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덕수 전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첫날 광주 5·18 민주묘지를 방문한다. 통합을 정치의 출발점으로 삼겠다는 상징적 행보다. 보수진영 내부에서도 그간 '5·18 언급은 실리 없는 정치'라는 인식이 강했던 만큼 이번 한 전 총리의 접근은 미래형 보수 정치를 향한 실험으로 읽힌다.
2일 종로 쪽방촌 방문 이후 이뤄진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한 전 총리는 "광주라는 상징적 공간에서 과거의 응어리를 푸는 것부터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오월 광주는 한국 정치가 반드시 직시해야 할 역사적 상징"이라며 "그 비극이 다시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각오와 책임의 마음을 담겠다"고 강조했다. 가장 아픈 곳에서 정치를 시작하겠다는 그의 정치적 수사를 반영하는 행보다.
한 전 총리는 전북 전주 출신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낸뒤 이명박·윤석열 정부를 거친 인물이다. 보수와 진보 양 진영 모두에서 중용된 보기 드문 관료 출신으로 이념보다 책임, 대결보다 균형을 중시해온 실용주의 행정가다.
이번 행보를 통해 통합과 책임, 보수의 재정의를 정치적 전면 메시지로 끌어올리겠다는 포석이다. 한 전 총리는 "정치를 자기 진영만을 위한 수단으로 쓰는 시대는 끝나야 한다"며 "과거의 고통을 인정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정치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사회가 지금 확증편향과 반지성에 빠져 있다"며 "경청과 협치, 상생의 정치 없이는 민생도 경제도 풀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5·18 묘지 방문은 그런 인식의 연장선상에서 통합과 정치 쇄신의 출발점으로 광주를 재정의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대결과 동원의 프레임을 앞세웠던 과거 보수 캠페인과는 결을 달리하는 접근이다. 보수 진영은 그간 전통적인 지지층 이탈에 대한 우려, 역사 해석을 둘러싼 내부 갈등 등으로 인해 해당 이슈를 정면에서 다루지 못했다.
광주 방문은 정치적 상징성을 넘어서 전략적 위험도 안고 있는 행보다. 국민의힘 및 보수 계열 정당은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 광주 지역구 8곳 전패를 기록했고, 대부분 득표율은 10% 미만에 그쳤다. 제 20대 대선에서도 이재명 후보가 84.8%를 득표한데 반해 윤석열 당시 후보는 광주에서 13.4%를 얻으며 사실상 '전멸'상태라는 것을 보여줬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수 대선 주자가 선거 첫 메시지를 "광주에서, 5·18로부터" 꺼낸 것은 정치적 '실리'보다 '책임'과 '전환'을 선택한 행보로 해석된다.
다만 이 같은 행보가 유권자들에게 실질적인 메시지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진정성'이 핵심 변수다. 유권자들이 이를 일시적 제스처가 아닌 정책 기조 전환의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이후 일정과 언행에서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일정을 미리 공개하지 않은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미리 알리면 또 하나의 의례적 방문으로 오해받을 수 있어 조용히 다녀오려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