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화재 안내견학교의 안내견 '지니'. / 사진=이한듬 기자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의 안내견 '지니'. / 사진=이한듬 기자

"앞으로!"

훈련사의 명령이 떨어지자 안내견 '지니'가 앞으로 나아간다. 보행로를 따라 목줄을 쥔 훈련사를 이끌던 지니는 눈 앞에 장애물이 나타나자 오른쪽으로 우회한다. 개는 통과할 수 있어도 사람은 통과할 수 없는 공중 장애물이 있는 경우에도 이를 명확하게 인식해 회피했다.


계단이 나타나자 앞발만 올린채 잠시 멈춰선다. 시각장애인에게 계단이 있음을 알리는 신호다. 계단을 인지한 훈련사가 "앞으로!"라고 말하자 지니는 그제서야 발을 뗀다.

지난 19일 방문한 경기 용인시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에서 안내견 지니가 주변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사람의 말을 명료하게 인식해 보행자의 안전한 이동을 돕는 모습이 연출됐다.

삼성화재 안내견학교는 1993년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뜻에 따라 설립된 곳이다. 이 선대회장은 진정한 복지 사회가 되려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배려하고 사회 구성원들도 이들을 같은 일원으로 거리낌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동행 철학 아래 안내견 학교를 설립했다.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의 안내견 '지니'. / 사진=이한듬 기자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의 안내견 '지니'. / 사진=이한듬 기자

이 곳에서 매년 평균 250여일(주말·공휴일 제외), 평균 6명의 안내견 훈련사가 하루 4차례 4시간 안내견 보행 훈련을 진행한다. 이후 시각장애인에게 분양돼 7~8년 간의 안내견 활동을 마치고 노후를 함께할 입양가정으로 보내져 반려견으로 삶을 보내게된다.

삼성화재 안내견학교는 1994년 첫 번째 안내견 '바다' 이래 매년 12~15두를 분양하고 있다. 지금까지 총 280두의 안내견을 분양했고 현재 76두가 활동하고 있다.

시각장애가 있다고 모두 안내견을 받을 수는 없다. 안내견 '해달'의 파트너인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소속 유석종 훈련사는 "한 생명을 거둬 제대로 보살피고 책임질 수 있느냐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분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 세계에서 운영되는 안내견학교 중 기업이 운영하는 곳은 삼성의 안내견학교가 최초이자 유일하다. 전례가 없었던 만큼 초창기에는 우려의 시선이 쏟아졌다. 하지만 삼성은 유럽과 미국의 안내견 훈련법을 벤치마킹해 체계화하면서 전문성을 키웠다.

세계안내견협회(IGDF)도 이 같은 삼성의 노력을 인정, 1999년 정관을 변경해 삼성화재 안내견학교를 공식 안내견 양성기관으로 인증하고 협회 정회원으로 받아들였다.

지금은 해외 국가가 삼성의 안내견학교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유 훈련사는 "예전엔 우리가 외국에 훈련법 등을 의존했는데 지금은 일본이나 대만에서 안내견학교에 연수를 받으러 온다"고 귀띔했다.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 시각장애인 안내견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길러지는 리트리버 견종을 돌보는 모습. / 사진=삼성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 시각장애인 안내견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길러지는 리트리버 견종을 돌보는 모습. / 사진=삼성

억지로 개를 훈련시켜 고통스러운 것은 아닐까. 이에 유 훈련사는 "외출해 산책하는 것을 좋아하는 특성을 가진 개들을 선별해 훈련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안내견들도 좋아하고 안내견들에게 도움이 된다"며 "일반 가정에서 키우는 개들보다 수명도 더 길다"고 선을 그었다.

안내견 평균 수명이 13.9세로 일반 반려견보다 1년가량 길다는 연구결과도 있고 18세까지 산 사례도 있다는 게 유 훈련사의 설명이다. 그는 "안내견은 시각장애인의 보행을 돕기만하는 존재가 아니다"라며 "집에 들어와 하네스와 목줄을 풀고 나면 일반 반려견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한다. 보호자와 하루종일 붙어있기 때문에 안정감도 높다"고 했다.

이날 안내견학교에서는 설립 3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도 개최됐다. 학교로부터 안내견을 받은 한 시각장애인 여성은 "최근 어린 아들과 함께 처음으로 안내견의 도움을 받아 산책에 나선 것을 잊을 수 없다"며 "조금만 익숙해지면 어디든 아이를 데리고 다닐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른 엄마들처럼 이젠 혼자서도 아이랑 안전하게 외출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꿈만 같았다"며 "안내견 덕분에 이제야 엄마로서 진정한 역할을 하는 것 같아 기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