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회 바다의날 마라톤대회가 출발 신호와 함께 시작됐다. 사진은 지난 24일 서울 마포구 평화의공원에서 열린 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출발선을 지나 레이스를 시작하고 있는 모습. /사진= 김대영 기자

서울이 달리기에 빠졌다. 러너들이 달리는 이유는 다양하다. 바다를 기억하고 아이의 손을 잡고 추억을 회상하며 지난 주말 서울 한복판이 러닝 트랙으로 바뀌었다.

한강변에서는 바다를 위한 레이스가 펼쳐졌고 서울 강남구 대치유수지체육공원에는 유모차를 끌고 나온 가족들이 모였다. 여의도공원에선 무한도전 티셔츠를 맞춰 입은 팬들이 몰려들었다. 코스는 다르고 속도도 제각각이지만 모두가 하나의 출발선에 섰다.


누구도 1등을 가리지 않는다. 기록은 중요하지 않다. 걷거나 뛰거나 혹은 멈춰선 참가자들에게는 달리는 이유도 제각각이다. 환경을 위한 실천, 아이와의 추억, 좋아하던 예능을 향한 팬심까지 다양하다. 10㎞를 완주하든 200m를 걷든 거리는 중요하지 않다.

"애랑 뛰는 건지 걷는 건지 몰라요."

지난 24일 서울 강남구 대치유수지체육공원에서 열린 ‘라이트업 키즈레이스’ 영유아부 경기에서 아이들이 보호자와 함께 또는 혼자서 트랙 위를 힘차게 달리고 있다. /사진=김대영 기자

주말인 지난 24일 대치유수지체육공원엔 하늘색 풍선 아치와 캐릭터 마스코트가 세워졌다. 오전 10시10분 유아부 참가자들이 '부모님 손잡고 200m 달리기'에 나섰다. 작은 팔로 부모 손을 꽉 잡고 누구보다 진지한 표정으로 출발선을 박차고 나섰다. 누군가는 잠시 멈춰 숨을 골랐고 누군가는 "엄마, 우리 1등이야"라며 환하게 웃었다. 달리는 건 아이들 옆으로 손을 잡아준 어른들은 든든한 페이스메이커였다.

경기 성남시에서 온 최연수씨는 "애랑 뛰는 건지 걷는 건지 몰랐지만 즐거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기록은 하나도 기억 안 나고 완주 메달만 남았다"고 덧붙였다. 이 대회는 '기부 마라톤'이다. 참가비 전액은 희망친구 기아대책을 통해 지구촌 결식 아동을 위한 급식 지원에 사용한다. 아이는 부모와 함께 달리며 나눔의 의미를 되새겼다. 완주 메달에는 'EVERY STEPS DELIVERS HOPE'(모든 걸음이 희망을 전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거 '무도' 20주년 콘서트 아니에요?"

지난 25일 ‘무한도전 Run with 쿠팡플레이’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 입구 앞에서 줄을 서 입장하고 있으며, 일부는 무한도전 로고 앞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있다. /사진=김대영 기자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은 축제와 혼잡이 뒤섞인 러닝 현장이었다. 참가자들은 여의도역 11번 출구 인근 'START' 아치 아래에 모여들었다. 무한도전 티셔츠와 머리띠, 슬로건을 두른 팬들은 출발선부터 사진을 찍느라 붐볐다. 하하는 현장에서 참가자들을 응원했고 정준하는 배우 윤시윤과 함께 10㎞를 제한 시간 안에 완주하는 열정을 보이며 많은 참가자에게 인상을 남겼다.

다만 일부 참가자의 기억은 조금 달랐다. 앞 조는 비교적 원활하게 출발했지만 후발 조 참가자들은 정체로 인해 반환 지점이 통제되며 "10㎞도 못 채우고 돌아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대회 참가자는 "사진 찍는 사람, 걷는 사람들 때문에 뛰는 맛은 없었다"고 지적하며 "기념은 됐지만 마라톤이라기보단 10만원짜리 팬미팅 같았다"고 덧붙였다. 많은 참가자에겐 기록보다 굿즈와 SNS 인증이 더 중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기록보다는 분위기, 달리기보다는 경험이 핵심인 러닝이었다.

"달리면서 바다를 기억해요."

지난 24일 서울 마포구 평화의공원에서 열린 ‘제30회 바다의날 마라톤’에서 참가자들이 비닐 포장된 개인 짐을 물품보관소에 맡기고 있다. 이 대회는 해상 안전과 깨끗한 해양 환경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매년 5월31일 바다의날을 맞아 개최된다. /사진=김대영 기자

흐린 하늘 아래 지난 24일 서울 마포구 평화의공원에서 8000명이 치어리더 구호에 맞춰 준비운동을 한다. 해사안전과 해양환경 보호를 기리는 '제30회 바다의날 마라톤'은 올해도 기록보다 '의미'를 추구하는 레이스였다. 대회는 하프·10㎞·5㎞ 세 코스로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멸치 한 팩을 손에 쥐기 위한 완주에 나섰다. 10㎞ 참가자 김채윤씨(27)는 "매년 달리지만 바다를 위해 뛴다는 느낌이 색다르다"는 소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현장 곳곳엔 아이러니도 있었다. 참가자 짐은 투명 비닐봉투에 담겨 줄지어 보관됐고 '깨끗한 바다'를 외치는 대회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자재가 바로 비닐이었다. 한국해양대 연구진에 따르면 2023년 해양쓰레기의 40%는 비닐이 차지한다. 해양환경을 말하는 자리에서 플라스틱 폐기물이 다시 바다로 돌아갈 위험은 충분히 재고해 볼 문제다.

'기록보다 이유'를 남기는 사람들

지난 24일 서울 강남구 대치유수지체육공원에서 열린 ‘라이트업 키즈레이스’ 영유아부 참가자들이 보호자와 함께 출발선 앞에서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김대영 기자

과거의 마라톤은 '인내'와 '기록'의 운동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러닝은 다르다. 누군가는 아이와의 추억을 남기기 위해, 누군가는 굿즈와 인증샷를 위해, 누군가는 바다를 위한 마음 한 조각을 실어 달린다. 달리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분석한 한 연구도 말했듯이 러닝은 더 이상 혼자의 운동이 아니다. 함께 뛰며 즐기고 인증하며, 정체성을 표현하는 방식이 됐다. 취향의 방식으로 걷고 사진을 찍고 각자의 속도로 의미를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