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공필의 핀아크] 디지털 달러 패권과 우리의 생존 전략
■진화중인 디지털 달러 생태계초기 암호화폐가 지향했던 탈중앙화와 금융 포용에 대한 이상은 현실의 벽 앞에서 위축되고 있다. 현재 글로벌 금융 시장은 넓은 의미의 달러 체제 지배력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다. 글로벌 스테이블코인의 거의 대부분이 미 달러(USD)에 페깅되어 있으며, 2025년 기준 온체인 결제액이 연간 4조달러를 상회하는 등 디지털 금융의 혈맥은 달러 중심으로 통합되고 있다. 더욱이 미국 정부의 비트코인 전략 자산화는 단순한 투자를 넘어, 기존 금융 시스템이 닿지 않는 영역까지 달러 패권을 확장하려는 '미래 신뢰 기반의 선점' 전략으로 볼 수 있다.■거대 자본에 의한 '디지털 레일' 독점과 양극화 새로운 형태의 금융 패권을 배경으로 혁신의 주도권마저 거대 금융기관과 빅테크 기업으로 넘어가고 있다. 이들은 막대한 자본력과 규제 대응 능력을 앞세워 블록체인 인프라를 흡수하고, 효율성의 과실을 독점하기 시작했다. 우선 기관 주도의 시장 장악이 가시화되고 있다. JP Morgan의 'Onyx'는 누적 거래액 1.5조 달러를 돌파했고, BlackRock의 토큰화 펀드 'BUIDL'은 단기간에 20억달러를 모으며 국채 기반의 자체 생태계를 구축했다. 한편 누구나 참여가능한 퍼블릭 체인조차 비용 절감을 위해 검증된 레거시 시스템에 의존하는 '절충적 혁신'으로 변모되면서, 기존 금융의 수직적 상하 구조가 디지털 영역에서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미 역량면에서 준비된 레거시 기관을 중심으로 토큰화를 활용한 비용절감과 수익추구가 본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실물자산(RWA) 토큰화 시장이 2030년 16조달러(BCG 전망)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핵심적인 리포(Repo) 시장 등 고수익 영역은 거대 플레이어들의 무위험 수익 창출 수단으로 변모하면서 중앙화 및 독점화 우려마저 낳고 있다. ■우리의 선택: 상황에 부합하는 혁신공간의 확보갈수록 달러 기반의 소수 엘리트만이 혜택을 독점하는 환경이 뚜렷해지면서, 비기축통화국의 자구책은 이제 생존을 위한 선택이다. 민간들이 거대시장의 흐름을 파악하고 제대로 접목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어내려면 자체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면서도 우리 여건에 부합하는 지배구조와 국경간 컨소시엄을 포함한 각종 혁신프로젝트 참여, 공공 인프라 확충에 적극 나서야 한다. 빅테크를 제외하면 범국가차원의 준비와 지원없이 민간주도 혁신과 디지털 역량을 강화시키는 일은 엄청난 도전이다. 다수의 참여를 가능케 하려며 신원확인 및 결제플랫폼, 디지털 자산과 데이터를 안전하게 관리하는 제반 디지털 공공재의 공급이 필수적이다. 즉, 하부 구조(L1, L2)는 공공이 안정성을 잡고, 상부 구조(L3, L4)는 민간이 효율성을 주도하는 다층적 거버넌스와 공공재적 연결성을 확보하는 전략이 중요하다.첫째, 신규시장으로의 진입 장벽 제거와 시장 인프라 제공이 필수적이다. 디지털 전환 의지가 있더라도 제반 지원 체제가 없다면 일반 참여희망자들의 개별 차원 시도는 큰 가치로 이어지기 어렵다. 따라서 정부는 새로운 디지털 시장 진입 장벽을 적극 해소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둘째, 영세 기업일수록 규제나 법규 준수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 따라서 토큰 활용에 앞서 가이드라인을 명확히 하고, 온체인 등록 전 단계의 법률·기술 서비스(API, 데이터 오라클 등)를 공공재로서 제공해야 한다. 셋째, 체인상에 올라온 토큰에 대한 검증과 평가 과정에 공공 기구가 참여하여 최대한 객관적 가치 산정을 지원함으로써, 민간들의 초기 자산이 신뢰받는 자금 조달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대형 기관만이 독점하는 실시간 유동성과 결제의 완결성을 다층적 지배구조가 수용하는 기술적 연결을 통해 모두가 향유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더 촘촘한 연결로 다져진 경제기반결론적으로 급속한 환경변화속에서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면서도 우리 여건에 맞는 지배구조와 공공 인프라를 정비하는 것이야말로, AI시대의 디지털 역량을 확보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시급한 투자이다. 단, 다양한 연결로 가치가 만들어지는 세상에서 평평한 운동장(Level Playing Field)의 원칙은 최대한 지켜져야 한다. 거대 기업이 주도하는 디지털 전환은 초기 생태계의 독점적 상황과 더불어 공공성과 형평성의 저하 문제를 야기한다. 누구나 참여 가능한 시장을 만들기 위해 정부는 민간들이 공히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해야 한다. 특히 시스템에 내재된 공공성을 통해 규제가 혁신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법규 준수와 공공성 의무를 시스템 자체에 내포(Embedded Compliance)시키고, 그 안에서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도록 객관적인 평가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정부와 공공기관들은 토큰화 인프라 구축하고 관련 서비스 접근이 수월하도록 배려해야 한다. 또한 새로운 시장에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스마트 계약 및 검증 기능 등 제반 인프라도 미리 준비해서 제공해야 한다. 무엇보다 민간주체들이 불확실성의 장기화로 부담하는 비용을 과감히 줄여주어야 한다. 앞으로도 기축통화국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디지털 달러 패권은 상당 기간 유지될 것이나, 다양한 각도에서 자체 경쟁력을 확보한 국가는 충분히 생존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경쟁력 낙후 부문의 디지털 전환을 지원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의 성장기반을 다변화하는 것이 디지털 달러패권하의 현실적 생존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