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판화가 강승희의 개인전 '새벽, 여백을 열다'가 30일까지 노화랑에서 관람객을 맞이한다. 2021년 개인전 이후 4년 만에 노화랑과 다시 만난 이번 전시는 강승희 작가가 40여 년간 몰두해 온 동판화라는 전통 매체를 통해 구현한 시적이고 서정적인 신작 55점을 선보인다.
강승희는 '먹을 다루듯 동판을 새기고, 수묵화를 그리듯 판화를 찍어낸다'는 평을 받아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새벽의 고요한 풍경을 통해 기존의 밀도 높은 화면에서 한층 더 간결하고 절제된 표현으로 나아가며, 내면의 깊이를 담아낸 신작들을 공개했다.
전시 제목 '새벽, 여백을 열다'는 강승희의 독자적인 세계관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작가에게 '새벽'은 밤과 낮, 삶과 죽음, 잠과 깨어남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의 시간'이다. 이 흐릿한 시간은 보이지 않는 감정을 담는 그릇이자 '비시간'의 상태로 존재한다. 강승희의 판화는 여백을 통해 바람, 물, 공기, 기운과 같은 비물질적 감각을 암시하며 관람객에게 깊은 사유의 공간을 제공한다.

전시 작품들은 이전보다 더욱 간결해진 것이 특징이다. 중첩된 이미지와 풍경의 디테일한 묘사 대신, 최소한의 형태와 선으로 감정과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새벽녘의 바다와 강, 어둠 속 희미한 불빛, 하늘과 수면의 경계가 사라진 풍경 속에서 '그려지지 않은 여백'이 강조된다. 작가는 이 여백을 숨결이 드나드는 통로이자 밀도 높은 감각을 사유하는 공간으로 의미 부여하며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강승희 작가의 판화 방식은 기법적으로도 한국 동판화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이번 전시의 신작들은 주로 '아쿼틴트 에칭' 기법으로 제작됐다. 섬세한 부식 과정을 통해 완성된 화면은 동양화의 발묵법을 연상시키는 깊이감 있는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는 장인적 완성도와 회화적 감수성을 동시에 갖춘 강승희 특유의 예술 세계를 드러낸다.
강승희는 동판화라는 장르의 한계 안에서 동양적 정서와 미감을 실현해 낸 드문 작가다. 추계예술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한국 동판화의 기틀을 다져온 그는 한국 동판화의 개척자이자 실천자로 불린다. 이번 전시는 새로운 회화의 가능성을 실현해 온 강승희 판화가의 지난한 여정을 되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