 그의 또 다른 무대를 감상하는 적극성도 보였다.
30분가량 이어진 공연이 끝나고 그가 무대에서 내려오자 다들 박수를 치며 응원했고 인스타그램 친구추가에 유튜브 계정도 구독했다며 사인까지 받아가는 이도 있었다.
그는 독특한 활동명을 짓게 된 계기에 대해 "용맹한 '용사'를 닮은 반려묘와 함께 뛰어놀다 우연히 짓게 된 이름"이라며 "늘 용맹하게 활동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을 부르는 곳이라면 전국 방방곡곡 어느 무대든 오른다. 기업 행사부터 지방자치단체 축제와 시민 문화공연, 거리공연(버스킹)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그렇게 열심히 활동하다 보니 경기 시흥시 문화홍보대사도 맡았다. 그는 문화홍보대사로서 자신의 공연을 매개로 시정 홍보활동을 지원하는 등 시흥시의 행정·관광 등 다양한 매력을 알리는 문화전도사로 활약하고 있다.
막연한 내 꿈을 좇아 무작정 기타를 메고 무대에 오른 만큼 처음에는 주변의 반대도 심했다.
그는 "남들은 사회에서 자신의 길을 잡아갈 즈음에 생뚱맞게 음악을 하겠다고 하니 친구들의 반대가 심했다"며 "'그저 네가 행복할 수 있는 일이면 된다'고 말씀하시며 지지해 주신 부모님 덕분에 용기를 낼 수 있었고 지금은 친구들도 열렬히 응원해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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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행복을 선사하는 싱어송라이터"
가수 고양이용사가 되기 전 그의 일상은 평범했다. 부산 소재 한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던 그는 졸업 뒤 분위기에 휩쓸리듯 자연스레 고시공부에 뛰어들었다.어린 시절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지만 그게 자신의 꿈인 줄 모른 채 잊고 살았다. 스무살 무렵에는 문득 가수에 대한 꿈이 떠올랐지만 실현시키기엔 늦었다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는 "노래는 언제든 부를 수 있으니 그냥 노래하는 변호사가 되자는 신박한 생각을 했었다"며 "생각보다 길어진 고시생 일상은 결국 실패했고 더 미루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자는 마음으로 기타를 멨다"고 회상했다.
무명가수의 삶은 고달팠다. 늦게 시작한 만큼 마음 한 구석에 늘 '조바심'을 품고 살았다. 그러다 보니 심적으로 늘 바쁘고 여유가 없는 자신을 발견했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주변 친구들과 비교하며 한동안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한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컸다.
그랬던 그가 마음들 다 잡은 건 "결국 잘 살아가는 삶이란 내가 만족하고 내가 행복한 삶"이라는 것을 깨달은 후부터다.
그는 "스스로 시들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는 에너지가 샘솟는 그런 일을 하고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생각한다"며 "내게 있어 그것은 '노래'"라고 강조했다.
노래하는 삶에서 행복을 느끼는 그는 싱어송라이터를 넘어 작곡가로, 다른 분야의 예술과 협업해 작품을 만들어내는 음악감독이라는 꿈을 꾼다. 그렇게 자신의 노래로 많은 이들이 행복을 느끼길 희망한다.
그는 "처음에는 막연하게 노래가 좋아 이 일을 시작했지만 이제는 욕심이 생겼다"며 "많은 이들에게 고양이용사라는 이름이 생소하지만 한 발 한 발 부지런히 저의 길을 걸으며 많은 이들을 즐겁게 하는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