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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업계의 산증인으로 꼽히는 이지송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이 14일 퇴임했다. LH공사 사장으로는 3년8개월, 건설업계에 종사한 지는 50년만이다.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라는 굵직한 공기업을 통합하는 쉽지 않은 중책을 떠안았던 이 전 사장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앞세워 '성공적인 조직 융화'라는 결실을 맺기도 했다. 건설업계 맏형으로 통하는 이 전 시장의 공적을 조명해봤다.
◆산·학·관 두루 거친 전문경영인
이지송 전 사장은 1965년 현재의 국토해양부격인 건설부 한강유역합동조사단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 수자원공사를 거쳐 현대건설에 30여년 동안 몸담았다. 1999년 부사장으로 퇴임한 이후 경인운하 사장, 경복대학 토목설계과 교수를 역임한 뒤 2003년 3월 다시 현대건설 CEO로 돌아왔을 때 건설명가 현대건설은 워크아웃 처지에 놓여 있었다.
이 전 사장은 직원들과 처음 만난 자리에서 "'권토중래'의 각오로 잃어버린 옛 영토를 되찾고 반드시 명예와 자존심을 회복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세가지를 약속했다. 첫째는 구조조정 없는 회사 정상화, 둘째는 현대건설의 혼이 담긴 서산간척지 개발, 셋째는 15년째 받지 못한 이라크 공사 미수금을 받아 회사를 살리겠다는 것이었다.
3년 뒤 그는 뚝심과 열정을 바탕으로 한 특유의 리더십으로 경영정상화를 진두지휘하며 위기의 현대건설을 기사회생시켰다. 세가지 약속도 모두 지켰다. 취임 당시 920원에 불과했던 주가는 그의 퇴임 무렵엔 5만원대로 올랐고 현대건설은 다시 업계 최정상의 자리에 우뚝 섰다.
그의 리더십은 비단 기업에서만 통한 것이 아니었다. 현대건설 퇴임 후 수많은 영입제안을 뿌리친 채 그가 홀연히 향한 곳은 학교였다.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며 한때 교수로 몸담았던 경복대학 총장으로 취임한 것.
취업 활성화에 박차를 가한 결과 그는 총장 재임 당시 98%라는 경이적인 취업률을 달성했다. 오랜 기업경영으로 몸에 밴 목표설정과 성과도출을 향한 집념은 재학생 5000명 유지를 목표로 하는 '5000 프로젝트'로 이어졌고, 고교를 일일이 찾아다니는 발로 뛰는 홍보 끝에 결국 목표를 달성해냈다.
◆공기업 개혁의 상징
2009년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를 통합한 LH는 출범 당시 '부실공룡 탄생'이라는 우려의 시각이 팽배했다. 양 공사를 통틀어 100조원을 웃도는 부채의 늪에서 허덕였고 조직 구성원들 간 갈등과 반목의 골도 깊었다. LH의 출범이 단순한 물리적 결합에 그칠지 정부의 바람대로 화학적 시너지를 이룰지는 전적으로 초대수장의 손에 달려 있었다.
위기타개를 위해 이지송 전 사장이 꺼내든 카드는 '변화와 도전, 그리고 개혁'이었다. 가장 먼저 주력한 일은 사람들의 뜻과 마음을 하나로 만드는 일이었다. 사무실 칸막이도 없애고 직원들을 한명 한명 찾아가 대화를 나누며 "출신을 따지지 말고 무조건 뭉치자"고 독려했다.
유동성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 직원들과 함께 '팔아야 산다'며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며 판매에 나서기도 했다. 부채의 원인을 꼼꼼히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금융·재정·회계·부동산 전문가들로 구성된 재무개선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본격적인 재무진단에도 나섰다.
통합 이전 두 공사가 경쟁적으로 벌여놓은 수많은 사업도 줄여나갔다. 정치권의 압력, 지자체와 주민들의 격렬한 항의가 있었지만 사업조정은 LH도 살고 나라도 살리는 길이라는 신념으로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 이로 인해 결국 LH가 짊어지고 있던 무거운 짐들을 덜어내고 안정적인 사업토대를 만들어 갔다.
겨울 밤 천막농성을 하는 주민들과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사업이 취소된 지역에는 그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플래카드들이 난무하는 등 홍역을 치렀지만, LH의 사업조정은 대한민국 경제사에 뚜렷한 획을 그은 일로 평가받고 있다.
안으로는 내부개혁에 주력했다면 밖으로는 LH에게 도움이 되는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 정부부처는 물론 정치권, 학계, 업계 등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도움을 청했다. LH에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언제나 몸을 낮추고 체면이나 격식도 따지지 않았다. 그의 노력은 결국 LH 공사법과 정부지원이라는 결실로 맺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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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송 사장 퇴임식 |
◆부채와의 전쟁, 미완의 결실
이 전 사장은 퇴임사를 통해 "매일 매일이 전쟁이었고 생존과의 싸움이었다"며 "변화와 개혁으로 통합공사의 토대와 기틀을 세우고 경영정상화의 초석을 닦은 것으로 국가와 국민이 준 소임을 다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가 매일 전쟁을 벌이고 생존과의 싸움이었다고 한 것은 LH의 부채규모에서 기인한다. 통합 당시 86조원이던 부채는 현재 138조원까지 늘었다. 하루 이자만 120억원에 이를 정도로 LH의 채무부담은 심각했다. 그나마 사장 취임 직전 524%였던 부채비율을 지난해 466%로 줄였다. 해마다 20조원의 금융부채 증가규모도 현재 6조원 규모로 증가속도가 늦춰진 상태다.
2년 연속 공기업 최대 당기순이익을 거두는 등 경영지표가 개선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통합 초기 6800억원에 그쳤던 LH의 당기순이익은 현재 1조2000억원을 넘어섰다.
출범 초기 414개지구에 이르렀던 개발사업지구를 252개지구로 줄이면서 개발을 기다렸던 원주민에게 실망감을 안긴 것은 피할 수 없는 구조조정의 여파였다. 수요와 사업성이 없어 실패할 것이 예상됨에도 시행압력이 계속됐던 광명시흥 보금자리지구를 끝까지 보류시킨 것이 대표적인 예다.
경영정상화를 통해 경영기틀을 잡은 것으로 평가받는 50년 건설명장은 국내 최대 규모의 공기업에 숙제를 남겨둔 채 건설업계를 떠났다. 이 전 사장은 모교인 한양대 석좌교수로 자리를 옮겨 50년 건설인생을 후학에게 전수할 계획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8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