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타이거즈 투수 성영탁. ⓒ News1

(서울=뉴스1) 권혁준 기자 = 2024 신인 드래프트에 나선 성영탁(21)은 그리 주목받는 투수가 아니었다. 좋은 변화구와 제구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체구가 크지 않은 데다 직구 구속이 시속 140㎞도 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부산고 동기인 원상현이 1라운드 전체 7순위로 KT 위즈의 지명을 받은 반면, 성영탁의 이름은 드래프트가 끝날 무렵인 9라운드까지도 불리지 않았다. 대학 진학을 고민하던 찰나, 10라운드에서 KIA 타이거즈가 성영탁을 지명했고, 그는 110명의 신인 중 96순위로 프로 무대에 발을 들였다.


타자 중에선 '육성선수 신화'의 김현수(LG 트윈스)를 비롯해 낮은 라운드에서 지명받고도 대성한 경우가 있지만 투수에서는 그런 사례가 많지 않다. 그만큼 가진 재능이 중요하고 육성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영탁은 프로 2번째 시즌 만에 1군 무대에 올라 당당히 겨루고 있다. 단순히 1군 무대를 경험한다는 차원을 넘어, 팀의 '필승조급' 불펜투수로 활약하고 있다.

성영탁은 '하위라운더의 기적'을 꿈꾸고 있다. 그는 "낮은 라운드에서 지명된 선수들도 주눅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늦게 지명돼도 기회가 없는 건 아니다. 그 기회를 잡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표본 같은 선수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KIA 타이거즈 성영탁. /뉴스1 DB ⓒ News1 박지혜 기자

성영탁은 1일 현재까지 17경기에 출전해 1승 1홀드 평균자책점 0.89를 기록 중이다. 5월 말 콜업돼 20⅓이닝을 소화하는 동안 4실점(2자책)만 기록했다.

데뷔 후 첫 13경기에선 '평균자책점 0'의 무실점 행진을 이어가기도 했다. 17⅓이닝 무실점으로 '타이거즈 전설' 조계현(13⅔이닝 무실점)을 뛰어넘은 새로운 팀 기록이었다.

그는 김인범(키움)의 19⅔이닝에도 도전했으나, 지난달 24일 키움전에서 임지열에게 홈런을 맞으면서 무실점 행진이 멈췄다. 그래도 KBO리그 역대 3위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무실점이 깨졌지만, 성영탁이 아쉬운 건 개인 기록보단 팀의 패배였다. 그는 "기록이 멈춘 것보다, 팀이 연승 중일 때 중요한 상황에서 홈런을 맞은 것이 힘들었다"고 했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며 당찬 모습을 보였다. 성영탁은 "그 상황에서 슬라이더가 너무 자신 있어서 던지겠다고 했다"면서 "실투도 아니었고, 자신 있게 붙다가 맞은 것이기 때문에 후회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KIA 성영탁. (KIA 제공)

지난해 2군에만 머물렀던 성영탁이 '필승조급'으로 발돋움한 결정적 계기는 구속 상승이다. 성영탁이 낮은 라운드에서 지명될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 약점이 해결된 것이다.

성영탁은 "비시즌에 몸의 움직임에 집중하면서 훈련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구속이 올라갔다"면서 "작년까지만 해도 직구 평균 구속이 시속 130㎞ 후반대였는데, 이제는 140㎞ 초반까지 올라왔다"고 설명했다.

구속이 올라오면서 자신감도 붙었다. 그는 "직구 구속이 해결되면서 1군에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변화구와 제구는 고등학교 때부터 자신 있었고, 2군에서 수싸움도 많이 연구했다"고 했다.

루키가 씩씩한 투구를 거듭 이어가자 벤치의 신뢰도 올라갔다. 처음엔 점수 차가 많이 나는 상황에 등판하던 그는 이제 팀이 근소하게 앞서는 중요한 상황에서 나선다.

성영탁은 "부담감을 느끼진 않고 그저 내 임무를 잘하겠다는 생각뿐"이라며 "점점 중요할 때 올라가다 보니,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함과 감사함을 느낀다"고 했다.

KIA 성영탁. (KIA 제공)

단단한 정신력도 성영탁의 장점이다. 무실점 기록이 끊기고, 그다음 등판(6월26일 키움전 3실점)에서도 수비 실책 등으로 흔들렸지만 그래도 주눅 들지 않는다.

실제 성영탁은 2경기 연속 실점 이후에도 변함없이 자기 공을 던졌다. 6월28~29일 LG 트윈스전에 이틀 연속 등판해 무실점을 기록했고, 6월28일 경기에선 데뷔 첫 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성영탁은 "무실점이 끊기고, 실점이 늘어난다고 해도 다음 등판 때 마음가짐이 달라지지 않는다"면서 "손승락 수석코치가 해주신 말씀처럼, 공격적으로 임하고 싶은 생각"이라고 했다.

롯데 자이언츠의 마무리투수 김원중(32)이 가장 닮고 싶은 투수라고 했다. 성영탁은 "어렸을 때부터 마운드에서 상대를 압도하고 주도권을 잡는 것이 멋있게 느껴졌다"면서 "나 역시 그런 자신감을 가진 투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성영탁은 "이제 막 1군에 발을 뗐지만, 계속 성장하는 투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