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 가맹점수수료가 또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정부는 우대수수료율 범위를 확대해 영세자영업자의 부담을 덜겠다는 방침이고 카드업계는 수익악화로 서비스를 축소할 수밖에 없어 카드회원만 피해를 보게 될 거란 입장이다. 그동안 ‘카드수수료 인하’ 이슈는 매번 정치권 단골 소재로 등장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젠 정치논리로 풀 것이 아니라 시장 자율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도록 카드시장의 구조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일자리 질’ 높이려 수수료 인하?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는 지난 1일 ‘일자리 100일 계획’을 통해 카드 우대수수료율을 적용받는 가맹점 범위를 확대한다고 밝혔다. 0.8%의 우대수수료율을 적용받는 영세가맹점 기준을 현행 연매출 2억원 미만에서 3억원 미만으로, 1.3%를 적용받는 중소가맹점 기준은 2억원 이상~3억원 미만에서 3억원 이상~5억원 미만으로 늘리겠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여신전문업법시행령을 개정해 오는 8월 중 시행키로 했다.
가맹점 우대수수료율 체계가 변경되면 약 44만개 가맹점이 수수료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연매출 2억~3억원인 가맹점은 19만개, 3억~5억원인 곳이 25만개다. 이들은 현재 각각 1.3%, 최고 2.5%의 수수료를 카드사에 줘야 하지만 시행령이 개정되면 0.8%, 1.3%만 내면 된다.
이처럼 정부가 카드 가맹점수수료 체계를 손보려는 것은 일자리 질을 높이기 위해서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이 정부의 복안인데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리면 영세자영업자의 임금비용 부담으로 오히려 일자리 수가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영세가맹점의 부담 완화를 위한 방책으로 가맹점 우대수수료율 적용대상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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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미지투데이 |
그러나 이 대책으로는 ‘일자리 계획’의 실효성을 높일 수 없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카드수수료로 경영상 부담을 느끼는 영세자영업자가 100명 중 3명이 안된다는 조사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여신금융협회가 지난 3월 한국갤럽에 의뢰해 영세가맹점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 결과를 보면 카드수수료로 어려움을 겪는다고 생각하는 영세자영업자는 2.6%에 불과했다. 실제론 경기침체(57.2%), 임대료(15.8%), 영업환경 변화(10.6%), 세금·공과금(4.2%) 등의 이유가 컸다.
이명식 한국신용카드학회장(상명대 경영학과 교수)은 “영세자영업자 경영부담 완화를 위해 카드수수료를 손본다는 것은 근시안적인 대책”이라며 “카드의무수납제 폐지,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 등 보다 실질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치논리에 카드회원만 ‘봉’
카드업계는 비상이다. 연매출이 5500억원가량 손실될 것으로 예상돼서다. 여기에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카드수수료율을 중소가맹점의 경우 1.3%에서 1.0%로, 영세가맹점은 현 0.8%에서 점진적으로 더 낮추겠다고 약속한 바 있어 앞으로 카드사의 수익악화는 더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선 지금처럼 정치적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카드수수료 인하 카드를 꺼내면 시장질서가 흐트러질 수 있다고 꼬집는다. 또 카드수수료율을 낮출 때마다 회원의 카드혜택도 줄 것이라고 우려를 표한다. 실제 지난해 초 기존의 우대수수료율이 영세가맹점의 경우 1.5%에서 0.8%로, 중소가맹점은 2.0%에서 1.3%로 0.7%포인트씩 인하되자 카드업계는 이른바 ‘알짜카드’를 단종하는 등 비용절감에 나서기도 했다.
김상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카드수수료 인하 시 카드상품 단가가 조정될 수 있다. 마일리지 등 포인트 적립률을 인하하고 각종 이벤트를 축소하는 게 대표적인 예”라며 “최근 카드업계는 전월실적을 늘리며 고객이 혜택을 받기 위한 조건을 강화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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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스 DB |
◆“장기적으로 카드시장 구조 개선해야”
카드사의 볼멘소리에도 앞으로 정치적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카드수수료 인하 논란은 끊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카드사는 재벌대기업, 영세자영업자는 사회적약자’라는 인식이 팽배해 카드수수료를 정치논리로 이용하기 쉬워서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 카드시장의 3당사자 구조를 4당사자 구조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한다.
3당사자 체계란 신용카드시장을 구성하고 있는 ‘카드사-가맹점-카드회원’을 말한다. 이러한 3당사자 체계에서 카드사는 가맹점과 카드회원 모두를 고객으로 둔다. 가맹점은 모든 카드사와 가맹계약을 맺을 수밖에 없어 카드사보다 ‘을’인 반면 고객은 카드사 중 몇 개만 고를 수 있어 카드사보다 ‘갑’의 위치에 있다. 즉 카드사로선 고객을 더 중시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는 과거 대형가맹점보다 영세가맹점의 카드수수료율이 더 높았던 배경이기도 하다.
반면 미국과 유럽은 4당사자 체계로 ‘카드발급사-카드회원’, ‘전표매입사-가맹점’으로 구성된 ‘1사-1고객’ 구조다. 발급사는 카드회원만, 전표매입사는 가맹점만 관리하면 된다. 이 체계에선 ‘정산수수료’가 주요 이슈지만 카드사가 카드발급과 전표매입을 독점하지 못해 매입사간 자율경쟁이 가능하고 가맹점으로선 매입사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에 4당사자 체계를 도입하는 건 당장은 힘들다”면서도 “은행·증권사 등 금융회사가 전표매입 비즈니스모델을 만들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경쟁이 치열해지면 카드수수료가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의해 조정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 교수는 또 “정부가 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방식보다 소비자권리를 강화하는 등 시장이 자율적으로 움직이도록 조정자 역할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9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