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그레에서 맛볼 수 있는 메뉴. /사진=장동규 기자
블그레에서 맛볼 수 있는 메뉴. /사진=장동규 기자

우리 땅에서 나는 식재료와 사계절의 정취를 담아내며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한식. 최근 외식 신에서 주목받는 플레이어들에 의해 선보인 한식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익숙한 음식들에 각자의 메시지, 그리고 경계를 구분 짓지 않은 포용력과 기발한 창의력이 보태져 정체된 전통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이들과 공감할 수 있는 소통법으로 풀어낸 새로운 언어 같다. 한식을 베이스로 하지만 현대의 조리 기법이나 이탈리안, 일식 등 다양한 문화가 결합하기도 한다. 다채롭게 빛을 발하고 있는 전통주 문화는 이 기특한 맛에 마침맞은 어우러짐으로 식탁 위의 흥취를 더하고 있다.

◆블그레


블그레 내부. /사진=장동규 기자
블그레 내부. /사진=장동규 기자

신사동 가로수길에 자리한 다이닝바 블그레(blgre)는 '익숙함 속 섞음과 삭힘'을 기본으로 고조리서의 레시피나 전통 식문화의 근간이 되는 한식의 정체성과 현대의 조리법이 결합해 내는 생명력과 시너지를 경험하기에 좋은 공간이다.

순우리말처럼 느껴지는 블그레의 이름은 빛의 삼원색인 블루, 그린, 레드의 앞글자를 딴 것이다. 세 가지 색이 모이면 하얀색 빛이 되는데 이는 다양성과 어우러짐을 상징한다. 또한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어떤 색으로든 새롭게 표현될 수 있는 가능성이기도 하다.

매장에 들어서면 이 콘셉트를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화이트톤으로 통일된 도화지 위에 삼원색이 은은하게 오가는 조명과 미디어아트, 초록의 식물과 푸른 유니폼까지 다양한 색채가 섬세하게 어우러진다.


이곳을 이끄는 '봉주부' 김봉수 셰프는 '도마' '마린' 등 다양한 브랜드를 만들며 그만의 세계관을 공고히 다져왔다. 최근에는 지속가능성과 발효에 주목해 이를 '봉주부 스타일'의 음식으로 풀어내는 작업에 열중해왔다.

블그레는 다양한 반찬과 밥을 함께 곁들이는 섞음, 그리고 김치와 장, 전통주 등 한식의 근간에 있는 삭힘의 문화를 기본으로 계절의 정취를 담은 음식을 타파스의 형태로 선보인다. 오픈과 함께 선보인 첫 테마에서는 고춧가루가 사용되기 이전 시대의 레시피에서 영감을 얻어 모든 음식에서 이를 제외한 것이 특징이다.

시그니처 메뉴인 '한입요기'는 계절을 가장 잘 드러내는 메뉴 중 하나다. 첫 번째 테마로 선보인 '겨울한입요기' 디시는 겨울 산에서 받은 영감을 한 입 거리 타파스로 풀어냈다. 눈 덮인 겨울의 나무가 심어진 접시와 제공될 때 함께 등장하는 로즈마리향을 머금은 드라이아이스의 극적인 연출은 식사의 즐거움과 '인증 욕구'를 동시에 만족시킨다.

그 위를 수놓은 섬세한 타파스는 냉면, 오징어초회, 고로케 순으로 맛보면 된다. 메밀면과 냉면의 고명을 무쌈으로 말아냈는데 이를 머금은 상태에서 작은 장독에 잠긴 동치미 육수를 들이켜면 입안으로 익숙한 감각의 퍼즐이 맞춰지며 균형 잡힌 냉면의 맛이 한입에 완성된다. 겨울 장독에서 막 떠서 마시는 살얼음 동동 뜬 동치미의 정서를 녹여낸 것도 위트 있다. 검은콩 소스와 동결 건조해 초록 고추장에 비빈 오징어 초회를 바삭한 타르트지에 올려낸 오징어 초회와 참새우와 고춧가루를 사용하지 않은 김치를 주재료로 만든 고로케까지 각각의 한입을 통해 식감과 온도가 연결되며 한 장의 겨울 풍경을 완성한다.

음식 하나하나에 활용된 토종 식재료들의 활약도 눈여겨볼 만한데 주변의 구하기 쉬운 식재료를 기본으로 쉽고 편안하지만 반전 있는 해석으로 즐거움을 주는 것이 셰프의 역할이라 믿기 때문이다.

'양배추구이와 홍합된장소스'는 이러한 철학이 명확하게 표현된 디시다. 익숙한 식재료인 양배추를 10시간가량 천천히 기름에 부드럽게 익힌 뒤 숯불 향 나게 구워내며 된장이 들어간 홍합 소스를 곁들여 낸다. 참신한 조리법의 응용은 양배추가 메인 식재료로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끌어내며 딱딱한 심지까지 버리는 것 없이 모두 활용해 지속가능성을 향한 메시지도 담아냈다.

다채로운 전통주, 와인 등 주류도 음식과 어울리게 섬세하게 배치하여 식사의 완성도를 높였다. 계절마다 메뉴가 변경된다고 하니 한결 따스해진 바람과 함께 드리워질 블그레의 봄 인사를 기대해봐도 좋겠다.

◆스페이스오

스페이스오 메인 메뉴. /사진=다이어리알
스페이스오 메인 메뉴. /사진=다이어리알

우리나라 각 지역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한술과 모던한 한식을 페어링해 우리 식음료 문화의 가치를 전달하는 공간으로 인사동에 자리한 나인트리 호텔의 루프탑 층에 자리하고 있어 멋진 시티뷰를 자랑한다. 모던한식 기반의 차림은 점심, 저녁 다르게 구성돼 있으며 구운 수육과 특제 순대 플래터, 직접 끓인 맛간장과 들기름 소스를 부어낸 광어회 등 한식의 맛과 멋을 담은 음식과 함께 오미자와인을 곁들이는 것을 추천한다.

◆주052

주052의 장어구이비빔국수. /사진=다이어리알
주052의 장어구이비빔국수. /사진=다이어리알

왕십리에 자리한 다양한 전통주와 한국적인 멋을 가진 도자기, 그리고 음식이 어우러진 공간. 052는 셰프들의 고향인 울산의 지역 번호다. 한식을 기반으로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빛나는 창의적인 음식을 선보이며 직접 빚은 누룩 소금으로 간을 한 052 누룩 육회와 들기름 국수에 장어구이를 함께 내는 장어구이비빔국수 등이 시그니처다. 이 밖에 다양한 제철 식재료를 접목해 시즌 메뉴로 선보이며 이와 어우러지는 전통주 페어링이 일품이다.

◆지리

지리의 메인 메뉴. /사진=다이어리알
지리의 메인 메뉴. /사진=다이어리알

합정역 인근 지리산 식재료로 준비한 맡김차림 안주와 우리 술이 있는 한식 주점. 지리산 돼지로 만든 돈가스 맛집으로 유명한 '최강금 돈가스'에서 선보인 공간이다. 오마카세 단일 코스로 죽, 전, 면, 다과상 등 짜임새 있게 구성된 메뉴는 계절에 따라 변경된다. 최강금 돈가스의 메뉴를 추가해서 즐길 수 있으며 시간제로 운영되므로 예약은 필수다. 다채로운 전통주 리스트를 갖춰 추천받아 곁들여도 좋으며 메뉴에 맞게 엄선해 요리와 함께 제공되는 막걸리 페어링도 좋은 선택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