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진화하는 보험사기에 중견 보험사 30년치 이상의 보험금이 줄줄 새고 있다./그래픽=머니S 김은옥 기자

#. 2024년 12월 전직 보험설계사 A씨는 운전 중 경기도 한 외곽에서 가드레일과 부딪히는 사고로 청력을 잃었다며 보험금 27억5000만원을 여러 보험사에 청구했다. 당시 A씨는 청각장애 1급 진단을 받아냈다.

A씨는 사고 후 청구한 보험금 중 20억원 이상을 먼저 수령한 후 더 욕심이 생겼다. 보험금을 쉽게 타낼 수 있다는 생각에 또다시 보험 가입을 시도했다.


그는 남편에게 홈쇼핑에 전화해 보험 가입 상담을 요청하게 한 뒤 보험사 상담원이 연락해 오자 남편을 통해 진행했다. 하지만 이 전화 한 통으로 그의 사기 행각은 덜미를 잡혔다.

전화 통화 마지막에서 상담원은 보험상품 내용을 A씨도 확인했는지 물었고 남편은 수화기를 아내 A씨에게 건냈다. 그 때 A씨가 "네"라고 답하는 목소리가 그대로 녹취됐다. 청각장애 1급 진단을 받아낸 A씨가 저지른 27억5000만원의 보험사기 행각이 발각된 순간이었다.

이에 다수의 보험사들은 A씨의 보험금 청구 건을 보험사기로 의심해 직원을 A씨가 사는 곳에 파견했다.


파견한 보험사 직원 중에는 형사 출신도 있었다. 보험사 직원들은 주민처럼 행세하며 A씨가 보는 앞에서 갑자기 A씨의 이름을 불러보기도 하고 놀래키며 반응을 유도하는 식으로 A씨의 청력장애가 거짓이라는 것을 밝혀내 사기 혐의로 기소했다.

#. 2024년 7월 광주광역시에서는 현직 보험설계사 A씨 등 총 11명이 가담한 총 10억원 규모의 보험사기가 발생했다. 이들은 대학교에서 만난 선후배 사이였다. 이들은 사회적 약자인 정신 지체자나 홀로 사는 여성들에게 접근해 신발, 의류 등을 구입해 주는 방법으로 환심을 얻은 후 그들 명의로 저렴한 중고자동차를 구매하게 했다.

이후 입원 일당·부상위로금 등을 지급받을 수 있도록 10여개의 보험상품에 집중 가입시킨 뒤 고의로 건물 벽에 부딪히는 등 고의로 교통사고를 일으켰다.

입원 보험금으로 단 한 건에 1000만원 이상을 타내는 등 매번 같은 수법으로 보험금을 타내던 A씨 일당. 갑자기 고급 차량 등을 사는 점을 이상하게 여긴 보험사 직원이 조사에 들어갔고 결국 보험사기로 밝혀졌다.

11명 중 6명은 구속, 나머지 5명은 불구속 입건돼 최종 징역형과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 주부인 A씨는 남편 B씨의 사업 실패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자 자신의 딸과 지인들과 공모해 남편을 계곡으로 유인한 뒤 익사시켜 살해해 4억5000만원의 보험금을 편취했다.

이 사고는 차후 보험사와 경찰 조사 과정에서 보험사기가 의심되는 정황이 발견됐다. 허리 깊이의 계곡에서 물살이 거의 없던 지점에서 익사한 점, 사체검안상 바위가 많은 지형상태에서 구호당시 외상의 흔적이 없는 비정상적인 사망이었다는 점 등 두 가지다.

이에 보험사와 경찰은 A씨를 대상으로 조사, B씨 사망일로부터 약 2개월 전에 3개 보험사·유사보험에 고액의 사망보험금을 보장하는 상품에 가입했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경찰은 A씨를 보험사기와 사기죄 혐의로 기소했다.

진화하는 보험사기, 중견 보험사 30년치 이상 보험금 샜다

매년 진화하는 보험사기에 대한민국 경제가 골병들고 있다.

2024년 한해에만 보험사기에 가담했다가 적발된 인원은 11만명에 육박했다. 적발금액은 1조1502억6400만원이다. 국내 중견 손해보험사의 30~40년치 영업이익에 해당하는 막대한 금액이다.

보험사들은 매년 늘어나는 보험사기로 골머리를 앓고 있지만 정작 피해는 보험가입자들의 몫이다.

금융당국도 나서 보험사는 물론 경찰 등 사법기관과의 공조를 통해 보험사기 근절에 애쓰고 있다지만 수법도 점차 전문화, 조직화되면서 보험가입자들이 부담하는 필요 이상의 과대 보험료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보험사기방지 특별법 제2조에 따르면 보험사기 행위란 보험사고의 발생, 원인 또는 내용에 관해 보험자를 기망해 보험금을 청구하는 행위다.

보험사기의 대표적 유형은 보험 계약 시 허위고지 대리진단 등을 통해 중요한 사실을 은폐하고 사기적으로 보험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고의적으로 사고를 유발하거나 보험사고가 아닌 것을 보험 사고로 조작하는 행위 역시 보험사기다.
./그래픽=머니S 김은옥 기자

최근 보험사기 적발자들의 직업을 보면 대상을 가리지 않고 가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보험사기 적발인원 가운데 회사원이 2만6652명(24.4%)로 가장 많았다. 이어 무직일용직(1만2025명, 11%), 전업주부(1만6명, 9.2%), 학생(4659명, 4.3%)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보험설계사와 의료인, 자동차정비업자 등 관련 전문종사자도 9735명(9%%)을 차지했다.

주목할 것은 20~40대 직장인과 주부부터 50~60대 이상 고령층까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연령대가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보험사기 연령별 적발인원은 60대가 2만7998명으로 가장 많았고, 50대가 2만4528명, 40대 2만1055명, 30대 1만9746명, 20대 1만4884명, 10대 이하 786명 순이다.

60대 이상의 보험사기 적발인원은 전년 동기 대비 3200명 넘게 증가했고 2022년 대비 무려 5000명 넘게 증가했다.

이처럼 보험사기 가담자 연령층이 확대되고 직업범위도 넓어진 이유는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이 많아진 탓이기도 하다. 보험사기 가해자 대부분은 모두 '돈을 쉽게 벌 수 있다'는 유혹에 현혹됐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10대의 경우 보험사기는 범죄라는 인식이 부족하고 사회경험이 없다 보니 주변 선배·친구 등의 유혹에 빠져 본인도 모르게 범죄에 연루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험범죄가 갈수록 지능화·조직화하면서 금융당국도 생명·손해보험협회 등 유관기관 및 전국 18개 시·도 경찰청과 공동 대응에 나섰다.

이들은 올해 5월 보험범죄 수사협의회를 구성하고 병·의원 관계자 및 브로커 등이 연루된 조직적인 보험사기가 늘어나고 있는 만큼 이와 관련된 수사 지원 방안 등을 집중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또한 보험사기 수법 및 적발 기법 등을 적극 공유하는 등 보험사기 수사관의 전문성 제고방안 마련에 들어갔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보험사기에 대한 실제 수사기관 및 검찰, 법원에서 보험사기에 대한 관심도는 높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며 "보험사기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금감원, 보험업계, 수사관서(검찰 포함), 건강보험관리공단 등이 보험사기 업무에 대해 체계적으로 관리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범죄 근절을 통해 보험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를 사전에 차단해 건전한 보험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이라며 "보험설계 단계부터 범죄를 차단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보험사기에는 예외없이 엄정한 대응을 이어가겠다는 금감원·경찰청 등 유관기관의 의지를 대·내외적으로 확고히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