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정수영 기자,정윤경 기자 = '철인왕후'는 막을 내렸지만 그는 아직 최상궁을 떠나보내지 못했다. 18일 만난 배우 차청화(41)는 "최상궁은 지금도 또 앞으로도 (가슴 정중앙을 가리키며) 여기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천방지축 중전을 보필하느라 속앓이하면서도, 위기 때마다 중전의 충직한 '오른팔'로 그 곁을 지킨 최상궁.

그가 대나무 숲에서 중전을 향해 "아니아니 아니 되옵니다"라고 애타게 내지르는 장면은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이 장면은 청화씨 개인적으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촬영이라고 했다. 대령숙수 만복과 수줍게 마음을 주고받는 장면들도 웃음 포인트 역할을 톡톡히 했다.

지난해 '사랑의 불시착'에서 양옥금 역을 찰떡같이 소화해 인지도를 올렸다면, 이번엔 최상궁 연기로 대중에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다. 2005년 데뷔, 올해 불혹(不惑)을 갓 넘긴 이 배우가 연타석 '신스틸러'로 활약하기까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궁금했다.


차청화는 '철인왕후'에서 혼자 나왔던 신(scene) 중에서 대나무 숲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 뉴스1
차청화는 '철인왕후'에서 혼자 나왔던 신(scene) 중에서 대나무 숲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 뉴스1


◇배우 인생의 시작: 학창 시절, TV를 켜면 차청화 눈엔 멋진 오빠들이 가득했다.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이승환 등 손에 다 꼽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수 박진영에게 홀딱 반했다. '나도 진영 오빠처럼 만능엔터테이너가 돼야겠다.'
회계학과에 붙었지만 부모님 몰래 연극학과에 원서를 썼다. 아버지는 노발대발했다. 열아홉 차청화는 "인생은 즐거워야 하고, 하고 싶은 일 하며 살아야 한다"고 부모님을 설득시켰다. 결국 딸이 이겼다.

대학졸업과 동시에 뮤지컬 오디션에 덜컥 붙었다. 데뷔작은 '뒷골목 스토리'였다. "연기가 너무 재밌었는데, 뮤지컬 창법을 제대로 습득 못 하고 무대에 섰기에 목이 금방 쉬어 버렸죠." 선배와 듀엣곡을 불러야 하는데 목소리가 안 나왔다. 객석은 술렁거렸고 그의 얼굴은 시뻘게졌다.

◇배우가 내 길일까?: 갈수록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배우라는 직업을 평생 하는 게 맞는 걸까?' 확인해보고 싶었다. 20대 중후반을 홍보회사 등 여러 분야에서 인턴 생활을 하며 보냈다. 그리고 비로소 답을 얻었다.

"가만히 앉아서 일하려니 몸이 근질근질했어요. 대본 속 활자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몸으로 표현하고 싶어 미치겠는 거예요. 연기를 해야겠더라고요."

서른 살부터는 다른 길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공연·연습·오디션. 이 세 과정이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발성, 춤 동작 등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갔다. 필모그래피는 차곡차곡 쌓였다.

"한 작품 한 작품 만날 때마다 연기가 늘고 있다고 생각해요. 연기는 제 삶이자 제가 가장 사랑하는 일이에요." 왼쪽은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오른쪽은 '호텔 델루나'에서 차청화 모습. © 뉴스1


연극, 드라마, 영화까지 출연영역이 확대됐지만, 그 이름이 알려지기까지 10년은 족히 걸렸다. 조바심이 나진 않았을까.
"빨리 유명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죠. 그러면 제가 하고 싶은 배역을 선택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하루하루가 쌓여 '오늘'에 이르는 거잖아요. 최상궁도 그동안 제 안에 많은 작품들이 쌓여서 탄생했다고 생각해요. 세월이 지나야 습득되는 것이 있듯 연기도 그런 것 같아요."

◇마흔한 살의 꿈: 청화씨는 10년 넘게 연기와 연애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 시간 동안 권태기를 느낄 새도 없었단다. 물론 위기는 있었다. 어떤 작품에 비중 있는 역할로 캐스팅돼 한창 촬영하던 중 '하차 통보'를 받은 것. 카메라 위치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는 게 이유였다.

"그땐 분노가 일었죠. 너무 속상해서 서점으로 달려가 '카메라 연기 비법' '카메라 연기 기술' 같은 책을 잔뜩 사왔어요. 집에서 울면서 혼자 연습도 했고요. 지금 돌이켜보면, 저를 하차시킨 결정이 최선이었을 거라는 생각을 해요." 그때의 쓰라린 사건을 배우로서 더 단단하게 준비하는 기회로 삼았다고 청화씨는 털어놨다.

배우로 산 지 약 15년. 이 업(業)에 대한 애정은 여전히 뜨겁다. "저는 시청자분들에게 상상도 못 할 놀라움을 드리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어머, 저 역할을? 차청화가 하니까 되네'라는 이야기도 듣고 싶고요. 앞으로 광기 어린 연기, 앞머리 자르고 어린 학생 역할도 해봐야죠! '차청화는 다음에 무슨 작품을 할까?' 궁금증을 일으킨다면 배우로서 성공한 게 아닐까요?"

그렇다면 차청화는 이미 성공한 셈이다. 최상궁을 근사하게 소화해낸 그가, 앞으로 어떤 드라마에서 무슨 역할을 맡을지 벌써 궁금해지니 말이다.

"사랑하는 일을 하면서 먹고살 수 있는 사람이 이 지구상에 얼마나 될까요?" 스물다섯에 데뷔해 올해 마흔하나. 청화씨에게서 배우로서 자부심과 충만한 기쁨이 느껴졌다. © 뉴스1 정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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