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관광객 1500만 시대다. 대한민국 인구의 3분의 1이 관광을 위해 한국을 방문하는 셈이다. 관광객이 늘면서 자연스럽게 면세점도 호황이다. 하지만 시내면세점은 5년마다 대규모 투자가 가능한 사업자에게만 인가를 내주기 때문에 아무나 영업할 수 없다. 반면 사후면세점은 규모와 상관없이 등록만 하면 운영할 수 있어 최근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이미 주요 번화가는 물론 다소 외진 골목에서도 사후면세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특히 정부는 올해부터 사후면세점을 활성화하기 위해 ‘즉시환급제’를 도입했다. 물건을 구매할 때 세금만큼의 가격을 그 자리에서 할인해주는 것이다. 즉시환급제는 늘어나는 외국인관광객 수요에 발맞춰 내수경기 활성화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사진=최윤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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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즉시환급제 도입… 성장 밑거름
사후면세점은 외국인관광객이 산 물건의 세금을 출국 전 공항에서 돌려주는 형태를 말한다. 국내 세법에 따르면 각 상품에 기본적으로 부가가치세 10%와 개별소비세 5~20%가 부과되는데 외국인관광객에게는 이를 면제해주는 것이다. 다만 내국인이나 외국인 거주자는 사후면세점을 이용할 수 없다.

사후면세점은 한국을 찾는 관광객 수가 늘면서 성장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08년 2208개에 불과하던 사후면세점이 지난해 1만744개로 늘었다. 사전면세점이 국내에 총 38곳인 데 비하면 엄청난 숫자다. 사후면세점은 정부의 인가절차가 필요 없고 지역 관할세무서에 신고만 하면 영업이 가능하다. 따라서 소규모 상점이 진입하기 쉽다. 다만 사후면세점은 소비세(부가가치세·개별소비세)만 감면해준다. 반대로 사전면세점의 면세범위는 관세, 주세, 소비세 등이다. 이렇다보니 사후면세점은 값비싼 수입명품보다 국산 토속상품을 주력으로 판매한다.


특히 올해부터는 사후면세점에 즉시환급제가 도입돼 시장규모가 더 커질 전망이다. 지난해까지는 외국인관광객이 사후면세점에서 물건을 제값 주고 산 뒤 출국하기 전 공항에서 세금을 환급받았다. 이 방식은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환급창구의 혼란을 불러왔고 외국인관광객의 불만을 샀다.
이에 기획재정부는 관련 법을 개정해 지난 1일부터 외국인관광객이 사후면세점에서 20만원 미만의 물건을 구매하면 세금을 즉시 돌려주는 제도를 시행 중이다. 관광객 1인당 환급받을 수 있는 한도는 총 100만원이다.

이 제도의 시행으로 외국인관광객은 세금이 감면된 가격에 물건을 살 수 있게 됐다. 또 기존에는 환급액이 5만원을 넘는 물품을 구매한 관광객의 짐을 모두 검사했지만 올해부터는 관할 세관장이 정하는 기준에 따라 선별된 관광객만 검사한다. 전수검사를 위해 관광객이 장기간 대기해야 하는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서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기준 사후면세점 시장규모가 2조5000억원으로 추산되는데 올해에는 즉시환급제 실시로 20% 이상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기재부 관계자는 “지난해 상반기 전체 환급건수의 79%, 전체 외국인 관광객의 39%가 20만원 미만의 물품을 구매했다”며 “즉시환급제 도입으로 외국인의 사후면세점 쇼핑이 증가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사진=머니위크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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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도 뛰어드는 사후면세점
사후면세점은 주로 개인사업자가 소규모로 운영해왔다. 이들은 여행사 단체관광객을 대상으로 중저가 화장품과 인삼 등의 토산품을 주력으로 판매한다. 하지만 외국인관광객이 증가하고 정부가 지원사격에 나서면서 사후면세점사업이 기업들의 새로운 먹거리로 떠올랐다. 대형유통채널인 백화점은 대부분 사후면세점 등록을 마쳤다. 신세계·롯데 등 백화점과 사전면세점을 동시에 운영하는 곳은 시너지효과가 기대된다.

이지영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유통공룡들이 백화점을 사후면세점으로 등록하면서 건물 전체가 면세점화 돼 성장이 주목된다”며 “국내 소액상품 및 수입 고가상품을 한곳에서 다양하게 구입할 수 있는 종합 대형면세점으로 재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레이저장비를 제작하는 코스닥 상장사 엘아이에스(LIS)도 지난해 4월부터 본격적으로 사후면세점사업에 뛰어들었다. 현재 서울 충무로 헛개매장 오픈을 시작으로 제주도 내 백화점을 포함 전국에서 6개의 점포를 운영 중이다. 엘아이에스는 오는 3월까지 3개 매장을 더 늘리고 주 고객층인 중국인관광객의 입맛을 사로잡을 차별화된 상품을 판매하겠다고 밝혔다. 이로써 올해 2500억원가량의 사후면세점 관련 매출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엘아이에스 관계자는 “올해 제주항, 부산항, 인천항의 크루즈여행 일정이 지난해보다 대폭 늘었다”며 “중국인관광객이 대부분인 크루즈여행이 증가하면 관광쇼핑 수요도 늘어날 것으로 보여 앞으로 사후면세점사업의 성장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국내 최다 점포 수를 보유한 편의점업계도 사후면세점 진출을 꾀했다. 세븐일레븐은 지난해 4월부터 일부 매장에서 3만원 이상 구매한 관광객을 대상으로 세금 환급서비스를 실시한다. GS리테일도 사후면세점사업 진출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사후면세점 활성화 법안이 다소 성급하게 시행된 만큼 앞으로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영주 흥국증권 애널리스트는 “사후면세점이 외국인 관광객에게 즉시환급하려면 전자여권을 스캔해서 바로 세관과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한데 아직 부족하다”며 “길은 닦았는데 신호등이 설치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비유했다. 이어 임 애널리스트는 “신용카드 밴(VAN)사와 같이 전용단말기사업자가 나오거나 이에 따른 세부규정이 나와야 실제 판매 시 발생할 수 있는 실수나 오류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1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