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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일러스트레이터 임종철 |
5년 전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한 장면이다. 외환위기 이후 ‘명예퇴직’은 은행권에 금기어로 여겨졌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희망퇴직’이란 이름으로 다시 구조조정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은 전체 점포의 5%에 달하는 237곳을 통폐합하며 많은 점포를 없앴다. 점포 방문자 수가 급감하자 은행권은 연초 희망퇴직제도를 정례화하고 있다. 수많은 퇴직자가 은행을 나서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지만 고액의 희망퇴직금을 받는 모습은 30년 전과 비슷하다.
2500명 희망퇴직 신청… 평균 8억원 받아
은행권에 따르면 연초 5대 은행에서 2495명의 은행원이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지난해 1737명보다 748명 늘어난 규모다. 특별퇴직 보상과 신청 대상을 대폭 늘리면서 신청자가 증가한 것으로 풀이된다.하나은행과 NH농협은행은 지난해 12월 말 각각 511명, 496명의 은행원이 짐을 쌌다. 우리은행은 올 1월 말 468명이 희망퇴직을 했고 신한은행은 220여명이 퇴직했다. KB국민은행은 지난 1월 총 800명의 직원이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지난해 임금피크제 희망퇴직(462명) 규모의 1.7배 수준이다. 2019년(613명)과 2018년(407명)과 비교해도 크게 늘어난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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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농협은행은 만 56세는 28개월치, 만 54·55세는 각각 37개월, 35개월치를 지급하고 3급 이상 직원 중 1967~1970년생은 39개월치, 1971~1980년생은 20개월치 임금을 특별퇴직금으로 줬다. 여기에 전직 지원금도 추가 지급됐다. 만 56세 직원에게 월평균 임금 28개월치, 10년 이상 근무하고 만 40세 이상인 직원에게 20개월치를 일괄 지급했던 것보다 보상이 크게 늘었다.
우리은행의 희망퇴직금 조건은 작년과 같은 수준이었으나 일반 직원까지 신청 대상을 확대하면서 희망퇴직하는 인원이 늘었다.
신한은행의 희망퇴직 신청 대상은 근속연수 15년 이상 1962년 이후 출생자로 출생 연도에 따라 최대 36개월치 임금과 ▲자녀 학자금 ▲건강검진비 ▲창업지원금을 지원하기로 하는 등 지난해와 같은 수준의 조건이다.
국민은행은 희망퇴직자에게 23~25개월치 급여와 함께 학자금(학기당 350만원·최대 8학기) 또는 재취업지원금(최대 3400만원)을 지급했다. 또 ▲건강검진 지원(본인과 배우자) ▲퇴직 1년 이후 재고용(계약직) 기회 부여 등의 혜택도 제공했다.
은행 관계자는 “시중은행 모두 특별퇴직을 정례화하고 매년 12월에서 이듬해 1월에 직원을 내보내고 있다”며 “비대면 금융 확대로 은행에 필요한 인원은 줄어들면서 해마다 더 좋은 퇴직 조건을 걸거나 대상 연령을 넓히는 방법으로 특별퇴직을 진행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매년 은행은 연간 보수가 5억원 이상인 임직원의 명단을 공개한다. 2019년 KB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의 평균 퇴직금액은 8억원으로 일부 직원의 특별퇴직금을 포함한 전체 퇴직금은 10억원을 넘어섰다.
시중은행의 사업보고서를 종합하면 2019년 4대 은행에서 5억원 이상 보수를 받은 직원은 모두 17명이다. 은행별로 하나은행은 5명이 평균 11억8000만원을 받았고 이어 ▲국민은행 8억6600만원 ▲신한은행 8억5400만원 ▲우리은행 7억9800만원 순이다.
이들이 수령한 퇴직급여의 비중도 상당히 높다. 평균 퇴직급여만 따지면 ▲하나은행 9억5600만원 ▲국민은행 8억800만원 ▲우리은행 7억6400만원 ▲신한은행 7억5400만원 등이다.
희망퇴직자 다시 일자리…600명 재채용
희망퇴직을 신청한 은행원이 전부 은행을 떠나는 것은 아니다. 비정규직 파트타임 근무로 다시 은행에 둥지를 트는 재취업자도 있다. 은행이 희망퇴직자에게 또다시 높은 비용을 투입하는 셈이다. 비대면 금융시대에 인사 적체를 줄이고 퇴직자 재취업을 지원하는 취지로 풀이된다.지난해 은행권은 코로나19 사태에 퇴직자 채용이 전무했으나 올해 퇴직자를 재고용해 금융 전문성을 갖춘 인재의 제2 인생에 활기를 불어넣겠다는 방침이다.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은행은 2019년 하반기 수시채용으로 퇴직자 약 600명을 재고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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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은행도 기업금융전담역(RM) 출신 퇴직자를 대상으로 한 심사역이나 전담감사역으로 퇴직자를 채용하고 있다. 앞으로 각 지역본부에 배치한 금융소비자보호 오피서(officer·담당자)와 금융교육 강사 등에도 퇴직자를 채용할 예정이다.
다만 퇴직자의 재채용을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은행권이 경기불황에 신입 채용을 줄이는 한편 기존에 나간 인력을 대거 다시 뽑으면서 인사 적체 문제가 다시 떠오르고 있어서다.
김우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인력 구조의 효율화를 위해 항아리형 구조를 개선하되 인적 자원관리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며 “단순히 인력 감축으로 비용을 통제하는 게 아니라 비대면 금융시대에 어떤 인재를 확보하느냐가 더 중요한 경영 과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