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스팅보트 쥔 '엄마·엄마 다른 누나, 그리고 새엄마'

롯데가(家)의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형국으로 전개되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후계자로 지목된 듯 보였지만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반격에 나서면서 후계구도 기류가 엇갈리는 양상이다. 아직까지 누가 승기를 잡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

이런 가운데 롯데가의 세 여인이 이번 ‘왕자의 난’ 캐스팅보트로 떠올랐다. 신 총괄회장의 둘째부인 시게미쓰 하츠코씨, 셋째부인인 미스롯데 출신 서미경씨, 장녀 신영자 롯데삼동복지재단 이사장 등 3명을 이번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에서 모종의 역할을 할 변수로 꼽을 수 있다.

만약 신동주·신동빈 두 형제가 경영권을 차지하기 위해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을 벌일 경우 세 여인이 누구의 편에 서느냐에 따라 결과가 바뀔 수 있다.

[포커스] 롯데 왕좌, '세 여심'이 가른다

◆'캐스팅보트' 세 여인… 누구 편에 설까
현재 가장 막강한 파워를 발휘할 것으로 보이는 인물은 신격호 총괄회장의 둘째부인 시게미쓰 하츠코씨다. 그는 '형제의 난' 당사자인 신동주·동빈 두 형제의 모친이다.


그는 지난 달 30일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면서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다. 시게미쓰씨는 입국한 이유와 두 아들 중 누구의 편에 설 것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서둘러 공항을 빠져 나갔다.

초미의 관심은 형제간 한일 분할경영을 원하는 것으로 알려진 시게미쓰씨가 중재에 실패할 경우 과연 누구의 편에 설지다. 현재로선 장남인 신동주 전 부회장을 챙길 것으로 추정되지만 확고한 입장을 드러낸 바 없는 만큼 롯데 경영권 향배의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또 다른 관심사는 그가 롯데그룹 지분을 얼마나 쥐고 있느냐다. 아직까지 지분관계가 공개되지 않은 롯데홀딩스의 지주회사 ‘광윤사’와 국내 롯데를 지배하는 ‘L투자회사’에 시게미쓰씨가 지분을 얼마나 확보했는지에 따라 두 형제의 후계구도 흐름을 바꿀 수도 있다.


신 총괄회장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면 신동주·동빈 형제 모친의 의중이 가족회의를 통해 총수를 선택하는 데 중요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폭풍의 핵으로 떠오른 장녀 신영자 이사장 역시 캐스팅보트로 주목받는 여성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신 이사장은 롯데쇼핑 지분 0.74%, 롯데제과 2.25%, 롯데칠성음료 2.66%, 롯데푸드 1.09%, 롯데정보통신 3.51%, 한국후지필름 3.51% 등을 보유 중이다. 롯데제과(8.69%)와 롯데칠성음료(6.28%) 등 계열사 지분을 통해 롯데장학재단 이사장도 역임하고 있다.

두 형제가 보유한 국내 계열사 지분이 비슷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외로 신 이사장의 영향력이 막강하게 작용할 수 있다. 최근 그가 보여준 동선은 신 전 부회장의 편에 섰음을 방증한다. 앞서 신 이사장은 신 총괄회장의 일본행에 동행해 신 회장 해임에 뜻을 함께 한 바 있어서다. 그러나 신 전 부회장은 이와 관련 "신 이사장은 중립"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신 총 회장의 셋째부인 서미경씨의 역할도 주목된다. 신 총괄회장은 한국에 머무를 때 서씨의 자택을 자주 찾는 등 셋째부인을 누구보다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번 후계구도와 관련, 서씨가 신 총괄회장에게 어떤 의견을 내놓느냐도 변수로 작용할 소지가 있다.

서씨는 백화점과 영화관의 매점 등 알짜 사업권을 소유 중이며 그룹 내부에서도 나름의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분은 롯데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롯데쇼핑 주식 0.1%를 갖고 있고 딸 신유미 롯데호텔고문은 롯데쇼핑 주식 0.09%, 롯데푸드 0.33%, 코리아세븐 1.4%를 보유하고 있다. 서씨가 두 형제 중 누구의 편에 섰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재계 관계자는 "신 총괄회장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부인과 딸일 것"이라며 "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따라 후계구도 흐름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뉴스1 변지은 인턴기자
/사진=뉴스1 변지은 인턴기자

롯데 '형제의 난' 어쩌다 이 지경까지
이번 '왕자의 난'은 지난 달 27일 벌어진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 해임건이 시작이었다. 당시 신 전 부회장과 친족 5명은 신격호 총괄회장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신동빈 회장을 포함한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 6명을 전격 해임했다.

이에 동생 신동빈 회장 측은 곧바로 반격했다. 롯데홀딩스 이사들은 다음날인 28일 긴급 이사회를 열고 전날의 이사 해임 결정을 무효화시키고 창업주인 신 총괄회장을 대표이사직에서 해임했다. 신 총괄회장이 롯데 계열사에서 해임된 것은 롯데 설립 이래 처음이다.

재계에선 이를 장남인 신 전 부회장의 쿠데타로 규정했다. 하지만 신 전 부회장은 "이사 해임은 아버지의 강력한 의지"라며 '신격호 지시서'를 언론에 공개함으로써 다시 진실공방에 휩싸였다.

신격호 지시서는 롯데홀딩스 이사 6명을 직위 해제하고 신 전 부회장 등 4명을 사장과 임원으로 임명하라는 내용이 담긴 문건이다.

재계 관계자는 "그룹의 볼썽사나운 경영권 분쟁과 더불어 이번 왕자의 난으로 한국롯데를 일본롯데가 지배한다는 사실이 국민에게 공개됐다"며 "앞으로 누가 총수로 오르든 상당한 후유증을 겪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롯데의 경우 그룹의 지분구조가 복잡하고 지배구조도 불투명해 경영권 분쟁은 예견됐다"며 "신 총괄회장이 후계자를 명확히 지목하지 않아 벌어진 혈투"라고 안타까워 했다.

한편 한국 롯데는 연간 매출 83조원으로 국내 재계 5위의 그룹이다. 일본 롯데는 매출 6조원으로 한국 롯데의 14분의 1에 지나지 않지만 지분구조상 경영권 확보의 열쇠를 쥐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9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