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승계 원칙을 깨고 경영 일선에서 뛰는 여성 오너 경영인들이 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이미지투데이
장자승계 원칙을 깨고 경영 일선에서 뛰는 여성 오너 경영인들이 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이미지투데이

▶기사 게재 순서
①재벌집 몇째 아들?… 대기업 승계의 원칙
②피보다 진한 재벌가 경영권 분쟁 잔혹사
③경영능력 입증한 재벌家 여인들… 호텔신라 이부진·금호석유 박주형


장자승계 원칙을 깨고 경영 일선에서 활약하는 여성 오너 경영인들이 늘고 있다. 과거 그룹 승계 과정에서 여성 경영진 대부분이 배제된 것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능력을 인정받은 이들은 사업 영역을 넓혀 그룹에서 한 축을 담당하며 자신만의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5연임'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새로운 50년 준비한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사진=뉴스1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사진=뉴스1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53)은 현직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 중인 여성 경영인이다. 그는 2010년 호텔신라 사장직을 맡았고 이듬해인 2011년부터 대표이사 및 이사회 의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지난 16일 호텔신라 주주총회에선 사내이사 선임 안건 가결로 5연임에 성공, 앞으로 3년간 사내이사직을 이어간다.


이부진 사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급감한 실적 복구에 주력하고 있다. 호텔신라 매출액은 2020년 3조1881억원에서 2021년 3조7791억원, 2022년 4조9220억원 등으로 증가했다. 이 기간 영업이익은 2020년 853억원 적자에서 이듬해 1188억원 흑자전환했으나 2022년 783억원으로 줄었다.

이 사장은 올해 호텔신라의 핵심 추진 전략으로 ▲고객 중심의 사업 모델 재구축 ▲수익 수조 개선을 통한 확고한 지속가능경영 체제 마련 ▲새로운 50년의 성장 동력이 될 신사업 발굴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등을 제시했다. 호텔신라 창립 50주년을 맞아 새로운 50년을 이끌어갈 성장동력 발굴에도 주력하고 있다.

이 사장은 호텔신라 제50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지난해 사업 경쟁력 강화의 운영 효율 제고 노력에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어려운 경영 환경이 지속되고 경쟁은 더욱 심화됐다"며 "프리미엄 라이프스타일을 다양한 방식으로 고객에게 제공할 참신한 기회를 각 사업 영역에서 포착해 새로운 수익력의 원천으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왼쪽), 박주형 금호석유화학 부사장 프로필. /그래픽=김은옥 기자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왼쪽), 박주형 금호석유화학 부사장 프로필. /그래픽=김은옥 기자

범 금호가(家) 첫 여성 임원, 박주형 금호석유화학 부사장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장녀 박주형 부사장(43)은 금호그룹에서 '금녀(禁女)의 벽'을 깬 인물로 유명하다. 금호그룹은 전통적으로 여성의 경영 참여를 금기시해왔고 형제공동경영합의서에도 이를 적시하고 있었다. 지분 소유와 상속 역시 금지했다.


박주형 부사장의 경영 참여 계기는 박찬구 회장이 2012년 증여한 현금으로 금호석유화학의 지분을 취득한 것이 시작이었다. 당시 박찬구 회장은 '딸도 능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박주형 부사장에게 지분을 확보하도록 했고 경영 일선에도 투입했다.

박주형 부사장은 대우인터내셔널(현 포스코인터내셔널)에서 경험을 쌓은 뒤 2015년 금호석유화학에 합류했다. 입사 이후 줄곧 구매·자금담당 분야 임원으로 활동하며 전문성을 키워왔다. 2016년부터는 금호피앤비화학 자금담당 임원으로 능력을 입증했다. 2016년 말 87%였던 금호피앤비화학의 부채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41.3%로 줄었고 같은 기간 차입금의존도는 32.8%에서 6.3%로 크게 낮췄다.

2022년 말 승진 인사 이후 박주형 부사장은 관리본부와 기획본부를 총괄 관리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오빠인 박준경 사장과의 '남매 경영' 시너지가 예상된다. 박주형 부사장 입사 당시 보유 지분은 0.54%에 불과했지만 최근 1.01%까지 확대하며 회사 내 입지를 다지고 있다. 그룹 안팎에선 박주형 부사장이 범 금호그룹 사상 첫 여성 최고경영자(CEO)에 오를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세련된 감각으로 젊은 피 수혈, CJ ENM 이경후·아모레퍼시픽 서민정

이경후 CJ ENM 브랜드전략실장(왼쪽), 서민정 아모레퍼시픽 디비전 AP팀 담당 프로필. /그래픽=김은옥 기자
이경후 CJ ENM 브랜드전략실장(왼쪽), 서민정 아모레퍼시픽 디비전 AP팀 담당 프로필. /그래픽=김은옥 기자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녀인 이경후 CJ ENM 경영리더(38)는 '장자승계 원칙'을 고수해온 그룹 내에서 활발한 경영 활동으로 주목받고 있다. 동생인 이선호 CJ제일제당 경영리더보다 빠르게 승진했으며 현재 CJ ENM 브랜드전략실장으로 콘텐츠 사업 전반을 담당하고 있다.

2011년 CJ 입사한 이경후 경영리더는 CJ오쇼핑과 CJ미주본사 등을 거치면서 실무를 익혔다. 특히 CJ 미주본사 근무 시절 한류 콘서트 케이콘과 비비고 등을 성공시켜 CJ의 북미사업 확대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된다. 2018년 CJ ENM으로 옮긴 후엔 문화사업 전반에서 활약하면서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이 이끄는 문화사업을 넘겨받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서경배 회장의 장녀 서민정 아모레퍼시픽 럭셔리브랜드 디비전 AP팀 담당(32)은 유력한 승계 후보다. 서경배 회장과 마찬가지로 미국 코넬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으며 2017년 아모레퍼시픽에 입사해 오산공장에서 화장품 생산관리 업무를 맡았다. 이후 중국 유학을 떠난 뒤 2019년 아모레퍼시픽 뷰티유닛 영업전략팀 프로페셔널(과장급)로 복귀했다.

서민정 담당은 아모레퍼시픽의 포트폴리오를 강화하며 세대교체를 이끌고 있다. 특히 아모레퍼시픽이 중국 사업에서 고전하고 있는 만큼 다양한 방면에서 실적을 확대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서민정 담당이 가시적인 성과를 낸다면 아모레퍼시픽의 3세 승계 작업도 빨라질 전망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시대가 바뀌면서 아들이란 이유로 경영권을 상속받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며 "경영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 경영권을 받는 게 회사 입장에서도 득이 되는 선택"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