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장성에 위치한 보해 장성공장. /사진제공=보해양조
호남 술의 대명사 보해양조가 ‘임지선 후폭풍’에 휩싸였다. 보해양조는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삼학, 백화, 보배 등 호남 연고의 주류회사를 따돌리고 독보적인 위치로 올라선 중견기업. 지역주류업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해외 진출에 박차를 가하면서 글로벌 주류기업이란 장밋빛 청사진을 그리기도 했다.
그러나 2년 전 오너가 3세 임지선 대표이사(부사장) 취임 이후 상승세가 꺽였다. 취임 첫해부터 적자로 전환됐고 무리한 주종 다변화 시도가 독이 돼 돌아왔다. 급기야 임직원들이 임금을 반납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시장점유율도 지속적으로 하락세다. 텃밭인 광주·전남 지역에서 한때 90%까지 치솟았던 주력제품 ‘잎새주’의 점유율은 50%대로 떨어졌다. 각종 후유증으로 흔들리는 임지선표 보해. 임 대표는 이제 대표이사 명맥만 유지하는 신세가 됐다.
◆ 국내영업 손떼고 해외사업만
관련업계에 따르면 보해는 지난 9월1일자로 임원 업무위촉 변경을 실시했다. 지난해 3월 취임한 채원영 대표이사(사장)가 회사 전반의 업무를 담당하고 임 대표는 기존 국내영업 업무에서 제외되며 국제사업 업무만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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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해양조 오너 3세 임지선 대표. /사진제공=보해양조 |
인사 배경과 관련해 보해 관계자는 “사업영역을 나눠 국내사업은 채 대표가 맡고 임 대표는 국제사업을 맡는 이원화 체제가 된 것”이라며 “매취순, 복분자 등 국내제품 매출이 사실상 한계에 다다라 와인과 수입맥주 위주의 해외사업에 집중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회사 측은 신규 먹거리를 찾기 위한 사업 다각화라지만 임 대표 취임 이후 보해양조 실적이 부진한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문책성 인사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임 대표는 2015년 11월 보해양조 대표이사로 취임한 뒤 줄곧 공격적인 경영 행보를 보였다. 아홉시반, 잎새주부라더, 부라더#소다, 복받은부라더 등 창사 이래 가장 많은 신제품을 단기간에 쏟아내며 저도주·과실주시장으로 사업영역을 넓혔다.
지역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수도권으로 확대하면서 영업활동비, 광고선전비 등 마케팅 비용도 덩달아 커졌지만 판매증가로 이어지진 못했다. 반짝 인기를 끌던 부라더#소다는 경쟁 제품에 밀려 판매량이 급감했고 임 대표의 야심작이었던 아홉시반도 8개월 만에 영업을 접는 굴욕을 맛봤다.
그 결과 취임 첫해 받아든 성적표는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보해양조의 지난해 매출은 1155억원으로 전년보다 6.7% 줄었고 영업이익도 적자로 돌아섰다. 60억원 적자에 순손실은 90억원을 기록했다. 적자전환은 2011년 창해에탄올에 인수된 뒤 처음 있는 일이다. 피해는 고스란히 직원들에게 돌아갔다. 보해양조는 지난 1월부터 직급별로 임원은 20∼30%, 직원은 10%의 임금을 자진 반납 중이다.
주류업계 한 관계자는 “임 대표가 부라더소다로 국내 주류업계에서 보기 드문 마케팅을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며 “이번 업무조정도 사실상 문책성 좌천인사 아니겠냐”고 귀띔했다.
일각에서는 보해양조가 내리막길을 걷는 사이 내부에서 임 대표를 반대하는 임원들을 중심으로 파벌이 생겨 이번 인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그러지 않고서야 안방인 호남지역 점유율이 50% 밑으로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주류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20~30년간 보해를 지켜온 임원들 입장에선 85년생 30대 CEO를 모시기 어려운 부분이 분명 있을 것”이라며 “지역 소주시장에선 소위 깔고 가는 점유율이란 게 있는데 내부가 시끄럽지 않고서야 경쟁사에 그만큼 점유율을 내줄 순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보해양조 관계자는 “내부 파벌은 사실무근”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 관계자는 “파벌이라기보단 소비자가 선호하는 제품을 만드는 데 서로 생각이 다른 것”이라며 “나름대로 혼신의 힘을 다했는데 기대와 달리 시장에서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 직원들 허리띠 졸라 ‘억지 흑자’
다행스럽게도 올 상반기 성적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보해양조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올 상반기 매출액은 504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634억원 하락했지만 영업이익은 18억원 적자에서 13억원 흑자로 전환했다.
다만 이런 흑자전환이 제품 판매에 따른 이익이 아닌 직원급여와 영업활동비, 광고선전비 등을 줄인 결과라는 점은 아쉽다. 보해양조의 올 상반기 급여는 80억에서 54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32.5% 줄었고 영업활동비와 광고선전비도 18억원, 24억원으로 각각 25%, 50% 줄었다.
보해양조 관계자는 “인건비, 마케팅 비용 등을 최대한 아끼는 과정에서 흑자전환에는 성공했지만 좋은 시그널은 아니라고 본다”며 “판매가 잘되는 게 가장 중요하며 연말까지는 판매가 신장돼 흑자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리띠를 졸라매 겨우 수익을 내고 있는 보해양조와 국내영업에서 손을 떼는 임 대표. 이 두가지 변화가 앞으로의 보해양조에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S> 추석합본호(제507호·제50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