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정수영 기자 = 그는 이름값을 제대로 해냈다. 오데트에게 사랑을 맹세하며 애절한 표정을 지어 보일 때, 중력을 거스르듯 높이 솟구쳐 흔들림 없는 연속 회전을 펼칠 때 객석에선 기다렸다는 듯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러시아 출신의 세계적인 발레리노 다닐 심킨(38) 이야기다.
지난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유니버설발레단(UBC)이 선보인 '백조의 호수'는 '발레계 슈퍼스타' 심킨의 국내 첫 전막 무대였다. 그는 갈라 공연으로 여러 번 한국을 찾았지만, 전막 공연의 주역은 이번이 처음이다.
'백조의 호수'는 악마의 저주로 낮엔 백조로 변하는 오데트 공주와 지크프리트 왕자의 사랑을 그린 작품. 1895년 러시아 마린스키극장에서 초연된 후 다양한 버전의 안무가 탄생했다. UBC는 마린스키발레단 예술감독이었던 올레그 비노그라도프를 영입해 안무를 새롭게 재구성했으며, 1992년 국내에서 처음 무대에 올렸다. 이후 해외 12개국 투어를 통해 작품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았다.
이번 무대의 최대 화제는 다닐 심킨의 출연이었다. '하늘을 나는 무용수', '세계 최초 3연속 540도 회전'으로 유명한 그는 출연 소식만으로도 발레 팬들의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렸다.

'믿고 보는 향기리나'
19일 공연에서 심킨은 '테크닉의 최강자'답게 높은 점프와 회전 기술을 선보였지만,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점은 감정 표현이었다. 앞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지크프리트 왕자 역에선 기교보다 캐릭터 표현에 중점을 두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의 말대로, 공연 후 "표정 연기가 압권이었다"는 온라인 관람평이 이어졌다.
오데트 역의 홍향기(36)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2010년 유니버설발레단에 입단한 그는 2016년 처음으로 오데트 역을 맡은 뒤, 여러 차례 같은 역할로 무대에 올랐다. 발레 팬들 사이에선 '믿고 보는 향기리나'(홍향기+발레리나)로 통한다.
홍향기는 백조를 연기할 때는 섬세하면서도 처연한 모습을, 흑조로 변신했을 땐 도도하고 당당한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폴 드 브라와 손목의 움직임, 표정 변화를 통해 극과 극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 특히 2막에서 고난도 '32회전 푸에테'를 선보이자, 객석에서는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흑백 군무부터 다양한 민속춤까지
어릿광대 역을 맡은 '신스틸러' 김동우도 빼놓을 수 없다. 분위기가 느슨해질 수 있는 순간엔 활기를 불어넣고, 긴장감이 팽팽한 장면에선 적절한 이완으로 관객에게 웃음을 안겼다. "묘기 대행진에 관객 호응 유도까지, 광대 캐릭터 그 자체"라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또한 호숫가 장면에서 펼쳐지는 흑백의 대비 군무, 2막 1장을 수놓는 스페인·헝가리·나폴리 춤 등 다양한 민속춤, 화려한 의상과 무대는 관람에 시각적 즐거움을 더한다.
"도파민 폭발 공연" "돈값 하는 공연" 등과 같은 관람 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유니버설발레단의 '백조의 호수'는 오는 27일까지 공연된다. 다닐 심킨은 23일 홍향기와 한 차례 더 호흡을 맞춘다.
이외에도 강미선-이현준, 홍향기-임선우, 이유림-콘스탄틴 노보셀로프, 전여진-이동탁이 각각 페어를 이뤄 무대에 오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