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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만 그동안 투표를 잘 안 했었어요. 누굴 뽑든 정치나 경제 상황이 크게 변하는 것 같지도 않고, 투표를 안 하는 것도 유권자인 내 선택이라는 생각에 선거 날은 놀러 가거나 그냥 쉬었었는데, 이번에 12·3 비상계엄 사태를 겪으면서 투표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됐죠."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에 거주하는 6년차 직장인 정대훈(34·가명)씨는 스스로를 '정치 불신론자'였다고 소개했다. 정치인들이 국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엔 미진한 반면 기득권을 지키는 데만 관심이 있다고 생각해 별다른 신뢰가 없었기 때문이다.
미디어를 통해 비치는 정치의 모습이 이 같은 인식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예를 들어 서민 경제를 위해 꼭 필요한 법안 처리는 정쟁으로 인해 차일피일 미루면서 정작 국회의원 연봉 인상의 안건엔 여야가 합심해 일사천리로 통과시키는 기사를 보면서 모든 정치인이 '그놈이 그놈'이란 생각을 갖게 됐다는 게 정씨의 전언이다. 임기 중 갑질을 비롯한 각종 논란을 일으켰다가 선거철이 되면 '잘못했다'며 엎드려 읍소를 하는 정치인의 구태의연한 모습에도 염증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정치인들에 대한 큰 기대감이 없다 보니 '투표를 해봤자 뭘 하나'라고 생각했다"며 "이 때문에 주요 선거에도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비상계엄 사태를 지나며 정씨의 생각은 달라졌다. 그는 "비상계엄이라는 극단적인 사태로 정치인 한 사람의 판단과 결정이 국가와 국민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투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됐다"라며 "최선이 안된다면 차선이라도, 그마저도 안된다면 최악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투표를 해야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회사에서나 친구들 모임에서 정치와 관련한 대화가 자주 이뤄지는데 투표도 안 한 내가 말을 얹을 자격이 있나 부끄러웠고 후회됐다"며 "이번 대선에는 반드시 투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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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로 인해 사회 분열… 차기 정부서 바로 잡아야"
정씨는 현재로선 특별히 지지하는 정당이나 인물은 없다고 한다. 정씨는 "각 후보가 상대진영을 향해 네거티브 공세를 펼치는 모습을 보면 하나같이 흠결이 있는 사람들처럼 보인다"면서 "네거티브 공세는 최대한 배제한 채 각 후보의 국정운영 구상에 얼마나 많은 고민과 진정성이 담겼는지 대선 공약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투표할 예정이며, 최근 대선 후보 TV 토론회도 빠짐없이 챙겨보고 있다"고 말했다.정씨는 무엇보다 다음 대통령은 혐오로 얼룩진 한국 사회를 정상화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정씨는 "현재 한국 사회는 혐오로 인해 분열되고 갈라진 상태라고 생각한다"며 "인터넷이나 미디어를 보면 혐오표현이 만연한 데다 서로를 대상화하고 계급화하는 게 하나의 놀이처럼 자리잡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예를들면 노인을 '틀딱충', 급여가 200만원에 못 미치는 사람을 '이백충'이라고 조롱하는 등 혐오 표현이 넘쳐나는 시대"라며 "나보다 못하거나 반대진영에 있는 사람들을 끝없이 폄하하고 조롱하고 계급화하려는 모습을 보면 한국 사회가 정신적으로 많이 피폐해진 게 아닌가 걱정된다"고 짚었다.
정씨는 "최근엔 아이들조차 부모의 재력 수준이나 거주형태 등에 따라 친구 관계가 달라진다고 하는데 이 모든 게 혐오와 그에 따른 계급화 때문에 일어난 게 아닌가 싶다"며 "미래 세대로 혐오가 전파되지 못하도록 현 시점에서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치 역시 상대진영에 대한 혐오로 인해 계속 분열되고 있다는 게 정씨의 생각이다. 그는 "나와는 다른 정치적 견해는 무조건 잘못된 것으로 치부하고 공격하면서 갈등이 점차 깊어지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국회의원들마저 막말과 조롱에 앞장서며 유권자들에게 상대진영에 대해 대한 혐오를 마음껏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정치에 대한 염증을 느끼게 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뿌리박힌 혐오를 없애지 않으면 진정한 사회 대통합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차기 정부에서는 우리 사회의 분열을 야기하는 혐오를 '표현의 자유'로 방치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개선하고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기울였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