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성남 주민신협의 ‘가난 이겨낸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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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이겨낸 연대, ‘행복’ 더하다
주민 공동출자 ‘사회적 금융’으로 소외계층 참여 확대

1960년대 말 서울 철도변, 청계천변 등지의 철거민들이 경기 성남(당시 행정구역은 광주)으로 밀려오기 시작했다. 지금의 성남 태평·수진·신흥동 일대다. 도시는 차가웠고 주민들은 가난했다. 먹고 살기 위해 협심해야 했다. 1979년 12월 이 지역 주민 47명이 뜻을 모아 4만7800원을 출자해 신용협동조합을 창립했다. ‘주민신협’이다. 함께 잘 살아보자는 취지로 가난한 사람들이 모인 곳, 현재 ‘사회적 금융’이라는 새 패러다임 실천의 중심에 서있는 성남 주민신협을 지난 10일 찾았다.

분당선 태평역 2번 출구에서 5분가량 걸으면 5층짜리 오래된 건물 한채가 보인다. 벽돌로 쌓아올린 자주빛의 조적식 건물은 밝은 회색빛 빌라 사이에서 유난히 눈에 띈다. 이 건물의 대로변 방향 1층에는 5개 상가가 입점해 있고 주민신협은 가장 왼쪽에 있다.

◆사회적금융=재무성과+사회적가치

주민신협 객장(고객 창구)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카페 하나를 통과해야 한다. 간판은 없지만 사회적기업인 ‘장애청년꿈을잡고’가 운영하는 ‘나는 카페’(I’m Cafe)다. 주민신협 조합원 1명(카페 매니저)과 발달장애인 청년 3명이 일한다. 1700원이면 아메리카노를 주문할 수 있다. 7개 테이블은 지역 주민들로 꽉 찼다.

나는카페와 주민신협 객장. /사진=서대웅 기자
나는카페와 주민신협 객장. /사진=서대웅 기자

2014년 4월 입점한 카페는 주민신협 공간을 사용 중이지만 주민신협은 카페로부터 시세가 월 400만원가량인 임대료를 받지 않는다. 권리금 2억원도 지원했다. 카페는 전기요금 등 관리비만 낸다. 주민들은 이곳에서 싼 값에 커피를 마시고 신협은 고객을 맞는다. 상대적으로 일자리를 찾기 힘든 발달장애 청년들은 이곳에서 돈을 번다. ‘사회적 금융’의 한 모델이다.

이현배 주민신협 상임이사는 “소외된 계층도 경제활동에 참여토록 하는 게 사회적 금융의 핵심”이라며 “주민의 연대와 협력이 사회적금융의 기반”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사회적기업은 사회적금융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데 재무적 성과보다 이런 ‘사회적 가치’를 낸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발달장애 청년들이 일하고 주민과 소통하며 자존감을 기른다는 의미다.

이 낡은 건물은 주민신협의 사회적금융 본부 역할을 한다. 주민신협이 지난해 말까지 사회적기업 및 협동조합 등에 지원한 임대료는 18억9000만원에 이른다. 또 저리로 19억6000만원가량을 대출해줬다. 주민신협이 2014년 사들인 이 건물 3층엔 성남의료생활협동조합 ‘우리한의원’이, 4층과 5층엔 사회적협동조합 ‘크풋’과 ‘성남바리스타협동조합’이, 옥상엔 크풋이 운영하는 ‘옥상달빛 풋살장’이 있다. 이들 사회적 협동조합은 주민신협과 사회적 경제 네트워크를 형성해 지역민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한다.


◆인큐베이터 역할, ‘인기 학원’으로

점심 식사 후 찾은 5층. 성남바리스타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성남바리스타학원엔 강사 3명이 학생 대여섯명에게 커피머신 사용법을 가르치는 중이었다. 강사 한명당 학생 2명 꼴이다. 학생 대부분은 40~50대 여성이었다. 일주일에 2번, 총 12번 강의하는 이 수업의 수강료는 29만6800원이다. 마스터 자격증까지 취득 가능하고 일반적인 바리스타학원에 비해 절반가량 저렴하다.

이 학원이 이곳에 입점한 건 2015년 3월이다. 입점 1년 만에 바리스타 자격 취득자를 200명 이상 배출하며 이 지역 인기 학원으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도 주민신협의 도움이 있었다. 경력단절 여성, 장애우 및 외국인 이주민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지역 청소년들이 바리스타 꿈을 실현하도록 도와준다는 학원 설립 취지에 공감한 주민신협은 이 학원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맡았다.

성남바리스타협동조합. /사진=서대웅 기자
성남바리스타협동조합. /사진=서대웅 기자
성남주민생활관. /사진=서대웅 기자
성남주민생활관. /사진=서대웅 기자

주민신협은 이 학원이 입점한 첫해 임대료를 받지 않고 2%대 중반의 저리로 1600만원을 대출해 학원의 초기 운영자금을 공급했다. 다음해인 2016년 3월부턴 임대료로 월 15만원을 받았으며 현재는 30만원을 받고 있다. 이 학원은 2015년 9월 협동조합이 됐다. 장미라 성남바리스타협동조합 이사장은 “혼자서 하기 힘든 일을 협동조합의 형태로 하면 머리수 이상의 일을 할 수 있다”며 “시너지가 몇 백배”라고 말했다.

주민신협 인근에 위치한 성남주민생활관(옛 주민신협 입점 건물)에선 에어로빅을 하는 지역민들과 영어 회화를 가르치고 배우는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낡은 건물 구석에 자리해 언뜻 초라해 보이지만 주민신협은 이 건물을 ‘사회적 금융’의 구심점으로 삼아 지역 주민에게 행복을 전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주민신협의 건물 이름도 ‘행복빌딩’이다. 다만 주민신협의 각종 서비스 대상자가 고령층인 점은 풀어야 할 숙제로 보였다. 젊은층을 유입하지 못하면 사회적금융의 지속가능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한편 정부는 사회적금융을 활성화할 계획이다. 공공부문 공급을 확대해 사회적금융 활성화에 물꼬를 트고 민간금융기관의 참여를 유도해 사회적경제 생태계를 만든다는 복안이다. 사회적경제기업 등엔 5년간 3000억원 수준을 지원키로 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최근 "사회적금융 활성화는 민간 참여를 얼마나 이끌어내는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점표 성남 주민신협 이사장. /사진=서대웅 기자
이점표 성남 주민신협 이사장. /사진=서대웅 기자

[인터뷰] 이점표 주민신협 이사장 “규모의 경제에서 ‘맞춤 경제’로”

이점표 성남 주민신협 이사장은 “지금까지 시장경제의 가치는 ‘규모의 경제’였지만 앞으로는 ‘맞춤 경제’여야 한다”며 “이를 위해 사회적 금융의 중요성은 계속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는 성장하지만 소외계층은 계속 약자인 시대가 지속되고 있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지역 맞춤경제가 필수라는 설명이다. 예컨대 은행은 오로지 정량적 수치로만 고객을 평가하기 때문에 이에 못 미치는 개인이나 단체는 시장경제 진입이 쉽지 않다. 그러나 그 지역을 가장 잘 아는 신협과 같은 협동조합을 통하면 소외계층의 사회 참여가 수월해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이사장은 “모든 신협 또는 협동조합이 동일한 모델을 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도심, 농촌, 어촌 등의 상황이 각기 다르고 도심별로도 지역민의 수요가 제각각이어서다. 그는 “크면 돋보이는 시대는 이제 지났다”며 “이제는 작으면서도 강한 게 요구되는 시대다. 지역공동체가 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36호(2018년 4월18~24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성남=서대웅
성남=서대웅 [email protected]

<머니S> 금융팀 서대웅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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