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익숙한 책이지만 항상 색다르게 읽을 필요가 있다. 1900년 전 아우렐리우스의 현실과 우리 현실에 차이가 있으므로 끊임없이 재해석하고 적용할 여지가 많다. 현대소비사회가 고성장기를 지나 저성장기로 접어드는 마당에 스토아 철학의 핵심사상을 잘 표현한 <명상록>이 재평가되고 있다.

외부 조건이나 평가보다는 자기 마음의 안정과 평화에 더 집중하는 점은 저성장사회에서 우리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다. 우리의 지금 현실에 맞게 재해석한 <명상록을 읽는 시간>은 그런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서평] 끌려가는 삶, 끌어가는 삶

그가 말하는 ‘순응’은 자신 삶의 특성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우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그대가 갖지 못한 것을 동경하지 말라”고 했다. 또한 “대신 그대가 갖고 있는 가장 훌륭하고 좋은 것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런 것들이 그대에게 없었다면 얼마나 아쉬웠을지 상상해 보라”고 한다. 저자는 내 삶이 거지같을지라도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고 한다. 솜털만한 것이라도 즐기고 하나씩 찾아보면 지금 삶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것. 손에 잡을 수 없는 거창한 것을 넣으려고 하니 불행감과 좌절감이 더한다고 본다. “그대에게 주어진 것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것이 그대의 힘이 미치지 않는 것에 대해 비굴하게 호소하는 것보다 낫다”고 한 아우렐리우스의 말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예컨대 고성장기의 화려한 성공은 잊고 이제 저성장 사회에 맞는 생활양식을 갖춰야 한다. 또한 아우렐리우스는 “왜 이러한 일들이 나에게 일어나냐고 불평을 말라”고 한 것에 대해 힘겨움이 없기를 바라지만, 삶에 힘겨움이 없기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식하면 더 좋다고 말한다. 아우렐리우스는 “인간의 고통이 인간이 마땅히 해야 할 일과 관련된 노력에 따른 것이라면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그는 목수의 작업장에 있는 톱밥처럼 삶은 대패질이며 고통은 톱밥이라고 한다. 고통과 어려움이 당연하다는 사실에 순응할 때 그것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게 된다.


그리고 변화에 대해서는 남이 아니라 자신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 아우렐리우스의 생각이다. 그는 “훌륭한 사람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하지 말고 그런 사람이 되어라”고 했다. 저자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사람책’이고 대단치 않아도 무엇인가 읽을 게 있는 ‘사람책’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삶을 소박하지만 충실하게 하는 나만의 기술이 되기 때문이다. “한 인간의 가치는 그가 관심을 갖는 대상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명심하라”는 말에 대해 저자는 나에게 부여된 가치를 바꾸려면 몸을 바꾸고 삶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최선의 기술이고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도 높이는 것도 내 자신이니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유인창 지음 | 바다출판사 펴냄 | 1만5000원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2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