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입가경이다. 한편의 ‘막장드라마’를 연상케 하는 롯데그룹의 형제간 분쟁을 두고 하는 말이다. 형을 밀어내고 한·일 경영권을 독차지한 동생과 쫓겨나듯 물러난 회사를 되찾으려는 형.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의 갈등은 서로를 물고 뜯는 제살 파먹기식 싸움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나 돈보다는 묽다는 말을 실감케 하는 롯데家 왕자의 난, 도대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진=뉴스1 양동욱 기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진=뉴스1 양동욱 기자

#. 시게미쓰 히로유키.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장남. 부인은 재미교포 사업가 딸인 조은주씨. 국적은 대한민국이나 한국말 못함. 지난 1987년 일본 롯데상사 미국지사장을 맡으며 일본 전담 시작. 성격은 다소 차분하고 내성적인 편. 감수성이 풍부하다고 알려져 있음.
#. 시게미쓰 아키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신 총괄회장의 차남이자 신 전 부회장의 한살 터울 동생. 지난 1985년 일본인 아내와 중매결혼. 그의 부인은 일본 귀족 가문 출신으로 일본 최대 건설사 중 하나인 다이세이건설 회장 딸 오고 미나미. 현재 국적은 대한민국이나 형과 함께 일본 국적을 얻으면서 병역을 면제받은 뒤 40대가 넘어 국적을 회복함. 형보단 낫지만 한국말 어눌함. 지난 1990년 롯데케미칼의 전신인 호남석화에 입사하면서 한국롯데와 첫 인연. 마초 같은 성격의 소유자. 한번 결정한 것은 과감하고 거침없이 밀어붙이는 편.

◆ 지난 7개월간 무슨 일이…


달라도 너무 다른 롯데그룹의 두 형제. ‘일본=신동주’, ‘한국=신동빈’으로 확실시되던 롯데의 후계구도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지난해말.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이 돌연 롯데그룹 부회장과 롯데상사 부회장 겸 사장, 롯데아이스 이사직에서 한꺼번에 해임되면서다. 이어 그는 올해 1월8일에는 지주회사인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에서도 전격 해임됐다. 이후 한국과 일본 롯데를 아우르는 ‘원톱’ 자리에 오른 인물은 동생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동생에게 밀린 충격으로 경영권 회복을 노리던 신 전 부회장은 지난달 27일, ‘2차 왕자의 난’을 일으킨다. 아버지인 신격호 총괄회장, 누나인 신영자 이사장과 함께 신 회장 측 가신인 일본 롯데홀딩스 임원들에 대한 해임을 시도한 것.


잠시 권력을 쥔 듯했지만 신 회장이 이사회를 거치지 않았다며 무효로 규정하면서 다시 상황은 반전됐다. 다음날 오전엔 신 회장이 정식 이사회를 열어 아버지인 신 총괄회장 해임이라는 초강수를 두면서 세 사람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연매출 83조원, 임직원 10만명, 80여개의 계열사를 가진 재계 서열 5위의 글로벌그룹으로 성장한 ‘롯데’家의 위상이 나락으로 치닫는 순간이었다.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사진=머니투데이 김창현 기자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사진=머니투데이 김창현 기자

◆ 신동주의 지분 사들이기… 분쟁 씨앗 됐나
사실 롯데그룹에 심상찮은 움직임이 감돈 것은 지난 2013년이다. 지난 2003년 이후 10년간 유지됐던 두 형제간 지분율에 변화가 감지된 시점이다. 신 전 부회장은 지난 2013년 8월부터 한달 간격으로 롯데제과의 지분 10억원어치를 매입하기 시작했다. 롯데제과는 그룹 지주사격인 롯데쇼핑 지분 7.9%를 보유한 롯데의 핵심기업.

지난해 4월과 5월에도 신 전 부회장은 롯데제과 주식을 잇따라 사들였다. 그 결과 지분율이 3.85%로 상승해 5.34%의 지분을 보유한 신 회장과의 지분격차가 1.86% 포인트에서 1.49% 포인트로 좁혀졌다.

지분구조가 공개되지 않은 일본 롯데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롯데홀딩스와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광윤사(고준샤·光潤社) 역시 형제가 비슷한 규모의 지분을 갖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다 보니 어느 한쪽에서 작은 변화만 있어도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둘 사이의 균형추가 움직일 수 있는 상황. 재계 관계자들은 이때부터 롯데에 왕자의 난이 벌어질 조짐이 있다고 봤다.

재계 한 관계자는 “10년째 지분이 엇비슷해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후계구도가 형성되고 있었다”며 “동생에게 밀릴까 불안함을 느낀 장남이 경영권 분쟁에 신호탄을 쏜 것”이라고 말했다.

[흔들리는 롯데] 혈육 내친 ‘피보다 진한’ 야망

◆ ‘한국 롯데’ 키운 신동빈의 반란인가
다른 성격과 상반된 경영성적표도 분쟁이 시작된 원인으로 꼽힌다. 차분하고 감수성이 많다고 알려진 신 전 부회장과 추진력이 뛰어난 신 회장. 신 총괄회장은 당시 롯데의 지배구조를 두고 고민하던 중 차남의 경영능력을 더 높이 평가해 한국 롯데를 쥐어준 것으로 전해진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신 회장이 지난 2004년 본격적으로 한국롯데 경영을 맡았을 당시 매출은 23조원 정도. 한국롯데는 지난 10년 사이 매출 83조원으로 4배 가까운 성장을 일궜고, 그 선봉엔 신 회장이 있었다.

반면 일본 롯데는 계열사 수가 한국롯데의 절반이고, 매출 역시 15분의 1 수준인 5조7000억원에 불과하다. 또 재계 5위권인 한국롯데와 달리 일본롯데는 200대 기업 사이를 오가는 수준이다.

신 회장 스스로도 이런 경영지표를 근거로 본인이 형보다 경영상 우위를 점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롯데그룹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신 회장이 평소 자신이 거둔 경영 성과에 비해 돌아오는 몫이 탐탁치않아 불만이 많았던 것으로 안다”며 “지분구조가 베일에 가려진 롯데그룹 특성상 형과의 분쟁이 시작되자 아버지를 해임하면서까지 한국롯데를 키워낸 자신의 공을 인정하라는 쿠데타를 벌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 가족 품은 신동주 vs 경영인 업은 신동빈

이런 이유로 왕자의 난이 촉발됐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게다가 롯데家 내부에서 반 신동빈 세력이 커지면서 내부 충돌을 더 키웠다는 분석도 나온다.

반 신동빈 세력에는 신영자 이사장과 신동인 롯데자이언츠 구단주 직무대행 등이 꼽힌다. 이들은 한때 롯데그룹의 핵심으로 거론되다 신 회장이 실권을 잡으면서 밀려났다는 공통점이 있다. 여기에 신 총괄회장의 동생인 신선호 일본 산사스식품 사장도 장남인 신 전 부회장을 지원하고 있다.

이에 질세라 신 회장은 경영인들을 내세워 방어전을 펼치고 있다. 최근 롯데그룹 37개 계열사 사장이 신 회장 지지를 선언한 데 이어 쓰쿠다 다카유키 일본 롯데홀딩스 사장도 공개 지지를 선언하면서 본격 세몰이에 나섰다.

형은 가족을, 동생은 경영인을 안고 절대 권력자인 아버지로부터 승계권을 서로 주장하면서 끝모를 분쟁의 불씨만 키우고 있는 셈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9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