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되는 매출 감소와 가파른 비용 상승으로 유통산업 내 기업들의 미래가 불투명해지는 시점에 서 있게 됐음을 고백합니다.”

회사의 대표이사가 업계의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말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임직원에게 직접 하는 얘기라면 더욱 그렇다. 물론 최고경영자(CEO)의 이런 고백은 작금의 현실을 인정하고 ‘다시 뛰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


임일순 홈플러스 사장이 자필 편지를 사내에 공지해 화제다. 임 사장은 지난 6월17일 2만4000여명이 이용하는 사내게시판에 A4용지 4매 분량의 손으로 쓴 편지글을 게시했다. 핵심 내용은 ‘서로를 믿고 격려하고 손을 잡자’다. 불황이 닥친 대형마트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임 사장의 ‘손 편지 리더십’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까.


임일순 홈플러스 사장. /사진=임한별 기자
임일순 홈플러스 사장. /사진=임한별 기자

◆“우리는 다시 할 수 있다”
임 사장이 자필 편지를 게시판에 공개한 것은 회사의 부진, 나아가 불황에 직면한 대형마트업계에 새로운 변화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는 편지에서 “우리는 우리 사업의 과거와 현재 그 변화된 위상을 너무나 잘 체감하고 있다”며 “작금의 상황은 유통산업의 불확실성이 커져 과거의 모습 그대로의 전통 유통사업자라면 생존을 위협받는 위기의 현실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대형마트업계는 심각한 위기상황에 맞닥뜨렸다. 온라인쇼핑몰, 편의점 등의 약진으로 업계 전체 매출이 지난해부터 하락세다. 홈플러스 역시 지난해 매출이 7조6598억원으로 전년보다 3.7% 줄었고 영업이익은 1091억원으로 무려 57% 감소했다.

대주주인 사모펀드(PEF) MBK파트너스는 대형마트업황이 어려워지자 매장 폐점과 직원 감축을 시도하고 있다. 회사 직원들 사이에서 ‘불안하다’는 여론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임 사장의 편지는 이런 내부 불안을 다잡고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는 측면으로 보인다. 임 사장은 “여러분에게 주주에 대한 막연한 염려가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며 “저는 우리와 주주가 걷고 있는 길이 다르지 아니하며 회사는 주주 변경과 상관없이 영속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 사장은 편지에서 고민과 함께 ‘희망’이 있다고 밝혔다. 위기 속에서도 선제적으로 준비하고 실행한 과제들이 홈플러스를 위기에서 구해줄 것이란 믿음을 담았다. 그는 편지에서 총 6가지 경영과제를 제시하며 "우리의 유통역량이 더해지면 분명 새로운 유통강자로 떠오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업계에 들이닥친 위기를 우리만의 강점으로 헤쳐 나가자는 CEO의 메시지에 직원들도 반응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손 편지를 통해 어려움에 직면한 유통업계의 현실을 공감하고 직원들과 함께 고난을 헤쳐 나가고자 하는 사장님의 의지를 엿본 임직원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며 “사장님 개인의 생각과 의견을 반영한 꾸밈없는 손 편지가 직원들과 소통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동안 CEO들은 사내게시판을 직원과의 소통창구로 활용해왔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그랬고 이재현 CJ그룹 회장 외 많은 CEO가 게시판을 통해 솔직한 심경을 토로했다. 업계 관계자는 “점점 ‘해명게시판’이 돼 간다는 비판적인 여론도 있지만 회사 최고의 수장이 건네는 솔직한 메시지에 임직원 정신자세가 달라지는 건 사실”이라며 “임 사장의 이번 손 편지도 정성이 담긴 메시지를 직원에게 전달해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져보자는 측면에서 성공적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혁신 사업 순항… 재도약 가능할까

변화하는 유통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임 사장이 시도한 혁신은 조금씩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홈플러스는 고객 소비패턴과 유통환경 변화에 발맞춰 지난해 ‘대수술’에 착수했다. 기존 대형마트와 창고형할인점의 장점을 결합한 ‘홈플러스 스페셜’ 전환과 온라인 사업 강화를 위한 ‘풀필먼트 센터’ 조성 과정에서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그중 홈플러스 스페셜의 약진은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첫선을 보인 혁신형 점포 홈플러스 스페셜은 대형마트와 창고형 할인점의 장점만 뽑아 재탄생한 곳으로 1·2인가구를 위한 소포장상품부터 가성비 높은 박스 단위의 대용량상품까지 모두 한자리에서 구매가 가능하다.

지난해 6월부터 총 16개 매장을 전환 오픈한 홈플러스 스페셜은 올 6월까지 전년 동기 대비 매출신장률이 20%에 육박한다. 특히 홈플러스 스페셜 목동점, 안산고잔점, 분당오리점 등은 기존 창고형할인점 경쟁사인 코스트코와 이마트 트레이더스가 인접해 있다. 하지만 이 점포들은 ‘경합 점포’ 리스크를 극복하고 전년 동기 대비 25% 안팎의 높은 신장률을 유지 중이다. 홈플러스는 올해도 20여개의 기존 점포를 홈플러스 스페셜로 지속 전환할 방침이다.

홈플러스는 올해 온라인 전용 ‘풀필먼트 센터’를 지속 확대하는 등 온라인사업 강화에도 지속적인 투자를 진행한다. 대형마트 침체기 속 기존 유통자산을 활용한 옴니채널 확장과 신선식품 전략화 등으로 고객 니즈를 충족시킨다는 계획이다.

임 사장은 손 편지 마지막 문단에서 2017년 10월 대표이사 사장 취임 당시 다짐했던 비전과 약속의 문구를 상기시키며 “우리 모두는 공동운명체”임을 강조했다. 그의 절실한 호소는 홈플러스 직원들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손 편지 리더십의 결말이 사뭇 궁금해진다.

☞프로필
▲1964년 출생 ▲1987년 연세대 경영학 학사 ▲1998~2002년 코스트코코리아 최고재무책임자(CFO) ▲2006~2010년 바이더웨이 CFO ▲2015년 홈플러스 CFO, 부사장 ▲2017년 홈플러스 경영지원부문장, 부사장 ▲2017년 홈플러스 대표이사 사장


☞ 본 기사는 <머니S> 제598호(2019년 6월25일~7월1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