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회장은 지난 5월26일 삼성그룹이 발표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추진'으로 승계의 최대 걸림돌인 삼성전자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1년 넘게 와병중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대신해 그룹의 총수로 올라가기 위한 퍼즐맞추기가 본격 시작된 셈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이 부회장이 아버지(이건희 회장)의 뒤를 이어 각광받는 길로 들어섰다”며 “그가 삼성전자 이사회 멤버는 아니지만 일련의 큰 그림을 그리는 데 역할을 맡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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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머니투데이 홍봉진 기자 |
◆순환출자 구조 단순화… 이재용 지배력 확대
실제로 삼성은 이건희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후 약 2년 동안 이 부회장으로의 승계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지금까지가 승계를 위한 밑그림을 그린 단계였다면 올 하반기는 '이재용 체제'에 색깔을 입는 작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 신호탄이 바로 최근 발표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다. 삼성그룹은 복잡한 순환출자 고리를 끊고 이 부회장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두 회사의 합병을 결정했다. 오는 7월 임시주주총회를 거쳐 9월1일 합병을 최종 마무리한다는 게 기본 청사진.
합병법인은 ‘삼성물산’으로 정했다. 합병 이후 통합된 삼성물산의 시가총액은 단순합산(제일모직 24조원+삼성물산 10조원)만으로 34조원 규모다. 통합 삼성물산이 출범하면 삼성그룹의 순환출자 구조는 ‘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전기·삼성SDI→제일모직’에서 ‘통합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단순화된다.
눈여겨 볼점은 삼성전자의 지분구조 변화다. 이 부회장은 제일모직 지분 23.2%를 보유하고 있다. 제일모직은 삼성생명의 2대 주주(19.3%)다. 제일모직이 삼성 지배구조 핵심 연결고리를 맡고 있지만 그룹의 맏형 격인 삼성전자 지분은 없는 상태다. 따라서 그간 이 부회장은 삼성생명이 보유한 지분 7.2%를 통해 삼성전자를 지배했다.
통합 삼성물산이 출범하면 이 부회장은 합병법인의 지분 16.5%를 갖게 된다. 제일모직과 비교하면 지분율이 대폭 줄지만 통합법인 최대주주로 올라선다.
또 이 부회장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0.6%에 삼성물산이 보유한 지분 4.1%를 합치면 삼성전자 지분율은 4.7%로 높아진다. 만약 아버지 이건희 회장의 지분(3.38%)까지 물려받는다면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은 8%대로 상승하게 된다.
삼성생명을 거치지 않더라도 이 부회장이 통합법인으로 직접 삼성전자를 거느릴 수 있는 셈이다. 여기에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이 가진 삼성SDS 등 정보기술(IT) 계열사와 삼성생명을 통해 삼성증권과 카드 등 금융계열사 영향력도 확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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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부회장 /사진=머니투데이DB |
◆'이재용의 삼성', 마지막 넘어야 할 능선은?
현재의 계열사 간 지배구조상 이 부회장은 경영승계까지 9부 능선을 넘은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삼성이 풀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우선 삼성전자의 대주주가 금융사인 삼성생명이라는 점이 걸림돌로 작용한다. 삼성의 지배구조가 삼성물산이 삼성생명 지분 19.3%, 삼성생명은 다시 삼성전자 지분 7.2%를 갖는 순환출자 형태여서다.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에 따르면 금융회사는 비금융회사의 지분을 5% 넘게 가질 수 없다. 법 제정 이전 삼성전자 주식을 보유한 삼성생명은 예외적으로 이를 초과하는 주식을 보유해왔다. 이 때문에 삼성은 특혜 논란을 받기도 했다.
따라서 문제는 앞으로다. 만약 관계법령이 추가 개정돼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일부 처분하거나 이 부회장의 의결권을 제한받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이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이 약화될 수 있는 대목이다.
대안으로 제시되는 시나리오는 삼성전자와 삼성SDS 간 합병이다. 이 부회장과 삼성물산은 각각 삼성SDS 지분 11.25%와 17.08%를 보유하고 있다. 합병비율에 따라 변동은 있지만 삼성전자 지분을 늘리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삼성SDS 합병 여부는 아직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다"면서 "내부적으로 전략적인 논의를 거쳐 진행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과 그의 동생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의 계열 분리 문제도 장기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다. 다만 삼성은 이 부회장을 중심으로 그룹 경영권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2세때처럼 계열 분리를 하지 않기로 방침을 세운 바 있다.
따라서 당분간 두 자매가 삼성의 울타리를 벗어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두 자매의 합병법인 지분은 기존 7.74%에서 5.5%로 각각 줄어든다. 하지만 앞으로 합병법인의 회사 규모와 가치가 더 커질 것으로 기대되는 만큼 지분을 팔거나 이 부회장과 교환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일각에선 삼성이 장기적으로 과거 LG그룹의 계열분리 방식을 벤치마킹할 수 있다고 관측한다. LG그룹은 지난 2003년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뒤 이듬해 GS그룹을 분리시켰다. GS는 당시 LG에서 정유·유통·건설·스포츠 사업분야를 챙겨 분가했다. 삼성 역시 전자·금융 등 핵심 분야는 이 부회장이, 유통·건설은 이부진 사장, 패션은 이서현 사장이 각각 맡지 않겠냐는 시선이 줄곧 있어왔다.
통합법인 출범 이후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지배 리스크와 우려의 시선을 털어내고 '포스트 이건희' 시대를 활짝 열어갈 수 있을까. 곧 실체를 드러낼 '이재용의 삼성'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미래경영을 주도할지 주목된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8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