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29일, 서울 신촌의 한 사전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외부로 반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은 제21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 이틀째인 30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구 신촌동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 인근에 경찰과 유튜버가 대기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제21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29일, 서울 신촌의 한 사전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외부로 반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선거관리인이 관외 투표자가 대거 몰리자 내부 대기 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투표용지를 배부한 선거인들을 투표소 밖에 대기시킨 것이다. 일부 선거인은 투표용지를 들고 인근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돌아오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주요 선거에서 사전투표 관리 부실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온 가운데 선관위는 재발 방지를 수차례 약속했지만 이번에도 관리 부실이 반복됐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소쿠리 투표'(2022년 대선 당시 투표용지를 소쿠리에 담아 옮겼던 사례)에 이어 '밥그릇 투표'"라는 비판까지 제기됐다. 김용빈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은 "사전투표 과정에서 관리 부실이 있었다. 국민 여러분의 상식적인 선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선관위 "관리 부실, 책임 통감" 대국민 사과

선관위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부터 낮 12시까지 약 1시간 동안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사전투표소에서 관외 투표자 30~40명이 본인 확인을 거친 후 투표용지와 회송용 봉투를 수령하고 투표소를 이탈했다. 사진은 제21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일 첫날인 29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동대문구선거관리위원회에서 선관위 관계자들이 관내 사전투표함을 보관소로 옮기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1

선관위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부터 낮 12시까지 약 1시간 동안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사전투표소에서 관외 투표자 30~40명이 본인 확인을 거친 후 투표용지와 회송용 봉투를 수령하고 투표소를 이탈했다. 기표 대기줄이 길어지면서 투표소 밖까지 줄이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일부 선거인은 투표용지를 손에 든 채 사진을 찍거나 기표하지 않은 채 인근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외부로 나갔다 돌아온 유권자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신분증 확인이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선관위 관계자는 "이날 오전 해당 투표소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사전투표를 하면서 인파가 많이 몰렸다"고 설명했다.


이 사실이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알려지자 선관위는 낮 12시부로 외부 대기를 중단하고 본인 확인과 투표용지 발급 속도를 조절하는 조치를 내렸다. 이어 오후 1시15분에는 전국 위원회에 해당 상황과 주의 사항을 전파했으며, 오후 1시40분쯤에는 기표대를 기존 6개에서 13개로 늘렸다. 또 투표 사무원을 추가로 위촉해 투표 관리 인력을 보강했다.

정치권에서는 선관위의 관리 부실을 강하게 비판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날 경기 과천 중앙선관위 청사를 방문해 투표용지 반출에 대한 진상조사를 촉구했다. 박성훈 국민의힘 선대위 대변인은 논평에서 "대리투표를 포함한 각종 부정행위로 이어질 수 있는 명백한 선거 관리 실패"라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도 가세했다. 조승래 민주당 선대위 수석대변인은 "선관위가 선거 관리를 제대로 해야 하는데 매우 안타깝고 아쉽고 실망스러운 장면이 많이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김용빈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은 대국민 사과문을 통해 "기표 대기 줄이 길어진 상황에서 투표용지 발급 속도를 조절하지 못한 관리 부실이 있었다. 선관위의 책임을 통감하며 깊이 사과드린다"며 "신촌동 사전투표소 마감 결과, 관외 사전투표자 투표용지 발급매수와 관외 사전투표함 내 회송용 봉투가 정확히 일치했다"고도 밝혔다. 다만 선관위는 이번 반출이 고의성이 없는 과실에 해당한다고 보고, 법적 조치는 취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공직선거법 제244조 1항은 투표용지를 은닉, 손괴, 훼손하거나 탈취한 경우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과실에 의한 반출에 대해서는 별도의 규정이 없다.


부산에서는 '유권자 실어나르기' 의혹도 제기됐다. 민주당 부산선대위는 "부산진구 내 특정 시설에서 승합차를 이용해 고령 유권자를 투표소로 이동시키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선관위에 신고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선관위는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투표 관리 부실이 되풀이되면서 선거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과거에도 선관위의 허술한 관리·감독 체제는 여러 차례 도마에 올랐다. 지난해 4·10 총선을 앞두고 유튜버 등에 의해 전국 사전투표소 40여 곳에 몰래카메라가 설치된 사실이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조윤영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는 "그렇지 않아도 최근 들어 선거 관리 전반에 대한 불신의 목소리가 일각에서 나오는 상황인데 이번과 같은 관리 부실 논란이 반복된다면 선거에 대한 국민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신뢰가 무너지면 투표 결과에 대한 불복 논란으로까지 번질 가능성이 있어 관리 부실에 대한 엄정한 문책이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