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개의 경계로 본 세계사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고대부터 현대까지, 지도 위에 그어진 얇은 선 하나가 인류의 삶과 세계 질서를 뒤흔들어왔다. 신간 '47개의 경계로 본 세계사'는 그 선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또 어떻게 세계를 바꾸었는지를 정교하게 추적한다. 국경을 둘러싼 욕망과 전쟁, 그리고 분열의 역사는 단순한 공간의 구획이 아닌, 인류의 권력과 정체성, 불안과 야망이 교차하는 결정적 지점이었다.

책은 고대 이집트의 통일에서부터 시작해 유럽 열강의 식민 분할, 한반도 38선의 탄생, 디트로이트의 인종 분리,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그리고 미래의 경계가 될 우주의 국경까지 47개의 사례를 통해 세계사를 재구성한다. 지도 제작자의 실수에서 출발한 국경선부터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낳은 무책임한 협정, 그리고 기술과 자본이 맞물린 현대의 우주 경계까지, 경계는 끊임없이 쓰이고 있다.


경계는 단 한 번의 조약이나 전쟁, 혹은 협상만으로 결정됐지만 오늘날까지도 분쟁과 불평등을 불러오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의 인위적 분할, 중동을 갈라놓은 사이크스피코협정, 수단과 우간다 사이의 지도 없는 경계 등은 지금도 갈등의 뿌리가 되고 있다. 이렇듯 '그어진 선'은 단지 영토의 구분이 아니라, 수많은 생명을 갈랐고, 사회적·경제적 구조의 고착화로 이어졌다.

저자가 제시하는 또 다른 관점은, 경계의 무의미함과 유동성이다. 경계는 필연도, 영원도 아니다. 그것은 자의적이고 우연적이며, 시대에 따라 사라지거나 새롭게 만들어진다. 오늘날에도 바다와 하늘, 그리고 우주에서 새로운 경계가 설정되고 있으며, 이는 자원의 지배와 정치적 패권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경계는 단지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현재의 전장이고 미래의 불씨다.

국경은 세계 정세의 숨은 규칙을 읽는 열쇠이기도 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충돌, 남중국해와 히말라야 국경 분쟁 등, 오늘날 갈등의 실마리는 대부분 국경선에 있다. '47개의 경계로 본 세계사'는 이 복잡한 국경의 역사와 그 파급 효과를 정치·문화·경제·지리적 관점에서 통합적으로 조망하며, 세계를 이해하는 프레임을 제공한다.


저자는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여정을 제안한다. 지도 위의 선들이 왜 그어졌고, 그 결과 무엇을 얻고 잃었는지를 되짚는 일은 곧 인류의 속성과 문명의 궤적을 되짚는 일이기도 하다. 지금도 경계는 누군가를 배제하고, 분열을 반복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은 새로운 세계 질서와 공존을 위한 윤리적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47개의 경계로 본 세계사'는 단순한 국경의 이야기가 아니다. 경계를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 역사를 되돌아보며, 미래를 상상하게 한다.

△ 47개의 경계로 본 세계사 - 국경선은 어떻게 삶과 운명, 정치와 경제를 결정짓는가 / 존 엘리지 지음 / 이영래, 김이재 옮김 / 21세기북스 / 2만 4000원