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더불어민주당이 올해에만 세차례에 걸친 상법 개정을 예고하면서 기업들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여야 합의로 1차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데 이어 오는 7월과 9월 두차례에 걸친 추가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재계가 '입법 폭주'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지만 상법은 예정대로 바뀔 전망이다.
민주당은 7월 임시국회에서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등의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오는 9월 정기국회 내에선 경영진의 배임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배임죄 요건 완화,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을 추가 입법 과제로 검토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집중투표제는 주주가 가진 주식 수에 선임 이사 수를 곱한 만큼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이사를 5명 선출할 경우 주주는 1주당 5표를 특정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다.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는 대주주의 감사위원 지배력을 낮추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한국에서 자사주가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활용돼온 관행을 문제 삼는다. 해외에선 자사주를 매입한 뒤 소각해 주가를 높이는 방식으로 주주환원에 활용하지만 국내에선 대주주 지배력 강화수단으로만 사용됐다는 것이다.
이들 조항은 재계가 '경영권 위협'을 이유로 반대 입장을 밝혀왔던 쟁점들이다. 여야 이견으로 1차 상법 개정 당시에도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지난 3일 여야는 국회 본회의에서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 의무를 기존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고 ▲감사위원 선임·해임 시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합산해 3%까지만 인정하도록 하는 '3%룰' ▲전자주주총회 의무화 등의 내용이 담긴 상법 개정안만 합의처리했다.
민주당이 잇따라 상법 개정에 나서는 배경에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정책적 목표 외에도 개혁 입법을 통해 지지율을 끌어올리려는 전략적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코스피 5000'을 국정 목표로 내세운 이후 민주당은 상법 개정에 본격적으로 드라이브를 걸었고 지배구조 개편 기대감이 증시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지지율과 맞물리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대선 직전인 지난 5월 코스피 지수는 2500선에 머물렀지만 지난 22일에는 장 초반 3220.27까지 올라 연중 최고치를 경신했다. 역대 최고인 3316.08(장중 기준, 2021년 6월 25일) 돌파도 시간문제라는 평가다.
![]() |
주주 권익 강화를 내세운 이번 조치에 대해 소액주주들은 반기지만 재계는 기업 현실을 반영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됐다고 반발한다.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주요 경제단체는 "경영 자율성 위축은 물론 외국계 행동주의 펀드의 이사회 장악 가능성 등 부작용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며 강하게 우려하고 있다.
특히 자사주 소각 의무화 추진에 대해선 포이즌필, 황금주, 차등의결권 등 경영권 방어 장치가 사실상 없는 국내 상황에서 기업들이 간접적으로 경영권을 방어해온 마지막 수단마저 박탈하는 조치라고 본다. 정우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부회장은 "세상에 부작용 없는 만능 제도는 없지만 경영권 방어 법제가 불균형한 환경에서의 과도하고 일방적인 규제는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신중론이 확산하고 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지난 11일 국회에서 열린 상법 개정 관련 공청회에 참석해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주주 집단의 갈등과 투쟁의 장이 되고 이사회는 대리전의 전쟁터가 될 것"이라며 제도 운영의 현실적 위험성을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많은 기업들이 자산총액 2조원 미만의 회사로 전환해 상근감사 1명만 두는 방식으로 사이즈를 줄일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정부의 세제 유인책이나 산업 인센티브가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규제만 강화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재계 관계자는 "국내는 규제가 계속 늘어나는데 해외는 세제 감면과 보조금 경쟁이 치열하다"며 "탈코리아 현실화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