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은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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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가 ‘왕좌의 게임’… ‘○○의 난’ 잔혹사


세대교체에 나선 재계 일부 후계자 사이에서 경영권을 둘러싼 이전투구가 한창이다. 현재 한국테크놀로지그룹(옛 한국타이어)이 경영권 문제로 내홍을 앓고 있고 한진그룹과 롯데그룹은 언제든 분쟁이 재발할 수 있는 상황이다. ‘남매의 난’·‘형제의 난’ 등 골육상쟁을 벌인 끝에 남보다 못한 사이로 갈라선 사례도 있다. ‘피보다 진한’ 경영권의 민낯이다.

◆피보다 진한 경영권
재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64개 대기업 집단 중 총수가 있는 55곳의 지난 5년간 핵심 계열사 지분가치 변화를 조사한 결과 5년 전에는 기업집단 동일인(총수)이 창업자나 1~2세대 위주로 이뤄져 평균이 1.7세대였으나 현재는 3~4세가 경영 전면에 등장해 평균이 2.0세대로 전환됐다.

하지만 세대교체 과정이 매끄러운 것만은 아니다. 회사의 경영권을 둘러싸고 자녀세대 간 갈등을 빚는 기업도 있어서다. 최근 ‘남매의 난’으로 내홍에 휩싸인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이 대표적이다. 아버지인 조양래 회장이 지난 6월 그룹 지분 23.59% 전량을 차남 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사장에게 매각하자 장녀인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과 장남 조현식 그룹 부회장이 반기를 들고 나선 것.


불을 당긴 것은 조희경 이사장이다. 조 이사장은 부친이 차남(조현범 사장)에게 지분 전량을 매각한 것에 대해 “건강한 정신 상태에서 자발적 의사에 의해 내린 것인지 객관적 판단이 필요하다”며 성년후견 개시 심판을 청구했다. 성년후견제도는 질병·장애·노령 등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처리 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된 성인에게 후견인을 지정해 주는 제도다.

이에 대해 조양래 회장은 “차남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는 것은 오래 전부터 해온 생각”이라며 건강에 문제가 없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최근 장남인 조현식 부회장이 “성년후견심판 절차에 가족의 일원으로서 참여할 예정”이라며 조희경 이사장에 힘을 실어주면서 ‘장남·장녀-부친·차남’의 분쟁구도가 형성됐다.

조현범 사장은 기존에 보유하던 지분 19.31%에 부친의 지분을 더해 총 42.9%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조현식 부회장과 조희경 이사장의 그룹 지분율은 각각 9.32%와 0.83%로 한참 뒤처진다. 차녀인 조희원씨(10.82%)가 힘을 보태더라도 조현범 사장의 지분에는 못 미친다.


이 때문에 조현식 부회장과 조희경 이사장 측이 국민연금(7.74%) 등 주요 주주들과 힘을 합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다만 조현식 부회장과 조희경 이사장이 최종적으로 한편인지 여부가 확인되지 않아 경영권 분쟁이 다른 양상으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재계 안팎의 분석이다.

조현식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부회장(왼쪽), 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사장. / 사진=뉴스1 DB
조현식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부회장(왼쪽), 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사장. / 사진=뉴스1 DB
한진그룹의 경영권 분쟁도 현재진행형이다. 2019년 4월 조양호 회장의 별세 후 장남인 조원태 회장을 중심으로 후계구도가 정립됐지만 장녀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KCGI(강성부펀드)·반도건설 등과 3자연합을 결성해 조원태 회장 체제를 반대하며 불협화음이 지속되는 것.
조원태 회장 측은 모친인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과 동생 조현민 한진칼 전무의 지지 및 백기사인 델타항공 측의 우호지분 등을 바탕으로 조현아 전 부사장 측 3자연합과 올해 주주총회에서 표대결을 펼친 끝에 경영권을 방어했다.

하지만 최근 3자연합 측이 한진칼 지분율을 46.71%로 확대하며 조 회장 측(41.38%)보다 5%가량 우위를 점한 상황이어서 내년 정기 주총에선 경영권 방어를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최근 조원태 회장이 잇따라 한진칼 주식을 담보로 400억원을 대출받은 것도 내년 주총 대결을 염두에 두고 우호지분을 확보하기 위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회사 가치’ 최우선 고려해야

롯데그룹 역시 수년째 고(故) 신격호 창업주의 장남인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과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형제의 난’으로 내홍을 앓고 있다. 신동주 회장이 신동빈 회장의 유죄 전력 등을 이유로 줄기차게 해임을 요구하고 있어서다.

그동안 다툼에서 신동빈 회장 측이 수차례 승기를 잡으며 경영권 방어에 성공했다. 하지만 최근 신동주 회장이 또다시 자신이 대표를 맡은 회사이자 롯데홀딩스의 최대주주인 광윤사를 통해 신동빈 회장의 롯데홀딩스 이사직 해임을 요구하는 소송을 도쿄지방재판소에 제기하며 분쟁이 재점화됐다.

기존에도 재벌가의 경영권 분쟁은 꾸준히 있었다. 범현대가는 2001년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타계할 무렵 불거진 경영권 분쟁으로 10년 넘는 다툼을 벌였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사이의 ‘왕자의 난’으로 현대차그룹·현대중공업그룹·현대그룹 등으로 기업이 쪼개졌다. 정몽헌 회장의 아내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정상영 KCC 명예회장과 ‘시숙의 난’을 비롯해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과 ‘시동생의 난’ 등을 벌였다.

두산그룹에서도 2005년 박용오 전 명예회장이 동생인 박용성 회장·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과 ‘형제의 난’을 빚은 끝에 박용오 전 회장의 퇴출로 다툼이 마무리된 바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창업주인 박인천 전 회장의 삼남인 박삼구 회장과 사남인 박찬구 회장의 갈등으로 2010년 금호아시아나그룹과 금호석유화학으로 갈라진 상황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영권 승계는 ‘회사의 가치를 가장 높일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단순히 재산을 상속하는 것 외에 경영과 발전의 관점에서 회사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경영진과 이사진을 구성하도록 프로세스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한듬 기자 [email protected]


재계가 세계 최고수준의 상속세로 인해 고민이 크다. 사진은 주요 대기업이 밀집한 서울 종로 일대 전경. / 사진=뉴스1 구윤성 기자
재계가 세계 최고수준의 상속세로 인해 고민이 크다. 사진은 주요 대기업이 밀집한 서울 종로 일대 전경. / 사진=뉴스1 구윤성 기자

‘왕관’의 대가… 구광모 8000억, 삼성은?


재계가 상속세 고민이 빠졌다. 안정적인 세대교체를 위해선 선대가 보유한 지분을 상속받아 경영권을 공고히 해야 하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율로 인해 천문학적인 조세부담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현행 세법에 따르면 주식을 상속받을 경우 피상속인의 상속개시일(사망일)을 기준으로 직전 2개월과 이후 2개월 등 총 4개월 동안 주식 종가의 평균을 기준으로 상속세가 산정된다. 이때 상속세율은 5단계 누진세율 구조로 ▲1억원 이하 10% ▲5억원 이하 20% ▲10억원 이하 30% ▲30억원 이하 40% ▲30억원 초과 50%가 부과된다.

여기에 최대주주와 그의 특수관계인에 해당하는 주주는 주식을 상속받을 때 세금이 20% 할증된다. 사실상 상속세율이 최대 60%에 달하는 것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최고세율인 25.3%의 2.4배다.

◆LG 1조원, 롯데 4500억원

이 때문에 국내 기업은 상속과정에서 막대한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2018년 5월 타계한 부친 고(故) 구본무 회장이 보유했던 LG 지분 11.3% 가운데 8.8%와 지난해 12월 별세한 조부 고(故) 구자경 명예회장의 보유 지분 0.96% 전량을 각각 상속받았다.

구본무 회장의 지분에 대한 상속세는 9215억원이며 이 가운데 구광모 회장이 부담해야 하는 금액은 7215억원이다. 구자경 명예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지분에 대한 상속세는 600억원 안팎이다. 구광모 회장은 연부연납제도를 활용해 5년 동안 6회에 걸쳐 상속세를 나눠낸다. 매년 1300억원 가량을 납부해야 하는 셈이다. 구광모 회장은 이미 일부를 납부해 현재 남은 상속세는 5400억원 가량인 것으로 추산된다.

롯데그룹은 지난 1월 별세한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가 가진 그룹 내 지분을 신동빈 롯데 회장·신동주 광윤사 회장·신영자 전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신유미 전 호텔롯데 고문 등 4명이 나눠 갖기로 지난 7월 합의했다.

신격호 창업주가 보유했던 국내 주식은 ▲롯데지주 보통주 3.1%와 우선주 14.2% ▲롯데제과 4.48% ▲롯데쇼핑 0.93% ▲롯데칠성음료 보통주 1.30%와 비상장사인 롯데물산 지분 6.87%가 있다. 일본 주식은 ▲롯데홀딩스 0.45% ▲광윤사 0.83% ▲LSI 1.71% ▲롯데그린서비스 9.26% ▲크리스피크림도넛재팬 20% 등이다.

신동빈 회장은 롯데지주 지분 중 보통주 1.3%와 우선주 5.9%, 신동주 회장은 보통주 0.7%와 우선주 3.5%, 신영자 전 이사장은 보통주 1.1%와 우선주 4.7%를 각각 상속받았다. 롯데쇼핑 지분은 신동빈 회장과 신영자 전 이사장이 각각 0.4%씩, 신동주 회장이 0.2%를 나눠가졌다.

롯데제과 지분의 경우 신동빈 회장이 1.87%, 신동주 회장과 신영자 전 이사장이 각각 1.12%와 1.49%를 가져갔다. 롯데칠성음료는 신동빈·신동주·신영자 남매가 각각 0.54%·0.33%·0.49%씩 받았다. 신유미 전 고문은 한국지분은 상속받지 않는 대신 일본 지분을 상속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납부해야 할 상속세는 4500억원 가량으로 추산된다. 한국 재산에 대한 상속세 부분은 3200억원으로 신동빈·신동주·신영자 등 세 사람이 부담한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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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그룹의 경우 고(故) 조양호 전 회장이 남긴 한진칼 지분 17.84%를 아내인 이명희 고문이 5.94% 갖고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및 차녀 조현민 한진칼 전무 등이 각각 3.96%씩 물려받았다. 이들이 납부해야 할 상속세는 총 2700억원으로 이명희 고문이 900억원이며 세 남매가 각각 600억원 가량을 내야 한다. 이들은 5년 동안 6차례에 나눠 내기로 하고 1차분인 460억원 가량을 납부했다.
◆상속세 재원 마련에 한숨… 삼성 9조원 추산

다만 잔여분에 대한 재원마련이 고민이다. 항공업 위기로 실적이 급감해 조원태 회장 등이 받는 임금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당초 업계에선 대한항공 송현동 부지 등 유휴자산을 매각해 대금을 마련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서울시가 문화공원을 조성하겠다며 이를 막고 있어 상황이 여의치 않다. 조 회장이 최근 한진칼 지분을 담보로 400억원을 빌린 것도 재원조달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상속세를 납부하기 위한 고육지책이 아니냐는 해석이다.

세대교체는 이뤘지만 아직 지분승계가 미완인 그룹도 상속세에 대한 부담이 크다. 삼성의 경우 이건희 회장이 보유한 ▲삼성전자 4.2% ▲삼성생명 20.8% ▲삼성물산 2.9% ▲삼성SDS 0.01% 등의 지분가치가 16조9000억원에 달해 이를 상속하려면 9조원이 넘는 세금을 납부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정몽구 회장이 보유한 ▲현대차 5.33% ▲현대글로비스 6.71% ▲현대모비스 7.13% ▲현대제철 11.81% 등의 가치가 4조1000억원으로 상속세 규모가 2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관련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올 초 보도에서 한국 상위 25개 그룹의 상속세가 210억달러(약 24조3000억원)로 추정된다며 “한국 재벌가는 한국전쟁 이후 폐허가 된 나라를 세계 최대 강국으로 성장시키며 부와 권력을 구축했으나 현재는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로 위기를 겪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축적된 경영 노하우와 전통을 계승하고 기업의 영속성 유지를 지원하기 위해 해외보다 불리한 상속세 세율을 인하할 필요가 있다”며 “기존 상속세 명목 최고세율 50%를 25%로 낮춰야 한다”고 밝혔다.

가업상속공제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 제도는 매출액 3000억원 이하의 기업을 10년 이상 경영한 경우 최대 500억원까지 상속에 따른 세금을 공제해 주는 것인데 이를 대기업으로 확대 적용하고 공제 범위를 늘려야 한다는 것.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가업상속공제의 취지는 원활한 승계로 기업의 투자를 이끄는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키려는 것”이라며 “이를 매출액 3000억원 이하의 기업에만 적용하기보다 대기업까지 범위를 넓히는 대신 이로 인한 이익만큼 투자나 일자리 창출 등에 기여할 수 있도록 사후관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한듬 기자 [email protected]



한미약품 상속세 납부방안에 재계의 관심이 집중된다. / 사진=뉴스1 유승관 기자
한미약품 상속세 납부방안에 재계의 관심이 집중된다. / 사진=뉴스1 유승관 기자

주가 흐름에 상속세 요동… 정답은 증여


기업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상속세가 재계의 부담을 키우는 요소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상속세 산정 기준 기간 동안 갑자기 주가가 폭등할 경우 물려받아야 할 선대의 지분 가치도 늘어나 납부해야 할 상속세 역시 증가하게 된다. 이 때문에 미리 증여해 절세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주가가 낮은 시기에 지분을 넘길 경우 세금부담을 줄일 수 있어서다.
◆주가 상승, 상속엔 부담

최근 재계의 눈은 한미약품으로 향한다. 창업주인 임성기 회장이 지난달 2일 타계하면서 상속세 이슈가 불거진 가운데 최근 회사의 주가가 오름세를 보임에 따라 상속인의 세부담이 커질 것으로 예상돼서다.

임 전 회장은 생전 한미약품의 지주사 격인 한미사이언스 지분 34.27%(2262만4496주)를 보유했다. 아내인 송영숙 회장은 1.26%, 장남인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대표 3.65%, 장녀 임주현 한미약품 부사장 3.55%, 차남 임종훈 한미헬스케어 대표가 3.14%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유족 간 협의된 유언장이 없을 경우 배우자와 자녀에게 적용되는 법적 상속률 1.5대1을 따라 송영숙 신임회장은 임 전 회장의 지분 11.42%를, 세 자녀는 7.62%씩을 각각 물려받게 된다. 상속세는 상속개시일(사망일) 전 2개월과 그 이후 2개월 총 4개월 동안 평균 가격을 기준으로 산정된다. 한미약품 오너 일가의 경우 임 전 회장이 별세한 8월2일 기준으로 직전 2개월과 이후 2개월의 평균가격을 고려해야 한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의 별세 직후 곧바로 한미약품에 1조원대 기술 수출이란 호재가 나오며 주가가 크게 올랐다는 점이다. 한미약품은 지난달 4일 미국계 다국적제약사 ‘머크’(MSD)에 비알코올성지방간염 치료 신약후보물질 기술을 8700만달러(약 1조387억원)에 수출한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면서 한미사이언스의 주가는 8월4일 5만4600원에서 하루만에 7만900원으로 1만5000원 이상 뛰었다. 임 전 회장 별세 직전 2개월인 6월2일~7월31일 3만원 중반대를 유지하던 평균주가 역시 기술수출 발표 이후 현재까지 5만원대 후반~6만원대 초반 수준으로 올랐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 30억원 이상을 상속할 경우 과세표준은 50%가 적용되며 최대주주 및 그의 특수관계인에 해당하는 주주는 세율의 20%가 할증돼 총 60%의 상속세율이 적용된다. 단순계산할 경우 임 전 회장의 사망 직전 마지막 장인 7월31일 종가 기준(4만2200원) 5729억원이었던 상속세가 9월7일 종가 기준(5만8600원)으론 7954억원으로 2200억원 이상 늘어난다. 따라서 앞으로 유족이 상속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가 중요한 과제가 됐다. 한미약품 측은 “상속세는 유족과 관련된 일이어서 회사에서 답변해줄 만한 내용이 없다”고 밝혔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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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하락 틈타 ‘증여 러시’

주가 흐름이 지분 상속에도 영향을 미침에 따라 주요 대기업 최대주주 일가는 주가가 하락하는 조정기에 주식을 미리 증여해 승계를 준비하는 방법을 택한다. 주가가 낮을 때를 이용해서 지분을 확대하고 증여세를 절감하기 위한 목적이다. 주가가 바닥권을 찍고 다시 회복세로 돌아서면 보유가치 상승 효과도 누릴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CJ그룹이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지난해 12월9일 CJ㈜ 신형우선주 184만여주를 장녀 이경후 CJ ENM 상무와 장남 이선호 CJ제일제당 부장에 각각 92만주씩 증여했다가 3월30일 취소한 뒤 다시 4월1일 재증여했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르면 증여세 과세표준 신고기한은 증여가 발생한 월의 마지막 날로부터 3개월로 이 기간 당사자 사이에 합의에 따라 증여를 취소할 수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주가가 폭락하자 세금을 아끼기 위해 재증여 방식을 택한 것이다. 실제로 최초 증여 시점인 지난해 12월9일 기준 증여세는 전후 2개월간 평균 주가에 최대 주주 지분 증여에 따른 20% 할증을 포함해 총 700억원이 넘는다.

반면 재증여시점의 해당 주식은 종가 기준으론 500억~550억원 수준으로 당초 책정된 증여세에 비해 150억~200억원을 절감할 수 있다. 당시 CJ그룹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로 주가가 급락하면서 부득이한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올해 코로나19 영향으로 주가가 폭락한 기간 지분 증여를 택한 사례는 더 있다. SPC그룹의 경우 허영인 회장이 4월8일에 장남 허진수 부사장에게 SPC삼립 보통주 40만주를 증여했다. 당시 SPC삼립의 주가(6만6300원)가 지난해 말(8만7200원) 대비 24%가량 떨어지자 절세효과를 노리고 주식을 증여한 것이다.

김석수 동서식품 회장도 3월12일에 아들인 김동욱·김현준 씨에게 동서 주식 15만주·10만주를 각각 증여했다. 구자열 LS회장을 비롯한 총수 일가 역시 지난 5월 자녀 및 친인척에게 총 95만9000주 증여했다. 동서식품이나 LS의 증여 시기 역시 주가가 떨어졌던 시점이다.

이상혁 하나은행 자산관리사업지원부 세무전문위원은 “증여는 생전에 미리 주식을 넘기는 것이어서 주가의 흐름에 따라 적절한 시기를 조절할 수 있지만 상속은 갑작스럽게 이뤄진다는 점에서 시점을 선택할 수 없다”며 “세법에서 증여일로부터 3개월 이내라면 증여취소가 가능하다고 규정했기 때문에 주가 흐름에 따라 증여시기를 미리 택해 합법적으로 절세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한듬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